<진보노동뉴스>는 8월25일 창간 10주년을 맞아 현시기 노동자들의 살아있는 현장을 취재하는 시간을 가졌다. 뜨거운 여름, 뜨겁게 공론화됐던 고려대학교청소노동자투쟁을 이끈 공공운수노조서울지부 고려대분회 서재순분회장을 인터뷰했다. <시급 440원만 인상해달라> 1년계약직인 청소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은 꿈같은 이야기, 저절로 오르지 않으니 투쟁할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진짜사장>인 학교는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이들의 투쟁을 외면했지만 학생들은 투쟁을 시작한 3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했다. 서재숙분회장은 이번 잠정합의의 성과를 연대의 힘으로 이뤄냈음을 확신했다. 

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학교분회 분회장 서재순입니다. 고려대분회는 학내 청소노동자, 주차노동자, 경비노동자로 이루어진 노동조합입니다.

2. 지난 76일부터 임금인상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학교 본관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청인 고려대학교에 요구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농성은 7월6일부터, 투쟁은 3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시급 440원만 올려달라>는 요구였습니다. 3월 초 넣은 쟁의행위조정신청은 이뤄지지 않았고, 3월30일부터 매일 밖에서 9시, 12시 집회를 진행했습니다.

그간 고려대학교 측에 면담신청을 했었지만, 용역업체나 학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7월 농성하기 전 7번의 면담에서 원청인 고려대학교와 고려대 미화 용역업체 IBS인더스트리는 서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IBS는 고려대 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이야기를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3개월간 밖에서 투쟁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3월부터 시작한 투쟁해서 총무과는 전화로 우리에게 잔디를 밟지 말라고 했습니다. 잔디를 밟으면 고소고발을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잔디밭을 밟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차장님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잔디를 밟고 싶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교직원들 모두 잔디를 밟고 다니는데다가 그 안에서 도시락도 시켜서 먹더라. 모두 사진 찍고 동영상을 찍어서 고소고발할 때 같이 하라.>고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학교방침만 이야기 하는 것이라며 말을 잘랐습니다.

우리는 7월1일 고려대에 면담신청을 했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도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받기 위해 면담신청을 공문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총무과 차장은 공문을 못받았다며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공문을 못받았어도 우리는 보냈으니 면담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총무과 차장과 면담을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된 얘기인지 얘기를 좀 해달라. 회사하고는 얘기를 했냐.>고 물었을 때, 회사에 무슨 급한 일이 있다며 대화를 아직 못했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3개월동안 바깥에서 투쟁하는 동안 아무 말이 없으니까 더이상 이렇게는 못하겠다>며 부장과의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7번의 면담동안 차장과는 만났지만 부장 얼굴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부장과 대화를 하겠다고 했더니 하필 그날부터 부장이 휴가를 갔다고 합니다. 당장 그 자리에서 부장에게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부장은 통화에서 <자기네가 우리 투쟁하는 거 다 알고 있다>며 휴가 끝나고 보자고 했습니다. 7월4일 2시반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만나기로 한 당일 아침 11시쯤 이제 차장이 전화가 와서는 부장이 코로나가 걸려서 면담취소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코로나가 걸렸으면 면담을 못하는 건 맞지만 전화는 되지 않냐>고 따졌습니다. 전화로 얘기를 해보자 하니 차장은 <그렇게는 못한다. 내일 학교가 용역과 만나니까 만난 이후에 이야기 나누자. 부장님한테 충분히 설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보자고 했습니다. 12시 집회를 마치고 학교 측이 용역업체와 이야기하고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부장을 만나서 <어떤 얘기를 하고 나왔는지 우리한테 얘기를 하라>고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이 없었고 IBS에서는 <자기네는 10원도 올려줄수 있는 돈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7월6일 본관에서 만나기로 다시 한번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학교는 본관 문을 못열게 막았다. 차장은 밖에서 면담을 하자며 절대 문을 못열어준다고 했다.

우리를 그렇게 무시를 하니 차장하고 면담 못한다, 더 높은 학교관계자를 만나야겠으니 불러와라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총무과 문을 둘러싸고 조합원들에게 문이 열리는 순간 누구든 들어가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려서 들어갔는데 차장은 총무과를 무단침입했으니 무단침입죄, 집시법위반 등등 여러 법들을 내세우며 고소고발을 하겠다고 IBS 측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강하게 나갔습니다. <고소고발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학교하고는 대화 못하니까 총장님 불러서 같이 얘기를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농성이 시작됐습니다.

3. 농성이전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이 근무중 겪었던 부당한 일을 꼽아보자면?

지금은 노동조합이 강화되면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옛날에는 안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학교직원들이 조합원들을 마음대로 불러가지고 야단을 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힘이 생기며 이후에는 그런 직원들의 갑질 같은 부당한 일들은 사라졌습니다.

노동환경, 휴게실, 샤워실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8년부터 계속 투쟁했습니다. 먼저 학교는 거의 다 유리로 돼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동안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습니다. 선풍기를 틀고 일할만한 여건도 되지 않습니다. 학교는 에어컨을 학생들이 올 시간에 맞춰서 7시~7시반에 틉니다. 우리는 1시간만 일찍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습니다.

샤워실, 휴게실의 경우 2016년쯤 노동부 실태조사 이후 전체 학교에서 2군데를 만들어줬습니다. 1년에 하나씩. 그런데 노동부에서 사진을 찍어가니 <보여주기식>이었습니다. 제대로 샤워할수 있는 조건이 안됩니다. 안에서 벌레가 나오고 옷을 갈아입을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작년 서울대에서 한 청소노동자의 죽음으로 다시 실태조사가 진행됐습니다. 노동부가 아닌 고려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싶다는 문의가 왔었습니다. 실태조사 이후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학교에 문의를 넣어서 다시 제대로 마련해주기로 했는데 지금 흐지부지 된 상태입니다.

농성을 시작할 즈음 연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집회를 학생들이 고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휴게실 샤워실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오랜기간 투쟁해온만큼 꾸준한 협상을 통해 이 문제들을 개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휴게실, 샤워실 문제를 특히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 문제가 더욱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습니다.

4. 농성기간의 일과가 궁금합니다. 출퇴근선전전, 문화제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많이 돈독해졌을것 같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연대도 꾸준히 이어진 것으로 아는데, 농성기간에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들은 역시 학생들과의 연대였습니다. 학생들은 우리가 농성을 시작하기 전인 3월부터 투쟁하는 매일매일을 함께 했습니다. 학생들은 노조에 무엇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는지 물어봤었습니다. 우리는 한꺼번에 안와도 좋으니 매일매일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들끼리 있으면 적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알아서 의논하더니 일주일치 조를 편성했습니다. 연대발언을 하고 고대문화라는 학내언론에서는 우리의 투쟁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도했습니다. 하루도 안빼놓고 연대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함께했습니다.

지나가던 학생들은 음료수를 사다주며 투쟁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농성을 시작하고는 더 많은 학생들이 투쟁에 함께했습니다. 어느 날은 농성장에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북적거리기도 했습니다. 잠도 농성장에서 자서, 학생들에게 집에서 편안하게 자고 오라고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집에 가기는커녕 3명씩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자발적으로 팀을 꾸려 농성장을 지켰습니다. 주말에도 학생들은 수시로 찾아와서 농성장에서 공부하고 잠도 자고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경썼습니다.

우리는 요구가 분명했습니다. 시급을 올려달라는 것이고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3월부터 이어진 아침 9시 투쟁과 12시 점심시간 투쟁을 농성중에도 계속 했습니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있지만 학생들은 24시간을 함께 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지 않는데 함께하니 감동적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은 학생들에게 힘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나눠먹을 반찬, 쌀, 돈까지 기증하며 십시일반 생활을 챙겼습니다. 조합원들은 한명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분회장인 저는 65세 이상의 분들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길까봐 이틀에 한번식 나와도 괜찮다고 설득했지만 한명도 쉬지 않고 투쟁했습니다. 하루도 안빼놓고 농성장에 나왔습니다. 많은 조합원들이 <올해처럼 투쟁이 재미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분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잘한 것이 아니다. 조합원들의 결의였고 학생들의 힘이었습니다.

5. 벌써 잠정합의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는데, 합의이후 달라진 지점이 있나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집단교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3개 학교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번째로 잠정합의를 했습니다. 아직 합의가 안된 곳도 있습니다. 13개 학교가 각 학교에서 투쟁하고 모두 합의해야 완전한 합의가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완전한 합의까지는 시간이 꽤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시급에 대한 부분을 잠정합의 했지만 그 외의 연차문제, 휴가문제, 병가문제 등은 아직입니다. 임금이 가장 중요한 문제니 그것을 먼저 합의하고 그 외의 요구사항들이 집단적으로 합의가 될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잠정합의라는 것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무산되지 않는 한 고려대학교 차원에서 일단은 투쟁을 중단합니다.

우리는 1년 계약직입니다. 매년 내년도 교섭을 전년도 11월에 시작합니다. 교섭이 잘 된다고 해도 계속 됩니다. 따라서 내년에 상황이 달라질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1년에 한번씩 시급을 올리기 위한 투쟁을 진행합니다. 호봉이 있지 않습니다.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나 20년 일하나 월급이 똑같습니다. 월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계속 교섭이 돼야만 합니다.

6. 잠정합의인만큼 앞으로도 풀어나갈 과제들이 많을 것 같다. 향후 투쟁방향은 어떻게 될지?

중요하게 나서는 문제는 연차문제입니다. 1년쯤 전에 연차법이 바뀌었는데 1년 계약직에게는 아주 부당하게 바뀌었습니다. 연차법에 따르면 366일 이상 근무자에게만 연차를 주도록 돼 있습니다. 그동안은 1년간 근로관계가 존속하고 80%이상 출근하면 15일의 연차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년간 근로관계가 존속하고 80%이상 출근하더라도 1년의 근로를 마친 다음날까지 근로관계가 있어야만 15일의 연차가 발생합니다. 1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우리같은 경우엔 최대 11일의 연차밖에 부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사가 1년마다 바뀌는 조건에서 연차를 챙길수 없게 됩니다. 정규직들은 퇴직할 때까지 연차가 24~26개가 생기는 반면, 우리는 회사가 바뀌면서 11개만 남습니다. 1년 계약직에게만 불리한 법입니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7. 분회장님이 노조활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 노조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저는 여기서 12년째 근무중입니다. 2009년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2010년에 직원이 됐습니다. 이곳 시스템은 2달후 노동조합에 가입이 필수적입니다. 처음엔 좋아서 가입한 것도 아니고 노동조합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가입한 것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하라고 그래서 했습니다. 그런데 활동을 하다보니 왜 선배들이 노조를 그렇게 강조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노조가 없는 개인으로 따지면 힘이 약합니다.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무시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조는 혼자 해결할수 없는 문제들에 있어서 집단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학교 측과 계속 투쟁하는 과정에서 노조는 건드릴수 없을 정도의 힘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노조활동을 하다보면 사람들 한명한명 비위 맞추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한차례 크게 투쟁을 하고나면 그런 사소한 것들은 싹 잊어버리게 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축적되는 과정인 것 같다. 투쟁을 하면서 계속 깨달아 가는 과정입니다.

8. 이외 하고 싶은 이야기. 주변에 전하고 싶은 말.

다시한번 연차법 문제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시급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 많이 이슈화가 됐지만 연차법과 관련해서는 잘 알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또 우리의 투쟁에 대해서, 특히 비정규직투쟁에 대한 많은 보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년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있는 그대로 실어줄 언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고 시급 100원, 200원 올리기 위해 투쟁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욕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관심을 가질수록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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