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위에, 전쟁은 증오라는 감정위에 싹튼다. 음양을 이루는 사랑과 증오라는 이 두감정에 공통된 것은 타자를 쟁취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평화의 경우, 화합과 유대의 구축을 통하여, 전쟁의 경우, 파괴와 예종을 통하여. 전자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는 평화적인 설득의 힘을 활용하고, 후자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무력을 활용한다. 전자에 있어 우리는 상대와의 대화를 기대하고, 후자에 있어 우리는 상대가 소외되는 것을 용인한다. 이러한 음양의 변증법은 우리로 하여금 강자가 늘 약자에 대해 승리를 거두리라 믿게 만들지 모르나, 겉보기와 달리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증오는 증오를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분열된 집단을 다시금 하나로 모으기 위해 사람들은 늘 제3의 해법을 필요로 하고, 인간사에 있어 문제를 단칼에 정리해줄 ‘최종해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1. 증오의 정치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있어 자기증오라는 감정(보다 완화된 형태로는, 자괴감)이란 우리가 우리자신의 원대한 이상을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실현하지 못할 때 마음속 깊은 곳에 맺히는 혐오감이다. 간혹 이 감정은 타자에 대한 증오라는 집단적 차원의 정치적 감정으로 응집되기에 이르고, 절대적으로 순수한 하나의 이상을 내세워 한 집단전체를 정적으로 지목하여 집단학살, 심지어는 인종학살을 자행하게끔 하기도 한다. 절대적이지만 피에 물든 하나의 이상에 대한 현혹, 바로 이러한 현혹이 절대적인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자기정당화와 그 이상에 반하는 자들을 숙청하기 위한 폭력의 상승작용을 낳으며, 이로 인해 몇몇 민족들을 자멸의 길로 이끈다.
인류는 늘 자신의 현재의 삶과 미래를 통제하고, 미지의 영역을 예상하는 동시에 이에 맞서 싸우고, 만물의 종언을 알리는 시간의 흐름에 대항하여 대책을 마련해둘 필요를 느껴왔다. 이러한 실존적 고뇌는 인간의 발달과정에 고유한 것인 동시에,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기에 자신은 자기자신에 대해서마저 이질적인 존재라는 기이한 감정을 인간에게 안겨준다. 인간은 늘,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하여 인류는 이같은 고뇌에 대해 서로 얽히고설킨 세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중 하나는 인간사에 고유한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자신의 영역밖으로 밀어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보수주의적 성향이다. 두번째 방식은 과학이나 이데올로기나 종교 등의 사고체계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굳히는 것이다. 이것은 방법론적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안위를 위해 직접 실천에 나서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발명해내는 길이 있다. 이것은 진보주의적 성향이다. 이러한 대응방식들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과 긍정적인 해법을 향한 실증주의적 신념은 음양의 양면을 구성하며, 인류의 발전에 대한 믿음, 즉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개선시켜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상대에 대한 기피와 혐오(외국인혐오 등)를 야기하지만, 또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수치심을 낳게 된다. 생명을 지키고 잉태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충동, 즉 사랑과 윤리가 이러한 심리상태를 억누르지 못한다면 우리는 파국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단일체’(단일한 개인체, 사회체, 역사체)라는 개념과 그에 따르는 일체감이 자신의 순수함과 단일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안에 내포된 불순물을 밖으로 추방하려는 충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런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비롯된다. 자기자신에 대한 증오를 이렇듯 바깥으로 뿜어내려는 투사작용은 ‘나’와 다르고 그렇기에 불쾌하고 불순한 것의 담지자가 될 수 있는 타자에게서 배출구를 찾게 된다. 자신에 대한 증오가 타자에 대한 증오로 전환되는 거울효과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죽음, 그리고 자살에 대한 공포를 배척하기 위해서이다. 이차적으로는 타자 또한 나처럼 자신의 죽음과 자살에 대한 공포를 나에 대한 증오로 전환할지 모르는 법이므로, 이처럼 위협적인 타자의 증오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자기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기류를 조장하게 된다.
시중에 통용되는 지배적 정치관념들로부터 타자를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틀에 끼워맞추는 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와 닮지 않았거나 나와 뜻을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내게 적대적인 사람일지도 모르는 법이고, 이 ‘어쩌면’이 야기하는 불안속에서 피아를 색출하고 편가르는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피아를 가늠하는 사이에 우리는 우군을 찾으려 들고, 반대편을 발견해내고, 힘 혹은 정당성을 얻기 위해 동맹관계를 맺는다.
이처럼 타자에게 적이라는 일종의 제도적 위상을 부여함으로써 누가 우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정하는 것은 정치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이 정치적 정체성이 개인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데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로 인해 타자를 악마화하는 동시에 집단적인 나르시시즘(국수주의)이 형성되어 조국, 민족, 문명, 평화, 사랑과 같은 보편적 정언명령을 타락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애국심의 길로 경도될 위험이 생겨난다.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는 자기애-타자혐오 사이의 이러한 대립을 활용하는 동시에 대중의 불만을 밑거름 삼아 서로 다른, 더 나아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여러 비전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소속집단을 구성해낸다. 사회적 경쟁관계는 다양한 사회계층으로 구성된 다원적인 사회에 내재적인 것이고, 이러한 경쟁이 촉발하는 폭력이 사회를 자멸로 이끄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경계선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문화는 ‘공존’에 필요한 틀과 규범을 정립하는 제도를 통해 인간들의 야만적 폭력을 길들인다. 문화에 의해 길들여진 폭력에는 정쟁과 국가폭력이라는 형태가 있는데, 이러한 형태의 폭력은 합법성과 정당성이라는 개념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 합법성과 정당성은 국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정치인들과 지식인들)에게 상호적 신의의 의무를 지우는 기준이 된다. 이 두가지 개념은 서로 너무도 가까워서 정치체와 시민사회는 때로 편의에 의해 이들을 자의적으로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합법성과 정당성은 분명 다른 것이다. 합법적인 정치체제나 적법한 정부이지만 그 태생자체가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거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당성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여러 국민들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정치적 전통들이 역사적 정당성의 의미를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다자적이고 개방된 세계에서 서양과 동양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양의 고대그리스적 전통은 사적∙사회적∙제도적 폭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정치적 관행의 개념을 탐구하고 가다듬어왔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적 질서를 강요한다. 그것은 정기적으로 강자와 약자(다수와 소수) 사이에 하나의 위계적 계약을 맺고 그 이행상황을 통제한다. 그런데 한번 정해진 다수가 늘 옳고 소수는 늘 그르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치적 진리는 신학적 진리와 달리 절대불변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쇄신과 교체라는 원칙은 그러므로 정치적 진리를 시험해보기 위해 필수적인 원칙이다. 정치적 토론은 정치에서 알력관계의 측면을 완화하여 민주주의가 모든 민중의 이름으로 국민을 대표할 수 있게 해주고, 민주주의는 국민이 자유로이 자신의 앞날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이와 동시에, 민주주의원칙은 민중의 마음을 끌기 위해 선거공약을 남발하고 정파간 권력투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적 질서는 모종의 방임주의적 무질서를 포용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아무런 제약 없는 순수한 자유 그 자체라 믿는 경향이 생긴다.
동양은 이러한 고대그리스적 민주주의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또 이 민주주의는 종종 전쟁을 통해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또, 전쟁에서 이겼다하여 평화시 국가를 통치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동양의 세가지 전통적 철학인 유교, 불교, 도교에 입각한 정치적 전통에 대한 재발견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세가지 가르침에 핵심적이고도 공통된 관념은 공적인 윤리를 둘러싼 사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도덕의 문제이다. 도덕은 보편타당한 미풍과 상식에의 애착이 거룩하게 승화된 양태로, 국가적 유대감과 공적 신뢰관계를 견고히 다져주는 접합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들이 설파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불교에 따르면 사람은 그 누구든 실재에 다다를 수 있고 부처가 가르치는 바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는 것, 즉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도교에 따르면, 두가지 진실이 부딪힐 때 그 누구도 자신의 진실이 상대의 진실보다 우월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는 것, 즉 사고와 토론의 자유이다. 마지막으로, 공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서로 말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형제로 여기며, 서로 합의를 이루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양에서건 동양에서건, 자유∙평등∙박애의 실천은 단순히 합법성과 관련된 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원칙들을 실천하는 과정과 방식이 사람들사이를 이어주는 조화롭고 상식적이고 납득가능한 것에 대한 공감대와 결합하는 한에서 이 실천은 비로소 인간적이고 평화로우며 정당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투쟁에서 옳고 그름의 판별의 척도가 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의 원칙이 사회적 조화라는 공리와 얼마만큼 어우러지며, 이 어우러짐이 국민의 공익이라는 공공윤리와 얼마만큼 관계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타주의는 모든 형태의 교조적, 사회적 혹은 당파적 이기주의(부정부패)보다 우위에 있는 하나의 도덕적 의무인 것이다. 동서양의 정치적 전통은 이같은 근본원칙을 공유하고 있으며,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것과 동양의 정치적 전통의 경계를 가르는 것은 다만 정치의 주체가 되는 단위, 개체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국가 = 민족 = 엘리트(다원적이지만 하나의 단일한 조직 아래 뭉친) = 당대의 지배적 정치 관행’인지, 혹은 ‘국가 = 민족 = 엘리트(다원적이지만 개방적이고 가시적인 경쟁관계를 이루는 하위엘리트그룹들) = 지배적 사상(하지만 정치적 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다양한 사회적 관행들이 공존)’인지.
이러한 공공선이라는 관념은 국민이라는 관념에 내재된 보편적인 이상들의 원천으로서, 공공선과 국민관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데올로기란 오직 자신만이 민중의 뜻을 정당하게 대변한다고 자부한다는 점에서, 모든 이데올로기는 이 공공선을 자신만의 배타적 소유물로 전유하고픈, 자신외에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픈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대세계는 서양의 정치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첫째, 도를 넘은 상업적 이데올로기는 인간들을 소모성 마네킹이자 정치사회적 정책을 결정하는 금융경제의 조정변수에 불과하게 만든다. 인간들은 물론 권리에 있어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시민으로서 인간들은 권력에 있어서도 의무에 있어서도 결코 평등하지 않다. 상업적 이데올로기하에서 평등이라는 인간윤리는 빈곤에의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 개인의 안위와 행복과 편협한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화법에 의해 잠식당해버린다. 사회는 소리소문없이 점점 더 부유해져가는 최상급부유층과, 마찬가지로 소리소문없이 직장을 잃거나 자신의 능력과 경력이 평가절하 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나머지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다. 이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 두려움은 내가 내 부족함으로 인해 사회에서 낙오되고 있다는 자책감과 깊이 연관된 자생적이고 내재적인 두려움이다.
2) 스탈린주의적 이데올로기는 혼란을 야기할 뿐인데, 왜냐하면 지상에 계급없는 속세의 천국을 건설한다는 것은 곧 ‘내부의 적’이라는 관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고, 이 관념은 증오에 찬 불신을 부추기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로이 사고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는 공포를 조장하여 사람들의 맹목적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군사화된다. 군사사회가 아니라면 보다 약한 정도로 이런 사회는 경찰사회가 되게 되는데, 이는 곧 문명사회의 반대말인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두려움은 내가 위협에 굴복하여 굴종을 택하고 있다는 수치심과 깊이 연관된 외생적, 외재적 두려움이다.
위의 두가지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 겉으로는 자유∙평등∙박애를 표방하지만 암암리에 극단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공포에 기반을 둔, 인간을 멸시하는 이데올로기도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계급논리나 진영논리나 좌우논리를 통해 자기혐오를 특정타겟집단에 대한 혐오로 응축하고, 패자에 대한 승자의 지배를 그 작동기제로 갖는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안에서 인간은 소모되어야 마땅한데도 그에 감히 저항하는 물건으로 여겨지거나,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라는 말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이루어지거나, 강자나 다수가 약자나 소수를 찍어누르거나, 거대자산가가 익명의 부지런하고 무지한 소액예금자를 기만한다.
사태가 이러하기에, 증오에 두려움으로 맞서거나, 경계심에 불신으로 맞서거나, 평화를 얻기 위해 전쟁에 전쟁을 선포하는 데 머문다면 우리는 결코 부당한 폭력에 대한 고발을 통해 사회적 증오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증오는 또다른 자기기만의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며, 이것은 모든 극단주의의 원천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모든 국가들이 어느 시점에서건 민족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내전에 직면해야 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시련이 오늘날 어디선가 다시금 태동하게 된다면, 그것은 세계가 서서히 자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서곡이 되지 않을지 우려할 일이다. 국가는 대립적인 이해관계로 국민을 혼란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고, 역사나 타자나 적들을 악마화하지 않고도 발전을 이룩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차이속에서 통일성을, 다양성속에서 통합을, 상호적 관용속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구축해내는 공공재이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적을 상정하는 것은 더이상 성공적이지 못하다. 절대적인 적을 상정하고 타도하려 드는 것은 결국 타인이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와 다름에도 우리의 동류인 사람으로, 인간이하의 존재도, 위험한 이방인도, 불결함의 화신인 악마도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동류와 결코 쉬 타협하려 들지 않는 존재로, 정치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를 부추긴다. 그렇기에 자신의 동류인에게서 자신과 다른 점을 용인할 수 있는 인간의 내밀한 미적 감각을 드러내게 해주는 조화를 촉진하는 것은 정치보다는 예술의 몫일 수 있다. 국가의 파괴를 지향하는 전쟁이라는 관념에 맞서, 국가의 건설을 가능케 하는 진정한 자산은 예술과 문화인 것이다.
2. 1973년 파리 베트남평화협약에 비추어본 화합과 화해의 개념
전쟁이나 갈등상황이 특히 군수산업이나 특정파벌의 이익과 같은 숨겨진 이익에 복속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국가의 안위만을 놓고 생각할 때 전쟁이나 갈등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리협약은 실상 적대행위를 끝맺는 휴전협정이었지만, 현대사에서 이것을 실질적인 평화협정으로 인정된다.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진정한 평화는 2년후인 1975년에 가서야 실현되었고, 베트남의 통일은 1976년 단일정부, 단일수도가 확립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다.
1968년부터 베트남독립을 둘러싼 파리회담을 개최키로 결정한 것은 이중의 판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베트콩이 대도시들에 대한 일괄적 공격을 단행함과 동시에 (1968년 구정대공세), 어느 한편이 전장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이, 하지만 또한 대도시들에서 혁명에 동조하는 반란이 일어날 일도 결코 없으리라는 것이 자명해졌던 것이다. 미국이 체면을 구기지 않고 베트남으로부터 철수할 수 있는 비군사적인 정치적 해법이 필요해졌다. 그것은 전쟁이 외세의 영향을 벗어나 ‘베트남화’됨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 사이 국제여론은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의 정당한 투쟁이자 인간해방을 위한 정당한 투쟁으로서 베트남전쟁을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공식적으로 회담테이블에는 두개의 진영이 마주하고 있었다. 첫째는 미국과 베트남공화국(사이공), 둘째는 베트남민주공화국(하노이)과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베트콩)이었다. 하지만 회담이 진행됨에 따라 베트남인들의 눈앞에 또다른 경계선이 가시화되었다. 체면을 유지한 채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 그리고 외세를 배격한 채 자국문제를 자국민들끼리 해결하고자 하는 베트남인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자국민까지 타겟으로 삼았던 이데올로기적 적이라는 관념은 이제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뛰어넘어 외세에 대한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원한으로 화하기에 이르고, 이는 곧 ‘우리들’ 베트남사람들끼리 남아서, 한지붕아래서, 프랑스식 표현을 빌자면 ‘집안의 치부는 집안사람들끼리 닦자’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장에서 서로를 정면으로 적대하며 마주보았던 두세력의 대립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줄, 정-반-합의 ‘합’을 이루는 데 필요한 새로운 개념과 평화적인 토양을 마련해줄 제3의 세력이 당시에 실제 존재하였다.
파리회담과 파리협약이 전장에는 참여했으나 협상자리에는 끼지 못한 제3의 부재하는 세력을 인정하기에 이른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것은 ‘제3세력’에, 중재자의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하고 비조직적인 사람들, 세속적, 지적, 종교적 지도자들, 하지만 모두들 한마음한뜻으로 평화와 비폭력을 바라던 그 사람들에게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널리 통용되는 ‘시민사회’나 ‘여론’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전에 이미 그에 해당하는 세력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쟁의 ‘베트남화’와 동시에 ‘낙방’(금악(金樂))이라는 평화운동이 등장하였는데, 시인이자 가수인 트린-콩-손은 이 운동의 기수였고 여전히 그리 여겨지고 있다. 애국주의적 선동과 ‘심리전’에 따르는 조작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협상은 이제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점점 다져지게 된다. 파리협약은 베트남전이라는 골육상쟁의 상처를 치유할 끈으로서 국민적 화합과 화해라는 정치심리학적 개념을 인가하기에 이른다. 이 개념의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영역을 정하는 것은 정전협정의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기에 파리협약은 이것들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집안사람들끼리’, 베트남인들끼리 평화적으로 해결할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국민화합과 화해라는 개념은 서로 대적하는 상대들을 한 데 모아 국민적 불화를 극복하는 개념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화합의 정신은 하나의 원칙이자 미덕으로 자리잡아 파멸시키거나 복속시켜야 할 ‘내부의 적’이라는 관념을 극복하게 해주는 동시에, 선과 악을 넘어선 순수단일민족사상을 부각시키게 된다. 달리 말해, 화합과 화해라는 이중의 개념은 양분된 상황에서 자신의 앞날을 모색하는 한 민족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개입없이 자신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다원화된 문화집단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다. 남은 문제는 이데올로기적 선택지에 따라 이같은 개념을 실제행위로 옮기는 일이다.
잘 생각해보면, 국민화합과 화해라는 개념은 단순한 합법성을 뛰어넘어, 모든 국민들을 역사앞에서 평등하게 여기는 대내적 평화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다. 달리 말해, 국민이라는 개념, 그리고 국민을 하나의 통합된 개체로 유지시켜주는 국민화합과 화해라는 개념들이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을 때 비로소 평화가 결정적으로 전쟁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좌우대립이나 진보-보수 대립은 민주주의에 내재적인 다수·소수간 균열을 악용하여 국수주의적 의제를 통한 대중선동에 기반한 정치적 마케팅을 자행할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이 한 조직의 당파적 전유물에 국한되기에 이르고, 국민적 평안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국민이라는 개념은 투표를 통해 획득한 정당성으로도, 합법적인 승계를 통해서도 일부에 의하여 전유될 수 없는, 국민을 구성하는 개개인들 모두를 아우르고 위하는 개념인 것이다.
룽 칸 리엠(프랑스베트남친선협회대표, 정신과의사, 심리학박사)
*기사제휴: 21세기민족일보
*베트남어에서 추상개념들은 흔히 음-양, 내-외 관계를 나타내는 두개념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베트남어로 ‘전쟁/평화’를 의미하는 ‘시엔-트란/화-빈’은 각각 폭력-분리/화합-균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증오/사랑’을 의미하는 ‘한-투/탄-여’인데, 이는 각각 탓하다-증오하다/근접성-사랑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치는 ‘신-트리’로, 이는 근본적인/주요한/핵심적인 것을 통해 통치하다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