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는 GH의 친미반북언행을 종합분석한 백서를 22일 발간했다.
백서는 첫번째로 'GH가 집권하면서 MB정부의 친미반북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2.25취임사, 3.1절기념사, 3.4대국민담화문, '국군'장교합동임관식, 7대종단지도자만남 등에서 일관되게GH는 북코리아와 현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을 드러내며 문제를 심화시키는 반북대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또 백서는 남의 국민들이 GH의 5월 방미계획을 미백악관발표를 통해 알게 된 점을 꼬집으며 '그 친미노선은 뼈속까지 친미라는 MB와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두번째로 백서는 'GH는 한나라당비대위원장시절 철저히 친미반북적 입장에서 당을 운영하였다'고 밝혔다.
김정일국방위원장서거 국면에서 조문단구성을 앞장서 반대한 점, '친북좌파색깔론'을 선거에 이용한 점, 대북'제재'추진을 주도한 점 등이 그 친미반북적 입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세번째로 백서는 'GH는 정계입문부터 한나라당·새누리당국회의원으로 있는 내내 철저히 친미반북입장에 서 있었다'며 그가 '김대중·노무현정권시절 6.15공동선언·10.4선언 흠집내기에 주력하거나 '색깔론'공격을 주도하였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보안법폐지는 친북활동의 합법화'라는 입장을 밝힌 것, 황장엽·조갑제 등과 함께 '북인권'때리기에 앞장서는 등의 반북적 행보를 보였으며 더글러스 파이스 미전국방부차관을 만났을 때는 '한미동맹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미국이므로 불샐틈없는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친미적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GH는 친미박북노선을 걸으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방북해 7.4원칙과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약속했다'고 백서는 지적했다.
2003년 GH는 '코리아반도 평화를 위한 '대북특사'자격으로 방북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2004년에는 마이니치신붕과의 회견에서 '남북관계발전을위한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남북관계에 관한 모든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백서는 '약속이행에 대한 소신이 강한 GH는 직접 방북하여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7.4공동성명과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한 합의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백서는 '남북대화를 재개한다면 전쟁에서 평화의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반북적이고 반통일적인 대결정책을 고수한다면 그 귀결은 다시금 코리아전이 발발하며 민족최대의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래는 코리아연대가 발표한 백서 전문이다.
정세는 전쟁전야를 방불케하는 살벌한 형국이다. 2012.12.12 ‘광명성3호’2호기발사와 2013.2.12 3차핵시험에 대해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가 강행되고 이에 편승한 남(남코리아)의 GH(박근혜)정부의 친미반북발언과 미남북침전쟁연습으로 인해 코리아반도의 전쟁발발가능성은 1950년 당시를 능가하고 있다. 현재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GH정부가 더 이상의 친미반북적인 행동을 중단하고 즉시 특사를 파견하는 것뿐이다. 이 백서는 GH가 저지른 친미반북적 언행을 종합분석함으로써 GH와 국민이 진실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작성되었다. 1 GH는 집권하면서 MB(이명박)정부의 친미반북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먼저 GH는 북(북코리아)과 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을 드러내며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반북대결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2013.2.25 GH는 취임사에서 “최근 북한의 핵실험은 국민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도전이며, 그 최대 피해자는 바로 북한이 될 것”이라며 “더이상 핵과 미사일 개발에 아까운 자원을 소모하면서 전세계에 등을 돌리며 고립을 자초하지 말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함께 발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였다. 2013.3.1 3.1절기념사를 통해 “북한은 핵개발과 도발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고립과 고통만 커진다, 북한도 그동안의 남북합의와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신뢰의 길로 나오기 바란다”며 마치 북이 미·유엔과 남과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사실을 뒤집었다. 2013.3.4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로 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미남의 키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이라는 북침전쟁연습으로 인한 전쟁위기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2013.3.8 ‘국군’장교합동임관식축사에서는 “국가가 아무리 강한 무기가 있고, 아무리 핵무기가 발전해도, 무기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국민은 굶주리는데 핵무기 등의 군사력에만 집중한다면, 그 어떤 나라도 결국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급기야 2013.3.19 7대종단대표들과의 만남에서 “북한은 핵무기개발에 국력을 낭비하면서 국민의 삶이 무척 어렵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며 북의 ‘문호개방’에 종교지도자들이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국민일보, 2013.3.19) 또한 그 친미노선은 뼈속까지 친미라는 MB와 다를 바가 없다. 지난 2013.2.26 GH는 취임다음날 미대통령 오바마의 경축사절단장인 미국가안보보좌관 톰 도닐론을 만나 “지난 60년간 쌓아온 양국간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21세기형 포괄적 전략동맹을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하였다. 이어 “북한의 핵무장은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는 철저히 미국이 원하는 남의 입장으로서 GH가 앞으로 친미반북의 길을 갈 것임을 굳게 다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의 국민들이 GH의 5월 방미사실을 미백악관발표를 통해 알게 된 점도 미남관계의 종속적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3.3.12 톰 도닐론은 “본토(미국)와 동맹국(남) 방어를 명백히 재확인한다”며 “5월에 백악관에서 박근혜대통령을 환영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였다.(YTN, 2013.3.12) ‘본토’라는 말은 은근히 남이 미국의 사실상 51번째 주라는 것을 암시하는 굴욕적인 표현이다. 미백악관의 발표후에야 청와대는 GH의 방미사실을 확인하였다. 2 GH는 한나라당비대위원장(비상대책위원장)시절 철저히 친미반북적 입장에서 당을 운영하였다. 2011.12.19 GH는 김정일국방위원장서거와 관련하여 “이런 때일수록 모든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0.1%의 가능성까지 대비할 수 있는 물샐틈없는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며 국상중의 북동포를 위로해줄 대신 심히 자극하였다.(뉴스1, 2011.12.19) 2011.12.21 GH는 비대위원·중진의원간담회에서 “김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해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초당적인 협력과 대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연합뉴스, 2011.12.21) 또한 주남미대사 성김을 만나 “북한의 김정일위원장‘사망’으로 남북관계라든가 동북아평화, 이런데 영향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미관계가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고, 공조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였다.(폴리뉴스, 2011.12.21) GH는 말로는 ‘여야간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였으나 실상은 정부나 국회 차원의 조문단구성을 앞장서 반대하였다. GH는 당시 한나라당내부에서 유일하게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만났고 노무현정부시절 정동영전통일부장관을 제외하고는 정치권중 거의 유일한 방북인사인데도 불구하고 야당의 국회차원의 조문단구성제안을 단호히 거절하였다.(내일신문, 2011.12.22) GH는 4.11총선기간 선대위원장을 맡고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고, 한미동맹도 폐기하고, 대기업해체를 외치는 세력이 국회를 장악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며 ‘친북좌파의 국회장악’이라는 논리로 야당을 매도하고 이를 선거에 철저히 이용하였다.(연합뉴스, 2012.3.21) GH는 4.11총선 하루전까지도 “야당은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군철수하고 제주해군기지도 중지하겠다고 한다, 지금 북한이 핵실험으로 협박하고 있는데 철지난 이념논쟁 때문에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저버려도 되는 것인가”라며 철저한 ‘친북좌파색깔론’을 선거에 이용하는 전형적인 구태정치를 보여주었다.(아이뉴스24, 2012.4.10) 2012.4.13 새누리당선대위해단식에서 GH는 북의 미사일발사와 관련 “유엔안보리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이고 한반도안전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행위”라고 규정하고 “북한은 기회의 창을 스스로 닫아버리면서 고립과 퇴보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신뢰를 쌓아서 민생발전의 길로 갈 것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폴리뉴스, 2012.4.13) 2012.4.16 GH는 비대위전체회의에서 “국회차원에서 북한에 대해 미사일발사를 규탄하고 핵실험과 같은 추가적 도발을 하지 말 것과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새출발을 할 것을 촉구하는 대북결의안을 냈으면 좋겠다”며 대북‘제재’추진을 주도하였다. 이어 “발사소요비용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주민의 식량6년치를 살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한다”며 “이거야말로 반인권적인 행위”이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경제난을 해소하고 가장 기본적 인권인 먹고사는 문제에 도움을 주고자 해도 북이 스스로 걷어차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북을 최대한 자극하였다.(세계일보, 2012.4.16) 2012.7.10 GH는 대선출마후 밝힌 선언에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할 땐 방향이 있어야 한다, 남북관계나 국제사회에서의 합의부터 지켜야 한다, 기존의 것도 안지키면서 새로 만들어서 하자는 건 말이 안되고, 기존 합의를 서로 지키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MB노선의 계승자임을 스스로 확인하였다.(뉴스1, 2012.7.10)
3 GH는 정계입문부터 한나라당·새누리당국회의원으로 있는 내내 철저히 친미반북입장에 서있었다. 특히 6.15공동선언·10.4선언이 채택된 김대중·노무현정권시절에는 선언들의 흠집내기에 주력하거나 ‘색깔론’공격을 주도하였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발표 불과 5일후 GH 당시의원은 국회통일외교통상위에서 “이번 회담에서 1회적인 고향방문단교환으로 결론이 변질됐는데 그 경위를 밝히라”며 “이번에 김대중대통령이 남북연합, 연방, 통일로 요약되는 개인적인 통일방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한 경위를 밝히라”고 비방하였다.(한국일보, 2000.6.20) GH는 2000.10.11 국회통일외교통상위전체회의에서 대북식량차관제공 관련 “인도적 차원에서 북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왜 하필 60만t이냐”며 “북한이 100만t의 지원을 요청하고 일본이 50만t을 지원하니까 아무런 산출근거도 없이 그런 것 아니냐”고 추궁하였다.(국민일보, 2000.10.12) GH는 북의 초청의사도 수차례 거절하였다. 북은 2000.10.10 조선노동당창건기념행사에 김근태·이부영·GH를 초청하였으나 GH는 “지난주 초청을 받았지만 여야가 북한초청에 응하지 않기로 한만큼 당인의 입장에서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00.10.9) 다음해 민주당 김근태최고위원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약속’확인을 위한 방북동행제안에 대하여 GH 당시부총재는 “김최고위원이 사전에 나와 상의도 없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국회의원이 대북문제에 대해 개별적으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일축하였다.(동아닷컴, 2001.7.4) 이후 GH는 CBS라디오에 출연하여 “남북평화정착을 위해 내가 할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 북한을 방문할 의사가 있다”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답방과 관련 “남북정상회의합의사항으로 답방이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변화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동아닷컴, 2001.8.16) 그러나 얼마후 김대중대통령이 남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하여 사과한 것과 관련 한나라당의 “주사파논리와 흡사하다”는 입장에 동의하며 “김대통령의 말대로라면 6.25전쟁때 우리를 도운 16개국도 북한에 사과해야 하느냐”며 또다시 일천한 역사의식을 드러내며 북을 자극하였다.(동아닷컴, 2001.8.26) 2002.4 영국 캠브리지대동아시아연구소학술회의에 참가한 GH는 “북한이 경우에 따라 남한체제를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경제와 외교의 역량강화 등 국내적 통일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며 북을 가장 자극하는 ‘흡수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일이 가능한 대외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미동맹관계 및 한미일공조체제의 굳건한 구축과 함께 미-북, 일-북 수교, 동북아경제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연합뉴스, 2002.4.3) 노무현정권시절 한나라당대표를 맡은 GH는 ‘국가정체성’논란을 제기하였다. 2004년 GH는 “야당에서 노대통령에게 간첩을 민주화인사라고 한 정부가 민주주의냐고 묻고, 북한경비정 NLL침범에 대해 재발방지요구도 못하고 경고도 못하고 있어 그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것에 대해 대답은 못하면서 박정희대통령이 어떻고 그런 얘기를 자꾸 하는 것은 문제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였다.(매일경제, 2004.7.26) 이와 관련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GH는 ‘NLL을 둘러싸고는 남북간에 합의가 없다, 북한은 다른 경계선을 주장한다, 그래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근본적인 해법은’이라는 질문에 대해 “북한이 NLL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도 1953년부터 바다의 비무장지대처럼 그것을 인정해왔다. 그런데 최근의 협의과정에서 그것을 확실히 하지 않은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NLL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었다.(한겨레, 2004.7.28) 2004.8.4 당시 국방부장관 윤광웅과 만난 자리에서 GH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삭제하자는데 그게 과연 북핵해결보다 급한 일이냐”고 시대착오적인 ‘주적론’을 고창하였다.(한경닷컴, 2004.8.4) 또한 국가보안법개폐문제와 관련 “상대가 있는 것인데 북한은 노동당규약이나 적화통일 등 하나도 변한 게 없으므로 폐지해서는 안되며 우리나라만 정신적으로 무장해제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위험한 일”이라고 반민주적이고 반통일적인 입장을 확인하였다.(연합뉴스, 2004.8.4) 2004.10.17 GH는 긴급‘안보’대책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후방에서 아무런 저촉없이 친북활동이 벌어지면 전방에서 우리군인들이 어떻게 국가를 수호하겠느냐’며 ‘국가보안법폐지는 친북활동의 합법화’라는 입장을 밝히며 극우적인 ‘국가관’을 역설하였다(제주일보, 2004.10.18) GH는 황장엽, 조갑제와 함께 ‘북인권’때리기에도 앞장섰다. 2004.11.8 국회의원회관로비에서 열린 ‘북한홀로코스트전시회(북한대학살전-21세기아우슈비츠죽음과절망)’에 참석하여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더이상 강건너 불구경하듯 소극적이어서는 안된다, 북한동포의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남북화해를 기대할 수 없다”며 북을 최대한 자극하였다. 이어 “북한이 싫어한다고 안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앞으로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문제에 대해 적극 협조하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였다.(오마이뉴스, 2004.11.8) 당시 노무현정부의 남북수뇌회담추진노력에 대하여 GH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나 북한핵문제해결을 위해 추진해야지, 투명성과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면 오히려 안보에 대해 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딴죽을 걸었다.(동아일보, 2004.11.24) 한편 GH는 2005.3.16 미워싱턴을 방문, 전미국무차관 아놀드 캔터를 만나서 “북한을 6자회담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실현이 가능한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이나 북미수교’ 등 ‘대담한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변화된 듯한 발언을 하였다.(YTN, 2005.3.16) 그러나 불과 하루뒤 존스홉킨스대국제관계대학원간담회에서 노무현정부시절의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삭제와 관련 “북한은 경제협력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대상이며 동시에 군사적으로는 주적이란 이중성을 갖고 있다”며 “주적개념이 없어지려면 북한의 군사적 의지, 능력, 대치 등 3가지 측면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기존의 반북적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어 국방차관 더글러스 파이스를 만나 “한미동맹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미국이므로 한미관계가 전통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물샐틈없는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시 기존의 친미적 입장을 확인하였다.(매일경제, 2005.3.17) 4 이렇듯 친미반북노선을 걸으면서도 GH는 필요에 따라서는 방북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만나고 7.4원칙과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약속하였다. GH는 북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초청을 받고 유럽-코리아재단이사장 장자크 크로아와 함께 재단의 이사자격(당시 한국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으로 2002.5.10 인천을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11일 입북한 뒤 14일 판문점을 통하여 귀환하였다.(연합뉴스, 2002.5.10) 이후 북이 공개한 GH의 방북기록영화에 따르면 3박4일간 GH는 북여성단체대표단, 천도교청우당 유미영위원장을 만났고 주체사상탑을 방문하여 내부까지 들어가 국제기구, 주체사상연구소 등에서 보내온 현판들을 자세히 관람하였다. 당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1일 베이징에서 고려항공편으로 방북을 추진중이던 GH일행 4명에게 자신의 특별전용기를 보내주었고 2000년 6.15정상회담 당시 김대중대통령이 묵은 백화원초대소에서 묵게 배려하는 등 극진히 대접하였다.(연합뉴스, 2002.5.15) 또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김용순비서, 김기남사상담당비서, 임동옥제1부부장, 김완수부부장과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서기국장을 비롯 주요인사들이 환영만찬 등에 참석하였고 12일에는 김용순비서와 회담하였다.(한국경제, 2002.5.13, 연합뉴스, 2002.5.14) 북언론은 ‘국회의원이며 한국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 ‘여사’라는 존칭을 쓰는 등 GH를 격있게 대하였다. 특히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인사를 단독면담1시간, 만찬2시간 등 모두 3시간이나 만나며 파격적으로 배려하였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4일 자정 “김정일동지께서는 13일 평양을 방문하고 있는 남조선 국회의원이며 한국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인 GH여사를 접견하셨다”며 “김정일동지께서는 GH여사의 평양방문을 열렬히 환영하고 따뜻한 담화를 하셨다”고 전하였다.(연합뉴스, 2002.5.14) GH는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하여 “대화하기 편했다, 내 제의에 대해 시원시원하게 답변했다”고 평가하였다.(연합뉴스, 2002.5.14) 앞서 출국직전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난 GH는 “김위원장과 만나게 되면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며 “부친인 박정희전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이 합의했던 7.4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이 한반도에서 완결되도록 하는 것이 동시대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연합뉴스, 2002.5.10) 평양에 도착한 11일 저녁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도 GH는 “남북이 힘을 합쳐 7.4남북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해 한반도평화와 민족의 공동발전을 이룩하자”고 화답하였다.(동아일보, 2002.5.12) 귀환 이후 GH는 그해 9월 남북축구경기를 성사시키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정기간 대북유화적 발언과 행보를 이어갔다. 2003년 GH는 코리아반도 평화를 위한 ‘대북특사’자격으로 방북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문화일보, 2003.6.24) GH는 남북관계 관련 “미래지향적으로 평화를 정착하고 그 바탕위에서 공동발전하는 방향을 취할 것”이라며 “7000만의 공동시장이 생긴다, 세계적으로 8대경제강국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북이 합치면 세계3대강국이 된다”고 말하였다.(문화일보, 2004.3.29) 이어 “17대총선이후 한반도평화구축 및 북핵문제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말하였다.(연합뉴스, 2004.4.7) 2004년 GH는 서울에서 마이니치신붕과의 회견에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여야가 합의해 초당파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발전을위한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남북관계에 관한 모든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며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간의 수뇌회담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연합뉴스, 2004.6.18) 약속이행에 대한 소신이 강한 GH는 직접 방북하여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7.4공동성명과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한 합의사항을 지켜야 한다. 현 코리아반도의 평화는 GH가 통일지향적인 입장으로 북과 대화하는가, 아니면 반통일적 입장으로 북과 대결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만약 GH 본인이 약속한대로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대화를 재개한다면, 그리고 그 증거로 유엔의 대북‘제재’에 반대하며 즉시 특사를 파견한다면 코리아정세는 전쟁에서 평화의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지금처럼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반북적이고 반통일적인 대결정책을 고수한다면, 그 귀결은 다시금 코리아전이 발발하며 민족최대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친다. 2013.3.22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
이수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