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쁘띠의 사상이다. 우리가 부르주아사상이라고 혐오하는 건 ‘대’가 아니라 ‘소’, 즉 쁘띠부르주아의 사상이다. 대부르주아출신은 많지도 않겠지만 노동계급편으로 넘어오기도 어렵다. 삼성재벌아들이 삼성노조활동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들의 마인드는 전혀 쁘띠적이지 않다. 누군가 책으로 폭로했듯이, 필요하면 사람목숨도 쉽게 생각한다. 돈이 돈 같지 않고 부부관계도 차원이 다르다. 통이 크고 대담하며 잔인하다. 그래서 이건 논외로 한다. 

쁘띠사상의 기본은 개인주의다. 집단이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자유주의가 여기에 직접 연결된다. 이건 매우 뿌리도 깊고 강하다. 공동체내 질서와 합의를 구속으로 여기며 내내 충돌하다 떨어져 나간다. 주관주의, 객관적인 현실보다 주관적인 견해를 우선하는 근저에도 손발을 움직여 현장을 찾기보다 책상앞에서 머리 굴리기를 좋아하는 인텔리쁘띠의 특징이다.

이기주의, 가족주의, 지방주의, 할거주의, 연고주의, 분파주의, 패권주의, 분열주의 다 같은 뿌리다. 집단이 아닌 개인, 전체가 아닌 부분을 우선하는 근저에는 개인·이기주의가 깔려있다.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과 권력을 먼저 생각하고 그 이해관계를 가지고 똘똘 뭉쳐 조폭처럼 행동하는 거다. 모두 집단과 전체를 우선시하는 노동계급적 본성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자본·봉건주의사회의 쁘띠적 잔재다. 

관료주의도 마찬가지다. 관료는 대부분 쁘띠다. 쁘띠는 늘 상층 지배계급을 쳐다보며 출세와 신분상승을 꿈꾼다. 한건을 노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소극주의, 보신주의, 무사안일주의, 편의주의, 매너리즘에 빠진다. ‘복지부동’의 태도는 오랜 풍파를 이겨내고 버틴 쁘띠들의 생존철학이다. 관료주의자들에겐 계속혁신·계속전진, 자력갱생·간고분투의 정신, 창의성·진취성, 패기·열정이 없다. 사람은 좋지만 일은 잘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건, 한마디로 쁘띠적이라서 그렇다. 

좌우경기회주의도 뺄 수 없다. 좌경적인 사상들, 모험주의·관문주의와 우경적인 사상들, 대기주의·개방주의도 다 쁘띠의 사상이다. 쁘띠는 기질이 ‘냄비’같아 쉬 달궈지고 쉬 식는다. 주관·모험주의적으로 일단 일부터 벌이다가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중도에 도망쳐버린다. 초혁명적 언사를 남발하다가 어느새 수구반동의 편에 서서 개량주의를 설파하며 진보·민중세력을 겨냥한 저격수노릇을 한다. 좌경과 우경은 동전의 양면이고, 동요와 기회주의는 쁘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쁘띠란 ‘소(小)’다. 소아(小我), ‘소아병(小兒病)’ 다 같은 맥락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어린아이처럼 구는 게 쁘띠다. 쁘띠들에게 대의를 위한 헌신과 다른 정파에 대한 포용이 있을 리 없다. 최근 민주노총비대위원장이 비판한 ‘다수의 패권과 소수의 분파’가 여기에 해당한다. 패권주의든 분파주의든 모두 쁘띠의 사상이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쁘띠사상은 분열을 일으키고 집단주의에 기초한 노동계급사상은 단결을 지향한다. 

노동계급은 물론 전체민중은 쁘띠의 사상, 쁘띠적인 리더, 쁘띠적인 대오를 지지하지 않는다. 행여 하더라도 곧 실망하고 철회한다. 패배가 뻔한 싸움에 목숨을 걸 순 없지 않은가. 쁘띠적으론 근본적인 변혁이 불가능하다. 정권을 잡아도 오래 못간다. 구쏘련·동구가 관료주의로 망하지 않았던가. 침체를 낳은 교조주의와 변질을 낳은 수정주의, 대국주의와 사대주의, 반제전선에서의 일탈이 모두 쁘띠사상에서 비롯됐다. 사회주의가 됐다고 쁘띠사상이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계급과 사상’이란 화두를 내내 되새겨야 할 해다. 


조덕원

기사제휴: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