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에서 시몬 볼리바르 이후 가장 큰 혁명의 지도자를 잃은 것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특히 현재 국제정세속에서 이는 진보세력에게 더 큰 어려움이다. 그러나 이 예민한 상황을 이용하려는 내·외부의 볼리바리안혁명의 적들은 지도자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혁명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베네수엘라에서 15년동안 진행되어 온 것처럼 보편적인 혁명의 과정을 보면 운동하는 민중이 바로 사회변화의 근본동력이며 그들의 지도자를 낳고 역사와 함께 전진한다.




 



1998년 우고 차베스의 당선으로 가장 가난한 민중들의 가슴깊은 열망이 실현되었으며 이 민중들은 지금은 사라진 지도자를 계승해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며 전세계민중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이 베네수엘라민중들과 혁명정부의 몫이다.




 




실현된 진보




 




수많은 어려움과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혁명과정은 절대다수시민들의 삶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며 명백한 진보를 가져왔다. 차베스의 집권은 국제적 차원으로도 기여했다. 미국의 대륙간 자유무역협정계획에 반대하는 알바(ALBA)와 남부은행, 에너지동맹의 창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지역통합, 남남협력강화, 양극체제를 다극체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다. 국가내부적 차원으로만 보면 사회·정치·경제적 차원의 결정적인 진보가 있었다.




아메리카




 




국가예산 또는 특별자금을 이용한 사회적 지출의 비약적 증가는 의료, 교육, 식량, 주거, 주요기초시설부문에 투자됐으며 그결과 빈곤층이 감소하고 주요사회지표들은 긍정적으로 발전했다. 2003년 55%에 달했던 빈곤율이 2010년 27%로 감소됐고 아동사망률은 감소했으며 삶을 희망하는 이들의 비율이 증가했다. 여전히 심각하게 남아있는 불평등은 차베스의 집권이후 현저하게 감소했으며 이는 흔히 ‘지니계수’라 부르는 지표에 의해서도 그렇다.




주요경제자원인 석유수입을 혁명정책으로 바꾸기 위한 중요한 조건중 하나는 가장 빈곤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의 민중참여의 조직이다. 특히 민중적 힘이라는 새로운 수단덕분에 이 분야에서 실현된 진보는 놀라웠다. 시의회차원의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공공계획과 같은 공동체속에서 시민들의 회의, 계획, 공공예산결정에 민중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결정체계가 확립됐다. 정치경제활동(지방은행의 자립경영, 협동조합, 공동소유 등)에 민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분야가 이 위원회에 의해 운영됐다. 2007년에는 지역의 기업·농업분야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참여를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정치조직인 노동자농민위원회가 창립됐다. 도시와 농촌에서 동시에 토지개혁이 이루어지면서 토지에 대한 접근도 확대됐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폭력적인 신자유주의의 논리와 사영화, 민족주권의 유린이 멈추어졌다. 전략적인 부문들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거나 아예 국유화됐고, 국가천연자원의 일부를 되찾았다. 민중들의 지지와 함께 차베스대통령은 혁명적 내용의 개혁을 진행했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적 전략을 제시했다. 2006년 재선부터 ‘21세기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사회주의적 조직형태를 향한 사회변화과정을 이끌어냈다. 주요기업의 국유화는 국가가 전기, 통신 등의 주요 인프라의 발전을 위한 전략적 부문들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교환과정의 통제도 실시됐다. 사회적 생산기업의 창립, 노동자들에 스스로에 의한 민주적 생산의 단결은 베네수엘라의 독창적인 혁신이었다. 공공서비스의 제공은 공공적 지출의 추진아래서 급격하게 발전했다. 지불의 균형과 국가화폐에 대한 구속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대통령 아래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의 과제




실현된 진보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서는 이 혁명을 진행하는 것과 ‘사회주의 체제전환(sociali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뒤섞는 사이의 모순은 그대로다. 확실히 많은 부분이 석유특성화와 연관돼 있다. 물론 1990년대말과 2010년대의 초의 석유부문의 GDP차지 비율은 18.5%에서 12%로 감소(베네수엘라중앙은행자료)한 반면 수도, 전기, 비영리부문, 상업, 은행, 보험 등 서비스분야의 비율은 증가했다.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신흥국가’를 포함해 남반구의 많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우려되는 변화는 바로 국가산업화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이다. 공식통계자료에 따르면 15년전부터 전체생산에서 공업부문이 약 17.5%에서 16%로 미미하지만 감소했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과정에서 보여준 베네수엘라경제의 주요특징은 석유수출과 산업재·식품수입 등에서 나타나듯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적 요인의 영향은 정부의 실행전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석유특성화가 유지, 오히려 더 강화되면서 외부적으로는 자본주의세계시스템 메커니즘과 단절하지 못했고, 내부적으로는 과거의 생산·산업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현대기술수입을 위해 자본주의국가들에게 의뢰하는 것은 생산기계의 어떤 부분이 제한될 위험에 노출시키며, 자본주의국가의 은행에 빚지게 된다. 북반구의 독점금융과 초국적기업에 의해 지배되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세계시장안에서 생산가를 맞추며 유통시켜야 하며 이는 경제의 암묵적인 달러화 현상을 만든다.




석유특성화와 연관된 ‘네덜란드신드롬’의 역효과를 줄이기 위한 혁명정부의 어려움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매수출수익의 향상은 결국 수입의 증가로 나타나고 이는 국내기업을 통한 재부의 생산과 제공서비스와 관련돼 있다. 경제부문변환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도 크다. 오늘날, 내부생산의 3/4은 여전히 지역 또는 해외의 대기업들에 의해 지배되는 사기업부문에서 이루어진다. 베네수엘라는 주변부자본주의경제에 머물러있다. 반동적인 오래된 지방특권층은 여전히 생산수단(토지, 공업, 상업 등)과 은행·금융활동의 일부에 대한 소유를 바탕으로 정치경제적 권력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의 필요에 부합하는 민주적, 현대적 대책의 실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혁명초기의 10년이후, 국가는 자본주의제도의 모순과 한계와 함께 그안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구조와 국가활동은 아직 깊이있는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사실상 국가내부에서는 공무원과 전문가로 이루어진 강한 그룹이 존재하며 그들의 낡은 경영방법, 이데올로기적 가치, 개인주의적 태도는 행정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며 정부가 결정한 조치가 실행되는 것을 방해한다.




석유부문은 총국가수입의 절반에 달하며 공공예산의 주된 부분을 구성한다. 따라서 이후 정부의 과제는 자본주의사회가 점차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등 국가가 통제하는 새로운 민중권력제도에 의거해서 석유부문의 구조를 변환시킬 수 있는 법적 수단을 찾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중권력제도, 국가구조, 경제정치적 국면은 혁명적 사회기반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본의 국가적, 공동적 소유형태가 섞여있는 사회주의 체제전환을 강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혁명정부는 공기업의 성장과 사회적 생산의 증대가 필요할 것이다. 또 예산, 조세, 화폐, 유통 등 다양한 공공정책을 통합하면서도 국가의 제도가 포괄하며 사회적 사명을 가져야 한다. 모든 역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민중참여와 진보세력의 민주적 결집을 조직해야 한다. 계속되는 불평등, 부패, 불안정한 구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은 배가 될 것이다. 새로운 집권세력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적 환경적 대안계획을 건설하는 방향에서 석유특성화와 연관된 탈공업화, 식량의존성, 화폐취약성 등의 문제에 대한 대안전략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우고 차베스 덕분에 처음으로 석유이윤이 최하층의 삶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향상시키는데 이용되기 시작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베네수엘라가 반제전선과 남반구국가들의 단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혁명의 미래는 순전히 투쟁속의 베네수엘라인들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지금부터는 다음 선거시 차베스가 후계로 지목한 현임시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후보를 지지하는 강력한 결집을 기대한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과정은 또한 외부의 지지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진보주의자들, 우리들의 과제는 이들에게 우리의 형제적 연대를 표현하는 것이다.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헤미 에흐하(파리1대학교수, 세계대안포럼사무총장)

*기사제휴: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