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자’ 외치는 우리는 사회와 역사의 주역” 문경새재를 넘어 삼척으로
생명평화대행진 19~20일차
<평화가 무엇이냐>
– 문정현 작사, 조약골 작곡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돌고래가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23일 문경새재
아침에 괴산전통시장에 들러 삼삼오오 홍보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용은 잘 몰라도 고생한다며 호응해준다.
지리산 민회에서 강동균마을회장이 행진단의 ‘적극성’을 여러번 강조한 다음부터 모두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더 열심히 하고 있다.
큰 목소리로 자신있게.
또 전통시장에 오면 빠질 수 없는 게 시장구경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들을 꽤 샀다.
기자도 양말을 여러켤레 샀다.
사람들이 집결장소로 모일무렵.
다리가 아파 많이 걷지는 못하는 문정현신부님이 시장 입구쪽에서 흥정에 한창이었다.
홍시를 사고 있었다.
어릴때가 그리워서일까? 문신부님은 홍시를 세바구니나 샀다.
사람들 나눠먹으라고 한 턱 낸 거다.
계산하자마자 못참았는지 홍시를 두개 꺼내 먹기 시작한다.
“하나 먹어볼래?”하며 기자에게도 나눠 준다.
옆에선 꽈배기랑 쫄깃한 찰떡도 사먹었다.
다들 홍시며 꽈배기며 맛있게 먹고 문경새재로 향했다.
버스는 금새 문경새재에 도착했다.
시간이 애매해 점심을 먹고 문경새재를 걷기로 했다.
샨티학교와 간디학교 아이들이 많이 와 있었다.
보성에서 공주에서 아프리카, 인디언 악기 등으로 명상음악을 전해준 봄눈별씨가 이날도 걷기 출발전 우리를 위해 연주를 했다.
애초 유명인이 동참해 걷고 걸은만큼 후원을 하는 ‘문경새재 마일리지’로 기획했지만 ‘귀를 기울이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잡담이나 구호없이 성찰하는 마음으로 그냥 걸으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거다.
준비가 좀 부족해 기획을 바꾸게 됐다며 딸기씨가 아쉬워한다.
걷기를 마치고 가진 문화제.
평택대추리투쟁당시 5.29문화제 성사를 위해 동고동락한 보리씨가 신부님이 노랫말을 지은 <평화란 무엇이냐>를 불렀다.
문신부님은 노래를 다 부른 보리씨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곤 온몸을 떨면서 격하게 눈물을 흘린다.
“신부님 왜 사람들 울리고 그러세요…”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흐흐흑.”
이날은 돌고래씨의 빈자리를 문신부님 채웠다.
그는 울먹이며 <일강정>을 불렀다.
24일 삼척
어제 남은 올갱이된장국을 아침에도 먹었다.
신기동성당에서 삼척의 도계읍으로 향했다.
도계성당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삼척시장 김대수 주민소환투표운동본부에서 활동중인 박홍표신부가 행진단을 맞아주었다.
김대수씨가 주민들의 의견과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핵발전소를 유치신청해 10월31일 주민투표가 예정돼 있었다.
삼척은 이미 1982년 원전건설예정지로 선정고시된후 1998년까지 끈질긴 투쟁으로 유일하게 원전백지화를 이뤄낸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죄다 행진단이 다니는 곳에 몰려와 비디오촬영이며 감시며 하다 행진단과 마찰이 있었다.
원전백지화기념탑이 세워진 8.29공원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장면까지 선관위직원들이 영상을 찍은 게 문제가 됐다.
행진단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겨우 사과를 받아내고 다시 행진을 시작할때 푸른색 옷을 입은 직원들이 눈에 띄자 이젠 문정현신부님이 불같이 화를 냈다.
“선관위 저리가! 여기가 어딘줄 알고 와! 꺼져!”
문신부님의 고함소리에 겁을 먹은 직원들이 뒤도 안돌아보고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로 황급히 나가버렸다.
그제서야 선관위 직원들은 대부분 철수했다.
그들은 아마 문정현신부에게 카메라를 안뺏긴 것만해도 다행이라는 걸 모를 거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반미평화운동 등 현장에서 단련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의 기질이 목소리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선관위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아예 대놓고 주민소환투표불참을 종용하며 위법행동을 하고 있다 한다.
저녁을 먹은후 삼척시내 대학로공원에서 야외미사에 참석했다.
미사도중 율동순서가 있었는데 약속이나 한듯이 두 신부님이 차례로 나와서 춤을 춰 신도들의 환호를 받았다.
문정현신부님이 춤을 출때만 해도 다른 신부들은 박수를 치진 않았지만 문규현신부님이 단상을 내려와 춤을 출땐 이미 다들 흥이 났다.
영상팀인 둥글이, 이우기, 현우씨와 말엄마, 그리고 기자는 투표운동본부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작업을 했다.
삼척의 활동가들이 “혹시 이상한 사람들이 오면 옆에 경찰서 있으니까 112신고하세요”하며 나간다.
아예 문을 잠그라 한다.
힘과 힘의 대결에서 언제 우익깡패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기자가 막대기 하나를 옆에 끼고 침낭 지퍼를 올리자 다들 웃는다.
이날 문정현신부님과 강동균마을회장, 문규현신부님은 강정에 꼭 해군기지백지화기념탑을 세우자고 다짐했다.
문정현신부님은 삼척의 상황을 트위터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하~하~ 웃긴다! 삼척경찰서 정보과장, 부안경찰서 정보과장으로 교체! 부안핵폐기장 싸움 경험이 있는 경찰을 발탁! 에라이 웃긴 놈들이로다!”
삼척탈핵미사에서 발표한 문규현신부의 강론을 싣는다.
지금이 ‘대전환’의 시대라는 그의 분석이 인상적이다.
2012년 10월 24일, 삼척 미사 강론
반갑습니다. 문규현 신부입니다.
또 왔습니다.
다시 오니 좋고, 또 만나니 힘납니다.
이렇게 뜨겁게 만나려고,
새도 쉬어간다는, 저 높은 고갯길 문경새재를 넘어왔습니다.
사랑하는 님 보고 싶어,
산 넘고 물 건너는, 애절한 연인의 심경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요샌 가끔, 이런 말이 속에서 들려와요.
‘고맙다 이명박,’
동네방네, 사람, 자연, 지역 가리지 않고
아주 고루고루 파괴하고 분노하게 해준 덕에,
우리도 영역파괴,
네 아픔 내 아픔 가리지 않고
자꾸 만나고, 위로하고, 연대하게 됐습니다.
악이 만드는 긍정적 선물이죠.
10월 5일, 제주 강정에서 출발한 생명평화행진단은
전라도 목포 해남을 지나,
경상도 부산 고리원전,
밀양, 청도 송전탑 저지 현장을 찾았습니다.
구미 불산가스누출사고지역도 방문했습니다.
사고를 당한 마을은 참담했습니다.
불산에 누렇게 타버린 가을들판, 나무와 농작물들을 봤습니다.
굶주리며 죽어가는 가축들, 녹슨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졸지에 몸만 빠져나와, 환경난민이 되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는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했습니다.
절망한 주민들은 결국 스스로, 고향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분들의 절규와 탄식,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놈의 날벼락이냐.
자식들은 또 어떡하나.
차라리 전쟁이라면 돌아갈 수나 있을 텐데…
후쿠시마 재앙 축소판처럼 보였습니다.
불산가스누출사고만으로도 저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원전이 하나라도 터진다면,
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마치 예고편 보는 것처럼, 끔찍합니다.
구미 불산가스누출참사는
개발독재와 성장만능주의의 부메랑입니다.
구미공단은 바로 박정희식 성장주의가 집약된 곳입니다.
사람보다 이윤을, 안전보다 편리를 앞세워,
돈벌이만 추구해온 시대방식이 결국 재앙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시와 부자들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나쁜 시설들이
시골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에게 던져집니다.
안전한 시설, 돈 되는 사업이라면
부자들과 도시사람들이 악착같이 다 차지하지,
외지고 머나먼 지역에 안겨줄리 없습니다.
독점과 집중으로 소수만 살찌우는 경제,
국민 대다수와 지역경제를 희생시켜,
재벌과 도시만 번창시키는 경제에는 미래도, 희망도 없습니다.
구미 불산가스누출참사는 바로
이 같은 낡은 체제, 낡은 가치가 파열되며,
새로운 시대, 대전환을 요구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수십 년을 지배해온 낡은 가치와 이별하기 위한
새로운 변혁기, 대전환기에 서있습니다.
이제 국책사업의 이름으로 국민을 멋대로 희생시키거나
힘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밀어붙이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국민은 더 이상 일방적 희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기 밀양과 청도 외진 산골에서, 송전탑 건설을 막으려고
7년째 싸우고 있는 칠팔십 노인들을 보십시오.
놀랍게도 이 할매들은,
싸울수록 씩씩해집니다. 회춘합니다.
인식의 변화도 놀랍습니다.
처음엔 내 땅, 내 마을 송전탑 문제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송전탑문제의 뿌리에 원전이 있다는 걸 알고는
지금은 가장 용감하고 감동적인 탈핵전사가 되었습니다.
할매들은 앞으로 7년도 더 싸울 수 있답니다.
우리가 계속 관심만 가져주면, 재미나게 싸우고, 꼭 승리하겠답니다.
10월 17일에, 경남 남해군에서 석탄화력발전소유치문제를 두고
공식적인 주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주로 어민과 농민들이,
화력발전소는 바다와 땅을 죽이는 일이라고 결사반대했습니다.
농번기임에도 과반수 넘는 53.2%의 군민들이 주민투표에 참여,
51.1%가 반대표를 던져 전면백지화 됐습니다.
얼마전 행진중에 이런 소식이 날라 왔습니다.
교과부가 비밀리에 ‘고준위폐기물처리장’ 연구용역을 맡겼는데,
용역결과, 후보지로
전북 부안군, 부산 기장군, 강원 양양군, 충남 서천군이 올랐다는 것입니다.
어처구니없죠.
아시다시피 부안군은 지난 2003년에
중저준위핵폐기장유치문제로 아주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이번엔 중저준위도 아니고, 고준위핵폐기물이랍니다.
그런데 그 소식들은 부안군민들 반응이 웃겨요.
“그래, 까짓 거 부안이 받자. 보내라. 해결해주마.”
다른 지역 여기저기 건드려서 괜히 쑥대밭 만들지 말고,
이왕에 상처 입은 부안에다 보내라는 거죠.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요.
이젠 겁날 게 없다는 겁니다.
지난 토요일에 서울에서 탈핵대회가 열렸습니다.
삼척, 영덕, 밀양, 청도, 부산, 울산, 경주, 영광 등,
원전관련 지역들이 다 모였습니다.
대선후보 문재인, 심상정 두분도 참석했어요.
이 두분이 발언하신 것, 짧게 들려드리겠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도시의 소비를 위해 지역을 희생시키는 에너지 정책,
서민의 희생으로 대기업의 과다전력소비 비용을 보조해 주는
에너지정책 바로 잡겠다.”
고 했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이제 탈핵은 이상이 아니라 시대정신이다.
이명박정권의 방사능 삽질을 막아내고
이윤보다 생명이 소중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고 했습니다.
삼척시민을 비롯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탈핵이라는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고
예언자적 소명으로 희생하고 헌신해왔기에,
마침내 2012년엔 대선후보들과 정당들이,
이렇게라도 선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디언들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당장의 필요가 아니라,
적어도 7세대까지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결정했다고 합니다.
좀 더 가봅시다. 좀 더 힘을 냅시다.
멀고 먼 길, 머나먼 미래 같던 일들이,
성큼 우리 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진짜 현실 정책으로 실현되는 그날을 향해
최선의 기도, 최고의 수고를 더 해봅시다.
오늘 복음에서는 낡은 것과 새것이 충돌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낡은 체제, 낡은 방식, 낡은 정신을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옹호하고 반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침없이,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십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다,
새로운 옷을 차려입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
개발주의, 성장만능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하여
정의로움과 공존, 균형발전과 참된 민주주의로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소리로 꽉 들어찬, 바로 이 시대, 이 나라,
우리 모두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우리 또한,
고단하고 힘든 여정을,
노래하고, 춤추며, 치유하며 갑니다.
슬프고 아픈 현장에서, 위로와 연대의 축제를 벌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며, 야만시대의 증거자입니다.
하라는 대로 하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모래알 같은 개인이 아니라,
‘함께 살자’ 외치는, 이 시대, 이 사회와 역사의 주역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행하는 지속적인 기도를 들어주시고,
끈기 있는 여정에도 함께 하시어,
우리의 간절한 꿈과 소망을 마침내 이루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덧붙임.
이날 강정에선 이영찬신부가 구속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또 노조사무실에서 지내던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박현제지회장이 공장안에 잠복한 사복경찰들에 의해 연행됐다.(그러나 10월26일 박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나영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