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었는가, 전술이었는가. 영화 <명량>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대장선이외 다른함선들의 행동말이다. 영화에선 두려움이라고 했다가 왜구우두머리의 독백을 통해 전술이었을 가능성을 남겨뒀다. 설사 두려움에 의한 기피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이 모든 걸 다 예견한 이순신장군의 사즉생(死卽生)사상과 울돌목물살을 감안한 신묘한 전술이었다고 봐야 한다. 대장선이 사즉생으로 싸우며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물살의 흐름이 바뀌는 걸 이용하며 전세를 뒤집은 전략은 가히 명량대첩을 <인류최고의 해전>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본다.

실제론 구선(거북선)이 불타지않고 해전에 투입됐다 한다. 하지만 이순신장군은 13척 모두를 높이 개조해 구선처럼 만들어 왜선들과 충돌로 파괴하는 공격이 가능하게 했다. 물론 백미는 울돌목의 물살의 흐름을 교묘히 이용하고 그 물살이 바뀌기까지 전략적 요충지를 사수하며 마침내 전체전함들이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지략·투지·담력이다. 백의종군하다 칠천량참패직후 빈손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자, 단숨에 군대와 함선, 무기, 식량을 해결한 수완도 돋보인다. 이래서 명량대첩이 인류해전사에 더욱 빛난다. 런던 트라팔가광장에 높이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 넬슨제독이 자인하듯 말이다.

1000만이 보며 크게 감동한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을 박근혜·정윤회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조선백성의 코를 자르고 어린아이들을 조총으로 살해한 그 왜구가 기어이 조선말에 우리나라를 먹어버린 후 전쟁성노예로 20만, 징병·징용으로 840만을 끌고다녔다. 그리곤 박근혜의 선친인 박정희<정권>하에서 헐값배상하고 <남일수교>를 하더니 이젠 박근혜·정윤회<정권>에 의해 <남일군사정보협정>이 합의돼 미·일제국주의의 북침전쟁계획에 날개를 달아주고있다. 짐승도 같은 덫엔 두번 걸리지않는다는데, 이 <정권>은 <뼈속까지(to the core)>까지 친미친일인 이명박도 감히 하지못한 짓을 서슴지않으며, 우리민족의 운명을 칠성판위에 내던져놓았다. 전쟁위안부문제 해결없인 정상회담 없다더니 그 회담에서 내놓을 카드를 미리 던져버리며, 상전 미국의 미일남3각군사동맹구상을 올해가 가기전에 기어이 완성해놓았다. 이제 코리아반도의 정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직전과 본질상 차이가 없다.

<박근혜·정윤회<정권>>은 그 최대약점이 <박근혜·정윤회게이트>로 만천하게 드러나자, 그 최대정치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코리아반도를 전쟁정세로 몰아가는 한편 통합진보당강제해산과 코리아연대·이적목사압수수색이라는 현대판 마녀사냥·맥카시선풍의 파쇼광란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정권>이 폭압물리력을 총동원해 파쇼적 폭력을 휘두르니 일부 진보·민주세력이 두려움에 주춤거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순신장군이 온몸으로 보여준 사즉생의 각오와 울돌목의 지혜로 파쇼폭압의 국면을 대중항쟁의 국면으로 전환시킬 때다. 누구든 어느대오든 결사항전의 앞장에 서면 우리시대의 영웅이고 대장선이다. 과연 누가, 어느대오가 사즉생정신으로 울돌목을 지키며 파쇼광풍으로 생긴 두려움을 대중항쟁의 용기로 바꾸겠는가. 영화가 묻는다, 역사가 묻는다.

조덕원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