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사업장중 파카한일유압과 포레시아는 외국자본이 인수한 사업장으로 2009년 ‘경영상위기’라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32명, 26명을 단행했다.
이 사업장들은 장안공단내 위치해 있으며 파카한일유압은 시화공단에 공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안공단내 공장을 만들어 일감을 몰아주고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등 시화공장의 정규직노동자를 탄압했다.
장안공단은 김문수경기도지사와 경기도가 준비한 외국전용산업단지로, 입주한 외국인투자업체는 공장부지50년간 무상임대, 특별소비세·부가기치세전액감면, 시설설치비 50%지원, 신규고용 1인당 50만원지원 등 혜택을 받고 있다.
특히 파카한일유압의 32명 해고노동자들중 대부분이 금속노조조합원이라는 것에서 사측의 정리해고는 ‘경영상의위기’가 아닌 ‘노조탄압’의 수단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31일 금속노조 경기지부 파카한일유압분회 권오진분회장을 만나봤다. 현재 분회에는 7명의 조합원뿐이지만 길고긴 싸움을 4년여동안 해왔고 지금도 이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자주하는 말중에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처럼 이들도 투쟁의 머리끈을 동여매며 오늘도 내일도 투쟁에 나서고 있다. |
파카한일유압은 미국 다국적기업인 ‘파카하니핀’이 2005년 6월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사업장이며 2009년 사측이 ‘경영상위기’라는 이유로 32명 정리해고를 단행했는데 당시 상황은 어떠했나?
외국자본이 인수하기전 당시 회사는 ‘한일유압’이었고 굴삭기에 들어가는 유압콘트롤벨브라는 핵심부품을 만들었다. 당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현대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파카하니핀’은 반대로 동력전달부품을 만드는 다국적기업으로 M&A로 성장해왔으며 굴삭기용 유압콘트롤밸브를 만드는 기술은 없어 우리는 기술 때문에 인수한 것으로 생각했다.
2006년 노조를 설립하고 2007년까지는 원만하게 노사관계가 진행됐다.
인수할 당시에 외국선진기업이 들어오니 근로조건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반대였다. 2005년에 파카하니핀이 한일유압을 인수할 당시 손학규경기도지사였는데 외국인기업전용단지에 MOU를 체결했다. ‘장안첨단외국인단지에 만평규의 공장을 짓겠다, 신기술을 도입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인데 실제 장안공단이 완공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안공장이 완공된 후 ‘시화공장에서 쓰고 있는 ’테스트벤치‘나 비슷한 기계가 들어가고 있다더라, 향후 똑같은 물건을 만들거라더라, 우리회사임원들이나 연구진들이 왔다갔다하더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또 공장장이 신규인원을 채용할 때 ‘장안에 규모가 큰 공장을 짓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고 일하면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이런식으로 신규채용을 했다.
노조는 사측에 “이런 소문이 도는데 사실이 어떻게 되느냐, 물량 빼돌리는 거 아니냐”라고 물었지만 사측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러다 2008년 단협을 재개정하는 시기가 되면서 사측이 ‘직장폐쇄 등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2008년 장안공장이 완공된 후 실제 물량이 조금씩 줄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무단으로 장안공장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찍고 돌려봤더니 시화공장과 똑같은 생산라인이 깔려 있었고 똑같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사측은 “회사가 어렵다. 물량이 줄었다. 세계경제위기가 왔다”며 구조조정, 정리해고, 휴업 얘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노조는 “실제 물량이 생산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실제 경영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료를 보고 이야기하자”고 했고 사측은 매출액자료정도만 달랑 줬다. 자료를 감춘 것이다.
그러면서 사측은 “113명 정리해고하겠다, 노조가 휴업도 구조조정도 못받아들이면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다”며 협박을 했고 노조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라, 물량이 돌아가는 것이 보이는데 의도적인 경영위기로 해고하는 거 아니냐”라며 거부했다.
또 경기도에도 요구를 했다. 실제 기술을 도입하고 일자리 창출한다면서 MOU체결해 끌어다가 만평부지에 세금까지 감면해주는 등 도민혈세로 저렇게 해놓고, 실제로는 신기술도입이 아닌 우리기술 빼다가 장안에 복제공장 만들어놓은 것이다. 고용창출이 아니라 장안은 비정규직 쓰고 시화공장에 있는 정규직들을 해고했다. 당시 포레시아도 비슷한 문제가 터졌고, 두사업장이 도청투쟁을 함께 했다. 경기도청 투자진흥과에서는 “우리는 유치권한만 있지 관리감독권한은 없다, 조례자체도 없다, 안타깝지만 딴곳에서 알아봐라” 이런 식이었다.
사측에서는 정리해고통보를 113명 했지만 우리가 장안공장의 영상을 언론에 제보했다. <PD수첩>에서 방송되자마자 정리해고인원이 32명으로 줄었는데 전부 금속노조조합원이었다.
사측이 정리해고를 단행한 어떤 투쟁을 진행했는가?
우리는 세군데를 타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화에 공장이 있고, 복제공장은 장안에 있고 그것을 중간에 컨트롤하는 곳이 서울 양재동에 파카하니핀코리아서울사무소라는 이름의 한국지사컨트롤타워가 있다. 양재동에서 영업, 재무, 인사 등을 총괄한다. 실제로 두산에 알아봤더니 두산도 ‘오더’를 양재동쪽에 주더라. 양재동에서는 시화에 줄 것인지 장안에 줄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영업권도 총괄한다.
세군데를 타격하는 선전전, 집회 등 매주마다 돌아가면서 투쟁하고 도청투쟁도 진행했다. 웬만한 투쟁은 다 해봤다.
웃긴 것은 파카하니핀코리아서울사무소측에서는 제3자입장에서 용역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용역받아서 관리할 뿐이지 자기들은 총괄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우리가 법원소송에서 패소했다.
2010년 7월 안산지법에서는 승소했는데?
안산지법에서는 경영위기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실제 시화공자에서 빠져나가는 만큼 장안에서 똑같은 물건이 생산되는 것으로 봤고, 월급명세서 등 모든 서류자체가 서울본사에서 컨트롤했다. 즉, 법인은 두개지만 하나의 회사로, 시화공장에서 일감이 줄었다고 해서 전체적인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회사의 두개공장으로 본 것이다.
2012년 1월 2심, 2013년 3심에서 패소를 했는데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 있었나?
김앤장이 사측의 법률자문이었다. 1심에서 사측이 패소하고나서 서울고검장출신들, 부장판사출신들의 변호사로 싹 교체됐고, 우리사건을 맡았던 당시 고법판사가 마지막임기고 그만둘 계획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뭔가 외압이나 회유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할 뿐이다.
2심에서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인이 틀리고 하나의 회사라고 하나 용역을 받아서 처리했을 뿐이지 법인이 틀리기 때문에 따로놓고 봐야 하기 때문에 ‘경영상어려움’이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판결이후 해고자들과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했고, 투쟁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2009년 32명이 해고됐고 1차희망퇴직때 많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30명 가까이가 남아서 현장에서 완강하게 버티며 함께 투쟁했고 해고자를 포함해 60명이 유지가 됐었지만 대법판결후 해고자들은 생계로 많이 떠나갔다. 더이상 투쟁할 있는 희망이 없어진 것이다.
사측이 대법원판결승소에 대해 예측했는지는 몰라도 2010, 2011년에 엄청난 흑자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접어들자마자 일부로 물량을 확 줄이기 시작했다. 2012년 6월부터는 또 휴업에 들어갔다. 사측이 분위기를 몰기 시작한 것이다. 두가지를 노렸다고 보는데 하나는 대법원에서 사측이 졌을 경우, 졌어도 회사가 어렵기 때문에 복직시킬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또하나는 공장안에 있는 노동자들한테 회사가 어려우 똑바로 안하면 ‘똑같은 꼴’ 날 수 있고 경고하는 것이다.
2012년 6월 휴업이후 대법판결이 나오자마자 현장조합원들의 분한 감정은 극에 달했다. 투쟁을 만들어갈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암담해했다. 사측이 2차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됐다. 실제 대법원판결이후 사측은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이야기를 꺼내면서 현장분위기를 몰아갔다. 많은 분들이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더이상 버틸 희망이 었었던 것이다.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현재 7명 남은 상황이다. 7명은 노조 전직임원이나 간부들이다. ‘그래도 버티고 싸워야 되지 않겠느냐 법으로는 졌어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문제가 있는데 싸워야하지 않겠냐’며 결의를 하고 현장에서 완강히 버티고 있다.
7명이 투쟁하니까 사측이 노골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사측은 현장분위기를 몰아가면 공장에 남아 사람들은 떨어져나가거나 자기들이 주도권을 잡아야겠다고 판단한 거 같다. 10년넘게 한 파트를 일하던 사람을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시키거나 청소만 시킨다. 관리자가 1인당 3명씩 붙어서 갈구고 욕한다. 항의하면 폭력행사를 한다. 투쟁하겠다 파업하겠다고 하면 관리자들은 우리들을 멱살잡아 끌어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송태섭전부회장에게 관리자들이 “너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졌다”며 식판을 뒤집어엎은 사건이 있었다. 대표이사가 월례조회를 하면서 “회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희생을 감수하는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떠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만 외치는 몇몇 무리들이 있다”며 우리들을 가리켰다. 우리들은 “6개월 휴업하는 동안 마음편하게 쉰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고, 실제 경영을 회사가 하지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가 하지 않는다. 경영상황에 대해서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왜 희생만 강요하느냐”라고 반발했다. 그러자 관리자들이 전직원이 보는 앞에서 우리들을 멱살잡아 끌어냈다.
폭력과 욕설 모욕 등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에 파업, 항의투쟁, 고소고발 등을 진행했고 언론에도 알렸다. 지금은 수그러든 상태지만 언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현재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파업투쟁을 진행한다.
계획하고 있는 투쟁은?
단협도 해지되고 복수노조가 생기면서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크게는 단체협약 체결과 고용안정 쟁취를 가지고 상경해 서울본사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선전전과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면담요청도 했지만 계속 외면하고 있다.
현재 교섭권은 어떤 노조가 가지고 있는지?
기업노조도 교섭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분회도 가지고 있다. 부칙에 따라 2010년부터 단협을 갱신하기 위해서 교섭을 진행했는데 2011년 복수노조법이 통과되면서 사측이 교섭중단을 선언했다. 부칙에 의하면 2011년7월전에 교섭하던 노조가 교섭대표고, 교섭권을 유지한다는 조항이 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교섭권을 따냈다.
복수노조의 폐해가 심각한데 파카한일유압의 기업노조는 어떤가?
‘회사거수기’다. 취업규칙개악에도 동의를 해줬고 단체협약도 취업규칙수준으로 맺어놓았다. 회사가 기침한번 하면 감기라도 걸리는 것처럼 뭐하나 다 내놓을 거처럼 ‘설레발’을 친다. 회사관리자들 중심으로 돼 있다.
분회가 2006년 설립당시 120여명이었던 조합원들중 70여명이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으로 떠났고 대략 30여명정도가 기업노조로 전환했다.
우리는 현재 7명 남아 완강하게 투쟁하고 있다.
김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