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오전11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통일애국인사 이희영선생 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1주기추도식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6.15산악회, 사월혁명회, 민자통(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가 공동주최했으며, 양원진, 강담, 박희성 선생 등 통일애국인사들을 비롯해 사회단체인사 50여명이 참여했다.

먼저 코리아연대 이상훈공동대표가 참석자들을 대표해 헌화했고, 이어 내빈소개와 약력소개가 있었다.

 

고이희영선생은 고박창균목사와 함께 1970년대 통일사회당 활동, 1980년대 민주화운동 참여, 1990년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를 중심으로 통일운동에 참여했으며, 2008년 4월 민주노동당 연천군준비위원회 가입·활동,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 연천군준비위원회 가입·활동, 2012년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가입·활동, 2012년 4월 민자통 가입·활동, 2013년 4월 21세기경기여성회 대표역임, 2013년 5월 코리아연대 공동대표, 코리아경기연대 대표 역임 등 한평생을 자주·민주·통일운동에 매진했다.

추모시 <당신의 향기로>(이적시인(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 자작시) 낭송후 고인의 삶과 투쟁의 역사가 담긴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다음으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명예회장, 우리사회연구소 권오창이사장, 민자통 박근창서울회의의장, 반명자전민주노총부위원장, 코리아연대 양고은공동대표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권오헌명예회장은 <이희영선생님은 조국통일을 위한 한길에서 빈틈없이 활동해오셨다. 말년에는 박창균목사님이 병환으로 고생하셨기 때문에 간호하느라 힘드셨지만 통일일군 박창균목사를 모시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했다. 목사님이 먼저 돌아가시고나서 목사님뜻을 잇기 위해, 우리민족의 자주통일이라는 과제를 다하기 위해 그 전에도 통일행사, 민주화운동에 늘 거리로 나오셨지만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애석하게도 일찍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깝다.>며 <오늘 1주기를 맞게 됐는데 영정사진처럼 이렇게 할짝 웃는 모습과 함께 영원히 우리가슴속에 남아 계실 것이다. 고인이 염원하셨던 통일조국의 세상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며 영면하시길 빌겠다.>고 추모했다. 

권오창이사장은 <이희영선생정신따라 조국을 통일하자! 박근혜정권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자!> 구호를 외친후, <이희영선생님은 일생을 조국통일에 헌신하셨다.>며 <그분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 세상을 바꿔 통일세상을 만드는데 다같이 투쟁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창의장은 <한평생을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다.>며 <앞으로 이희영선생님의 염원인 민족통일운동에 정신을 이어받아 6.15공동선언에 헛되지 않도록 조국통일운동에 더욱 노력하겠다. 평안히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반명자전부위원장은 <통일의 희망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폐단에 대해 낱낱이 일깨워주셨던 분이 이희영선생님이다. 항상 입에서 통일을 놓지 않으셨다.>며 <이희영정신을 이어받아 고인이 살아생전 보지 못하고 가셨던 통일을 우리세대가 꼭 이룰 수 있도록 투쟁으로 돌파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양고은공동대표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코리아연대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살아있을 것>이라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스스로 학습하셨고 실천을 통해 배운 그대로 행동하셨던 생전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들의 귀감으로, 학습과 실천의 매서운 채찍질로 되고 있다. 자신은 돌보지 않으면서 자신의 전부를 우리들과 동지들에게 내주었던 선생님을 어찌 우리모두의 어머니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추모했다.

이어 <지난 13일 선생님이 아끼시던 청년들이자 식민지조국의 딸이기도 한 코리아연대 양고은·이민경 두여성회원이 <효순이·미선이를 죽인 미군은 탄저균을 가지고 이 땅을 떠나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미대사관2차진격투쟁을 전개했고, 앞선 10일에는 김대봉·정태호 두동지가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나가라!>고 외치며 미대사관을 향해 진격했다.>며 힘차게 투쟁보고를 하면서 <코리아연대는 앞으로도 미군철수투쟁과 반박근혜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더욱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높였다.

그러면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코리아연대를 가장 사랑하셨던 이희영선생님의 그 정신은 우리투쟁이 멈추지 않는 이상 영원불멸할 것이며, <강희남정신>·<박창균정신〉과 함께 <이희영정신>은 우리의 실천과 투쟁을 쉼없이 투동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하고, <이희영정신으로 계속혁신·계속전진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끝으로 참가자들은 영정에 헌화하며 이희영선생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가슴깊이 새겼다.

다음은 코리아연대의 추도사, 추모시 <당신의 향기로>, 고이희영선생의 약력이다. 

<추도사>


이희영정신으로 계속혁신·계속전진하겠습니다!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희영선생님! 그 고운 자태로 우리의 상처를 한품에 안아주시고 코리아연대의 투쟁을 격려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다시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코리아연대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작년 5월 22일 광화문광장에서의 코리아연대 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때 선생님과 함께 외쳤던 투쟁구호는 아직도 귓가를 울리며 코리아연대의 투쟁을 힘차게 고무추동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픔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셨던 그 기자회견장이 선생님과 함께하였던 마지막 투쟁현장이 될지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생님을 더 오래 모시고 투쟁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애통할 따름입니다.

이희영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셨습니다. 촛불신문을 배포하는 우리청년들을 <동지님!>이라고까지 불러주시며 귀하게 여기셨던 선생님. 선생님의 손에는 언제나 그 선전물이 들려있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소중하게 나눠주시던 선생님은 운동가의 첫째가는 임무가 선전투쟁이고 교양사업임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스스로 학습하셨고 실천을 통하여 배운 그대로 행동하셨던 생전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들의 귀감으로, 학습과 실천의 매서운 채찍질로 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경제형편에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시던 선생님에게는 동지들을 위한 시간, 학습을 위한 시간, 투쟁과 실천을 위한 시간만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돌보지 않으시면서 자신의 전부를 우리들과 동지들에게 내주었던 선생님을 어찌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선생님을 그리는 1주기추모의 날을 맞아 코리아연대의 영원한 어머니이신 이희영선생님께 자랑찬 투쟁보고를 드립니다. 지난 13일에는 선생님이 아끼시던 청년들이자 식민지조국의 딸이기도 한 코리아연대 양고은·이민경 두여성회원이 <효순이·미선이를 죽인 미군은 탄저균을 가지고 이땅을 떠나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미대사관2차진격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앞선 10일에는 김대봉·정태호 두동지가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나가라!>고 외치며 미대사관을 향해 진격하였습니다. 우리의 이 투쟁은 탄저균을 들여와 위험천만한 <북침세균전>을 기도하는 만악의 근원 미군에게는 철퇴를 가하고 우리민중에게는 투쟁의 불씨를 당기는 희망의 등불이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희영선생님이 계셨다면 우리의 투쟁에 얼마나 큰 고무와 격려를 해주셨겠습니까. 코리아연대는 앞으로도 미군철수투쟁과 반박근혜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더욱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이희영선생님의 그 정신을 따라 살며 실천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한없는 사랑과 믿음, 숭고한 헌신과 실천의, 참삶을 잊지 않고 투쟁하겠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코리아연대를 가장 사랑하셨던 이희영선생님의 그 정신은 우리투쟁이 멈추지 않는 이상 영원불멸할 것입니다. <강희남정신>·<박창균정신>과 함께 <이희영정신>은 우리의 실천과 투쟁을 쉼없이 추동하는 원동력입니다. 이희영선생님! 늘 환하게 웃으시며 낙천적으로 살아오셨던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머지않은 미래에 맞이하게 될 통일조국의 휘황찬란한 앞날을 그려봅니다. 선생님의 고귀한 뜻과 정신을 우리후배들이 이어받아 더욱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코리아연대를 아끼고 사랑하신 그 마음 그대로 민중을 사랑하고 민중을 위해 복무하겠습니다. 이희영정신으로 계속혁신·계속전진하겠습니다!

2015년 6월 17일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추모시>

당신의 향기로

이 적 <민족시인/인천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대표>

주인 잃은 들판에
꽃으로 오셨습다
슬픈 봄 화려한 진달래로 피셨다가
가을에 은은한 들국화로
가셨습니다
황량한 겨울 들판
당신의 향기는 바람이 되어
주인 잃은 들판으로
구석 구석 떠도시며
봄이 저기쯤 오고있다고
틀림없이 오고 있다고
그렇게 외쳤습니다
들녘에 외로히 떨고 있는 짐승들과
초라한 잡초까지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눈보라가 내려쳐도
모진 비바람이
들판을 휩쓸어도
잡초는 꿋꿋히 자라납니다
당신은 가고 없어도
당신이 뿌린 향기로
모진 들판 그 끝자락에서
오늘도 꿋꿋히 자라납니다
당신의 그 봄이 올때까지.

고이희영선생 약력


1947년 8월14일서울서대문구홍제동출생
1954년 서울 안산국민(초등)학교 입학
1960년 서울 동명중학교 입학
1963년 서울 서울여고 입학
1966년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1970년대 故박창균목사와 함께 통일사회당 활동
1980년대 故박창균목사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
1986년 故박창균목사와 혼인
1990년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를 중심으로 통일운동에 참여
2008년 4월 민주노동당 연천군준비위원회 가입 활동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 연천군준비위원회 가입 활동
2012년 3월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가입 활동
2012년 4월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가입 활동
2012년 7월 6.15산악회 가입 활동
2013년 4월 21세기경기여성회 대표 역임
2013년 5월 코리아경기연대 대표 역임
2013년 5월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공동대표 역임
2013년 10월 사월혁명회 가입 활동
2014년 6월17일 영면(향년 6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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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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