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


– 강희남의장의 유서 –

<흰돌 강희남의장 6주기추도식>이 6일오전11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흰돌강희남기념사업회와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주최로 열렸다.

6주기추도식에는 통일애국인사 안학섭, 양원진, 강담, 박희성 선생을 비롯해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코리아연대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먼저 유족인 강희남의장의 둘째사위 박영래씨가 참석자들을 대표해 헌화한 후,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늘 강희남목사님추도식에 참석한 여러분께 고마움과 경의를 표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어 강희남의장의 약력이 소개된 후 고인의 삶과 투쟁의 역사가 담긴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다음으로 범민련남측본부 이규재의장과 이천재고문, 우리사회연구소 권오창이사장, 코리아연대 이상훈공동대표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이규재의장은 <감옥안에서 목사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참 아팠다. 목사님을 가까이서 모시지 못했지만 늘 존경했다.>며 <박근혜<정권> 하에서 지금 어느한곳도 편한곳이 없고, 온전한 데가 없다. 이런 때일수록 듬직하고 투철하신 강희남목사님을 더욱 그리게 된다. 강희남목사님의 뜻을 기리며 일치단결해 이땅에 평화와 민족의 자주를 지켜내는 일에 모두 떨쳐나서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오창이사장은 <강희남정신 계승해 조국통일 앞당기자>고 구호를 외친후, <강희남목사님의 통일철학은 양키를 내치자는 것이다. 이것이 범민련정신이자 강희남정신이고 통일정신>이라고 강조하면서 <강희남정신따라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해서 남·북·해외 단결해 미국을 내쫓고 박근혜<정권> 끝장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는데 한생을 바치자.>고 호소했다.

이천재고문은 <돌아가신지 벌써 6년인데, 어려운시대에 같이 감옥을 살기도 하고, 같이 재판을 받기도 하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며 <한번은 강목사님이 재판을 받는데 판사가 목사님에게 베레모를 벗으라고 명령하자, 강목사님은 <교회에서 예배할 때도 쓰는 모자다, 못벗는다.>며 <당신같은 사람이 판사라니 유감이다.>라고 하셨다. 나도 당신같은 사람이 판사라니 한심스럽다고 했다. 기질이 통했다고 하겠다.>며 회고했다.

그러면서 <강목사님은 혁명가이며, 학구적인 열정이 대단하고, 민족지도자, 사상가, 인본중심의 철학자로 특별한 분>이라면서 <강목사님이 돌아가시고나서 혹자는 사회과학적인식이나 변혁의 전략전술적인 측면에서 치밀하지 못했다고 말을 하는데 이는 장미꽃을 쳐다보면서 복숭아를 찾는격으로 황당한 인식이다. 그분의 생애, 역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밝히고, <역사가 흐르면흐를수록 분단시대에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조국통일에 공헌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훈공동대표는 <의장님이 걸어오신 길은 매순간이 민주주의의 적, 자주통일의 적들과의 준엄한 격전장이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치열한 투쟁의 나날이었다.>며 <시대의 의인, 겨레의 위인이 걸어왔던 한생은 지금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며 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고 있다.>고 추도했다.

이어 <강희남의장님이 걸어오셨던 투쟁의 한생은 코리아연대가 그 어떤 탄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굴함없이 투쟁을 할 수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며 <<제2의 6월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의장님의 그 항쟁정신이 2015년 이명박근혜<정권>을 반드시 끝장내겠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간고한 <전선투쟁>을 쉼없이 추동하고 있다. 코리아연대는 강희남정신으로 투쟁해왔고, 그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코리아연대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장님이 민족의 제단에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시며 항쟁을 호소하셨던 그 유언속의 살인마 이명박이 오늘의 박근혜로 이어지며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다.>며 <강희남정신을 계승해 민족의 운명을 유린하며 민중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이명박근혜정권>을 반드시 끝장내겠다.>고 다짐하고, <강희남정신으로 전진하는 그 영광스러운 길에 우리 코리아연대회원들은 변함없이 선봉에서 투쟁할 것을 굳게 결의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참가자들은 영정에 헌화하며 강희남정신을 깊이 새기고 고인의 넋을 기렸다.

6일 오전11시 전주 그린피아추모관에서 6주기추도식이, 오후5시에는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인근 KT앞에서 <강희남범민련의장정신계승 및 이명박근혜정권퇴진투쟁 결의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다음은 코리아연대 이상훈공동대표의 추모사와 강희남의장의 약력이다.

강희남정신을 계승하여 이명박근혜를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
– 강희남의장 6주기추모사

너무나 뵙고 싶고 그리운 강희남의장님의 6주기 추모의 날을 맞아 의장님이 걸어오셨던 투쟁의 삶을 돌아봅니다. 전두환의 호헌조치를 준열히 규탄하였던 1987년 40일간의 옥중단식투쟁,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위한 1994년 조문방북투쟁, 범민족통일대축전의 성공적 개최이후 경찰소환을 단호히 거부한 1999년 명동성당농성투쟁, 맥아더동상철거와 양키추방을 위한 2005년 69일간의 노숙농성투쟁, <리명박을 내치자>는 항쟁호소문을 남기신 마지막 순절의 순간까지 의장님이 걸어오신 길은 매순간이 민주주의의 적, 자주통일의 적들과의 준엄한 격전장이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치열한 투쟁의 나날이었습니다. 시대의 의인, 겨레의 위인이 걸어왔던 한생은 지금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며 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강희남의장님이 걸어오셨던 투쟁의 한생은 우리 코리아연대가 그 어떤 탄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굴함없이 투쟁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감옥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북에 조문간다 길비켜라>며 앞장서서 투쟁하셨던 의장님의 민족대단결정신이 2011년 코리아연대의 방북조문투쟁을 성사시켰으며 숱한 단식과 농성으로 이어졌던 의장님의 불굴의 투쟁정신이 150여일 코리아연대의 농성투쟁을 힘차게 이끌고 있습니다. 또 마지막 남기는 말로 <제2의 6월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의장님의 그 항쟁정신이 2015년 이명박근혜<정권>을 반드시 끝장내겠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간고한 <전선투쟁>을 쉼없이 추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코리아연대는 강희남정신으로 투쟁하여왔고 그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코리아연대도 없을 것입니다.

박근혜는 오늘의 이명박입니다. 의장님이 민족의 제단에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시며 항쟁을 호소하셨던 그 유언속의 살인마 이명박이 오늘의 박근혜로 이어지며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친미·친일이 뼈속까지 들어찬 사대매국노 <츠키야마 나키히로> 이명박이 그러했듯이 <다까키 마사오>의 딸 박근혜도 북침미남합동전쟁연습을 감행하고 사드(THAAD)를 배치하는 등의 굴욕적인 종미사대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을 압수수색하며 당원명부를 갈취하였던 이명박이 그러했듯이 박근혜도 <종북소동>을 일으키며 결국 진보정당을 강제해산시켰습니다. 반북대결정책인 <비핵·개방·3000>을 들고나왔던 이명박처럼 박근혜도 6.15와 10.4선언을 부정하며 6.15민족공동행사를 무산시켰습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생을 파탄내며 남북관계를 완전히 파국으로 내몰고 있는 주범이 바로 오늘의 이명박인 박근혜입니다.

강희남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운명을 유린하며 민중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이명박근혜정권>을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 강희남정신으로 투쟁하는 우리에겐 그 어떤 주저함과 두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라고 하신 의장님의 말씀대로 지금 그 민중이 <박근혜를 놔두면 나라가 망한다>며 격분하고 있고 투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19와 6월항쟁을 보라>고 하신 의장님의 말씀을 각인하고 투쟁하는 민중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대중적 항쟁의 불길을 거세차게 지펴올리겠습니다. 우리는 그 투쟁의 마당, 항쟁의 마당, 승리의 마당에 강희남의장님이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모두의 가슴속에 부활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던 의장님의 절절한 호소를 잊지 않는 민중들이 있는 한 세월호학살의 원흉 박근혜를 끝장내는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강희남정신으로 전진하는 그 영광스러운 길에 우리 코리아연대회원들은 변함없이 선봉에서 투쟁할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2015년 6월 5일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공동대표 이상훈

흰돌 강희남 의장 약력

1920년 1월 13일 전북 김제 농가 강학용과 류성녀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1935년 초등학교 졸업 후 한문수학 및 독학의 길로 접어들다
1935년 정복님과 결혼 후 예수교에 입교하고 슬하에 3남 4녀를 두다
1947년 한국신학대 입학하다
1950년 익산에서 중학 교사로 부임
1952년 군산 영명 중학 교사로 전임
1955년 군산교회에서 목사로 안수받다
1959년 몇 교회들을 거쳐 전주 영생중고등학교 교감으로 부임
1963년 전주 성광교회를 비롯하여 난산교회 등 목회에 전념
1977년 난산교회 시무 중 박정희정권에 도전하다가 전주교도소에 투옥, 1980년 초에 출옥
1977년 9월 광주고법 첫 공판일에 윤보선 내외 등 1천여명의 방청객들이 방청하려했으나 재판을 연기, 이에 경찰 및 공안기관에 맞서 민중 난투극이 벌어져 부상자 속출
1979년 광주교도소 수감 당시 장남이 광주교도소로 이감을 와 대전으로 송치됨
1980년 초 대전에서 출옥
1983년 문익환 목사와 민통련을 창립하고 대의원총회 의장에 취임. 이 해에 아내와 사별
1983년 기독교농민회 이사장을 겸하여 4개년을 지내다
1987년 전북대 강연으로 2차 투옥되어 전두환의 호헌조치 반대 옥중단식투쟁에 들어가 40여일을 지내다. 그해 6월 민중항쟁으로 출옥하다
1988년 조성만 열사 장례위원장을 맡다
1990년 저서 『역사속의 실존』 을 출간
1991년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다. ‘령성과 해방’을 번역 출간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조문시도 사건으로 3차 투옥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취임(초대의장). 범민련 관계인사 29명과 함께 투옥 됨(4차 투옥)
1996년 저서 『민중주의』 출간
1999년 10차범민족통일대축전 추진본부 의장을 맡아 박창균통일선봉대장 등과 함께 성황리에 개최한 후 수배,
명동성당에서 4개월 동안 농성 투쟁 전개
2000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사임
2003년 <이라크파병저지 목포-서울 도보 민중행진단> 20일간 천리 도보행진
2003년 저서 『중국 동북3성을 가다 : 고대사소고』 출간
2004년 4월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결성
2004년 독일 동포들 초청강연으로 유럽행을 떠나다
2005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이라크 파병 저지운동으로 목포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 시위를 강행
2005년 5월 미군추방투쟁공대위 결성
2005년 5월10일~7월17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철폐를 위해 동상 앞에서 69일 동안 투쟁
2006년 용산 양키기지 앞과 양키대사관 앞 양키추방 투쟁 54회 진행
2008년 저서 『정리된 상고사』출간
21세기코리아연구소 주최의 제1회 파리국제포럼 참석
2009년 6월 6일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남기는 말(유서)을 남기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 향년 89세
2009년 현 범민련남측본부 명예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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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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