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목사․코리아연대의 농성81일차인 29일 기독교회관7층농성장에서 오후8시30분 단전조치가 취해지자 <별밤(농성장, 별이 빛나는 밤에)> 3번째일화가 시작됐다.
<날아다니는 사회, 좀 많이 잘하는 기타연주>
사회는 한준혜농성단원이, 기타연주는 코리아연대 구인규회원이 맡았다. 강순영농성단원은 SNS에 <사회자는 날아다니고 기타연주는 좀 많이 잘한다.>고 재미나게 평했다.
오프닝멘트로 호주에서 유학중인 한 여대생의 사연이 소개됐다. 호주유학생은 <친구의 소개로 <농성팟>을 알게 되었고 박근혜정권의 공안탄압에 대해 걱정을 하며 농성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아직 살만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 백인이 자신에게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뜨거운 커피를 끼얹은 사연>을 말하며 <외국인노동자로 살아가는 차별에 대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힘써달라.>고 주문하면서 독일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나의 투쟁은>을 보내왔다.
릴케의 시 <나의 투쟁은> 낭송
나의 투쟁은
그리움에 몸을 바치며
일상적인 나날에서 벗어나는 것.
강하게 넓게
수없이 뿌리를 펴고
인생을 깊이 파고드는 것.
수많은 괴로움에 몸을 태우며
참답게 성숙하여
목숨과 시간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
김대봉2차농성단원의 지인인 안양지역의 한 시민은 <오늘 와서 보니 고생을 많이 한다.>면서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느냐. 불이 나갈 때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 뒤 릴케의 시 <나의 투쟁은>을 낭송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건 사람
<별밤>참가자들은 <아침이슬>을 부르며 지영철농성단원의 선배 우상윤동문을 두번째손님으로 무대에 불렀다. 우상윤동문은 <오늘 이런 행사가 있는 줄 몰랐고 다음에 다시 오려고 했으나 후배가 <내일은 내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해서 이 자리에 있다.>면서 <운동하는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 과거 우리학교 학풍이 이렇지 않았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어 <치열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란 믿음을 버린 적은 없다.>며 <비슷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 얼굴도 모르는 후배를 찾아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학생운동시절을 떠올리며 <동지를 위하여>를 불렀다.
김성환위원장 <시간이 필요한 외로운 싸움>
세번째손님으로는 삼성일반노조 김성환위원장과 한솔로지스텍스 정택교노동운동가가 김병동2차농성단장과 함께 무대에 나섰다. 참가자들은 <처음처럼>을 부르며 손님들을 맞았다.
정택교동지는 <박근혜를 지지했는데 2012년 12월31일 해고된 후 사회를 다시 보게 됐다.>면서 <해고이후 김성환위원장을 만나 사측을 상대로 싸웠고 2014년 10월에 행정소송에서 부당해고판결승소가 결정됐다. 이후 사측은 합의를 보자며 나왔다.>고 투쟁승리과정을 전했다.
김성환위원장은 <국가보안법 공안탄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삼성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나의 싸움이나 여러분들의 싸움이나 시간이 좀 필요한게 아닐까 한다.>며 농성단원을 격려했다.
사회자는 <고등학교때 김성환위원장이 모범생이었을까, 날라리였을까요?>라는 돌발질문에 김성환위원장은 <모범생이었다.>면서 <하지만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직업학교에 다녔다. 그래도 사회에 관심이 있어 써클활동을 했다.>고 답변했다.
연이어 김병동대표가 <사모님과의 만남에 대해 말해 달라.>며 짓궂게 질문하자 김위원장은 <부천에서 일을 하던 시절에 숙대생이었던 배우자가 위장취업을 들어와서 만나게 됐다.>고 답했다. 또 <이후 전두환시절 창원에서 일을 할 때 보안사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는데 배우자가 끌려왔고 그때 마음이 참 약해졌다.>고 말한 뒤 <조사받고 나와서 서로 농담하듯이 <우리 결혼하자.>고 말했는데 고개를 끄떡끄떡 거려서 집에 소개를 하고 아버지가 한달도 안되서 결혼을 시켰다.>고 이야기했다.
네번째손님인 총신대민주동문회 김영운회장은 <작은공간에서 후배동지들이 아름답게 치열하게 이 자리를 지켜줌으로 인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어 감사하다.>며 짧은 인사를 전했다. 1부마감시간인 밤10시를 기해 다음 <별밤>손님인 김회장을 다시 초대하며 1부를 마쳤다.
밤을 새며 이어지는 김성환위원장의 감동적인 삶과 투쟁의 이야기
2부는 장소를 옮겨 김성환위원장과의 보다 편안하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성환위원장의 노래에 지영철농성단원이 답가를 부르기도 했다.
김위원장은 <삼성과 싸워오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었다.>고 말한 뒤 <하지만 삼성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지금까지 한푼도 받지 않고 싸웠다.>고 말했다. <초창기에 삼성이 1억을 준다고 했는데 지금쯤 10억의 값어치는 될 것>이라며 <그렇게 안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싸운 것이고 배우자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배우자도 여성이라 귀걸이, 목걸이를 갖고 싶어하는데 한 번도 사준 적이 없다>면서 <언젠가는 꼭 목걸이를 해주고 싶다.>며 소박한 소원을 말했다. 이어 <한번은 배우자가 <남자가 집에 돈을 갖다줘야지.>라고 말하길래 <그럼 은행을 털랴?>라고 말하니 다음부터는 돈얘기는 한번도 꺼내지 않는다>면서 <그래서 10년 넘게 배우자가 우유배달에 델몬트쥬스배달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가슴아픈 이야기를 꺼냈다.
3년간 감옥생활을 한 이야기도 했다. 김위원장은 <3년간 짧게는 12일, 길게는 20일 넘게 9번의 단식을 했는데 주로 감옥생활처우개선과 밖의 일 때문에 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로 독방에서 생활을 했는데, 창문이 없는 곳이었다.>며 <20일에 이르는 단식을 통해 창문이 설치>됐다고 회고했다. <옥중생활중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머님을 생각하며 단식을 했다.>라며 가슴아픈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인천부천지역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87노동자대투쟁 이후에 임금인상문제로 유인물을 배포하고 식당에서 선동을 했고 회사로부터 찍혀서 불려갔고,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며 결국 회사가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때 회사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동자와 축배를 들었고, 이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파업전야>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당시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특히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은 하나>라는데 대해 강조했다. <여러 정파들이 정세를 분석하며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운동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을 못봤다>면서 <노동운동으로 감옥에서 장기수선생님들을 만나며 선생님들이 <통일된 세상에서도 노동자가 주인이 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또 노동운동을 제일로 치는 걸 보면서 노동운동이 곧 통일운동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익혀지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공안탄압에 대해서 전 운동권적으로 막고 싸워도 시원치않을 판인데 싸울 단위들은 안싸우고>라고 지적하면서 이적목사·코리아연대의 농성투쟁과 삼성과의 싸움의 공통점을 짚었다.
김성환위원장의 감동적인 삶과 투쟁의 이야기는 밤을 새며 이어지고 있다.
<농성장, 별이 빛나는 밤에>는 매일저녁 굴함없이 계속될 예정이다.
*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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