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성과 사상성의 결합
벨에포크(아름다운시절, Belle Époque)란 말은 19세기말 자본주의상승기의 유럽을 추억하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하며 식민지약탈로 소비와 향락이 만연한 시대, 노동자·농민의 투쟁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시대, 세계대전의 불안이 엄습해오던 시대다. 1차·2차세계대전과 파시즘의 지옥을 경험한 쁘띠부르주아에게 어찌 19세기말이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겠는가. 이 시대에 자본주의적 풍요와 쁘띠부르주아의 문화가 결합해 다양한 문학·예술적 성과가 이뤄지고 실험적인 작품들도 대거 등장한다. 뤼미에르형제가 만든 인류최초의 영화 <기차의도착>은 1895년, 이벤스가 태어나기 3년전에 만들어졌다. 이벤스는 사진관련일을 해온 집안내력과 시대추세를 따라 수동식촬영기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1929년 제작한 <다리>·<비>의 실험성은 평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벤스가 여기서 멈췄다면 모더니즘의 한 작가로만 남았을 것이다.
허나 이벤스는 노동자·민중이 역사무대의 전면에 등장해 혁명적 진출을 시작한 1920년대후반, 거장다운 예술적 감수성으로 시대의 본질을 포착한다. 이벤스는 푸도프킨 등 러시아의 영화감독들과 교류하며 예술영화에서 기록영화로 옮겨간다. 예술의 사명과 영화의 본질을 깨달은 이벤스 는 노동자·민중의 삶과 투쟁을 영화에 담기 시작한다. 이벤스의 특출한 예술적 자질은 노동자·민중의 사상과 결합돼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예술가는 없다, 운동가만 있을뿐>
노동자·민중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순간부터 이벤스는 정부의 감시대상이 됐고 작품들은 검열의 집중대상이 됐다. 어떤 탄압도 이벤스에게 영화의 사명을 잊게 만들지 못했다. 생애마지막까지 세계각지에서 수십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1931년 무자비한 노동착취를 고발한 <필립스라디오>부터 본격적인 기록영화감독으로 나선 이벤스는 1년뒤 소련으로 넘어가 시베리아의 용광로건설현장의 영웅적 노동자들을 그린 <영웅들의노래>를 만들었다. 연이어 제작한 <신세계>, <보리나쥬의빈곤>에서도 자본의 횡포, 자본가의 착취, 노동자·민중의 분노를 담았다.
이벤스의 1930년대는 파시즘과의 투쟁시기다. 스페인내전의 역사적 기록인 <스페인전쟁>, 일제의 중국침략만행을 그린 <4억의사람들>, 독일나치즘에 맞서 싸우는 소련에 연대하는 <러시아연방전선>·<액션스테이션>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스페인전쟁>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세간의 평에 이벤스는 <기록영화감독은 파시즘과 반파시즘 같은 본질적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반드시 확고한 자기입장을 가지고있어야 한다> 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예술가는 없다, 운동가만 있을 뿐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2차세계대전후 급성장한 노동자·민중의 혁명정신과 절박한 국제연대의 필요성은 이벤스의 작품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46년 <인도네시아가부른다>는 호주최초의 노동영화이자 반식민지영화로 유명하다. 네덜란드제국주의선박의 인도네시아진출을 막는 호주해양노동자들의 영웅적 투쟁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이벤스는 네덜란드보안국과 호주당국의 감시와 탄압을 받게 된다. 특히 미국은 이벤스를 악랄하게 탄압했다. 이벤스가 가장 증오했던 사람중 하나인 태평양연합군최고사령관 맥아더는 그의 영화를 모든 전쟁지역에서 상영금지시켰고 제국주의미국은 당연히 이벤스의 미국입국을 금지했다. 제국주의자들의 탄압정도는 진보주의자들의 활동수준에 비례한다.


혁명과 노동자·민중의 노래
억압과 착취를 뚫고 전진하는 노동자·민중의 불굴의 투쟁정신은 곧 이벤스의 정신력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가부른다>로 당국의 집중적인 감시·탄압을 받게 된 이벤스는 오히려 동유럽에 머물며 평생의 역작 <강의노래>창작에 몰두한다.
<강의노래>는 세계 6대강인 미시시피·갠지스·나일·양쯔·볼가·아마 존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동자·민중의 삶과 투쟁을 담았다. 이벤스는 원래 1953.10 비엔나에서 열린 3차세계노총(WFTU)을 영화화할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곧 전세계노조들의 투쟁, 전세계노동자들 의 투쟁을 보여주는 마치 거대한 프레스코(fresco)벽화처럼 불멸의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한다. 이 프로젝트를 총지휘한 이벤스는 32개국에 의뢰하고 이들이 때로 투옥되면서 8개월간 촬영한 12만m의 필름을 편집해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는 강을 따라가며 노동자·민중의 삶과 투쟁, 노동자·민중에 대한 애정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영화에서 실제 강은 6개가 나오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대하가 7번째로 숨어있다. 이벤스는 억압과 착취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혁명성을 특유의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해 세기의 역작을 낳았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이벤스의 혁명성·예술성에 경의를 표하며 <강의 노래>에 참여했다. 교향곡5번 <혁명>으로 유명한 소련의 쇼스타코비치는 영화의 음악을 맡았고 혁명적 사실주의극작가 브레히트는 노동자·민중에 바치는 송가를 만들었으며 <게르니카>·<코리아에서의학살>로 유명한 피카소가 영화에 대한 책표지를 디자인했다. 혁명의 노래, <강의노래>는 기획부터 완성까지 노동자·민중이 어떻게 탄압을 뚫고 어떤 힘으로 새세상을 건설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노동자 한사람은 약하지만 만사람·억사람이 모이면 그 힘은 무한하다. 18개언어로 번역돼 모두 2억5000만이 본 <강의 노래>는 영국에서 너무 강력히 검열돼 초기공개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벤스는 때로 미군이 폭격하는 격전지에서, 지하10m굴에서 3개월간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이벤스의 열정과 관심은 언제나 일하는 사람, 노동자에게 맞춰져있었다. 전 세계노동자들의 억센 투쟁을 담은 <강의노래>는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해 제국주의·자본주의를 몰아내고 사회의 주인으로 서게 될, 승리의 바다로 도도히 흐르게 될 그날을 대하서사시로 그려냈다. 이벤스는 지금 여기 없지만 그가 주목한 노동자·민중 은 반드시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양심>
이벤스는 네덜란드인으로서 네덜란드의 식민주의를 증오하며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노동자·민중을 사랑하고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지했다. 이벤스의 영화예술가로서의 삶은 진정한 국제주의예술가의 전형과 같다. 그 표상이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의 심장에 각인됐다. 이벤스는 영화제작의 열정과 동력을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양심>이라고 밝혔다. 혁명가, 국제주의자이자 영화예술가인 이벤스는 전세계노동자·민중의 영원한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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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휴: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