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과 선거. 진보는 항쟁이고 개혁은 선거다. 항쟁은 제도권밖을, 선거는 제도권안을 의미한다. 진보는 제도권밖에서 주도하고 개혁은 제도권안에서 주도한다. 가령 프랑스는 1936년총선과 2차대전이후에선 사회당이 주도하고 그 사이 2차대전중엔 공산당이 주도했다. 사회당은 쁘띠부르주아정당이고 공산당은 노동계급혁명정당이다. 물론 프랑스공산당은 유로꼬뮈니즘계열이라 정통과 다르다.
선거로 혁명이 이뤄진적은 한번도 없다. 칠레의 아옌데정권은 결국 미제국주의의 조종아래 피노체트군사쿠데타에 무너졌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의 집권은 좌익쿠데타의 실패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뤄졌다. 선거는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굳어진 불공정경쟁의 대명사다. 진보세력은 금권·관권·언권의 압도적방해책동속에 겨우 명맥만 유지한다. 이러니 집권은 관념속에서나 존재한다.
항쟁은 대중항쟁과 민중항쟁, 두가지가 있다. 전자는 마치 1917년 2월혁명처럼 전술적이고 개혁적이고 후자는 10월혁명처럼 전략적이고 혁명적이다. 대중항쟁은 중간층이 주도하고 민중항쟁은 기층민이 주도한다. 기층민이 정치세력화되지않고서는 민중항쟁은 일어나지않는다. 대중항쟁을 통해 개혁정권이 들어서면 기층민의 정치세력화에 유리한 계기가 마련된다. 2월혁명처럼 대중항쟁은 때론 건너뛸수도 있는 전술단계다.
개혁세력은 필사적으로 민심을 제도권에 가두려 한다. 의회와 선거를 강조하며 합법테두리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부글부글 끓는 민심을 주전자안에 넣고 뚜껑의 구멍으로 김을 새게 만드는식이 바로 개량주의다. 왜 드넓은 항쟁의 바다를 놔두고 좁디좁은 개량주의양식장에 스스로 갇히려 하는가. 보수정치인들이 제도권·개량을 강조하는 말들은 싹 무시하고 항쟁의 거리에서 퇴진·구속·해체만 외치면 된다. 기존제도가 엉망이니 이런 일이 생기는게 아닌가. 진리·진실은 그 제도 밖에 있다.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