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만 가능하게 해주세요”

생명평화대행진 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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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밀양일정을 잘 마무리한 행진단은 김해로 향했다.

합천보, 우포늪을 방문하고 경남민예총이 준비한 경남민족예술제에 결합했다.

이날 문정현신부님과 오두희위원장, 쌍용차해고자 김대용노동자, 용산 권명숙어머니와 정영신씨, 딸기씨, 그리고 기자는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에서 골프장건설중단촉구 전국집중대회가 있기 때문이다.

문규현신부님은 뒤늦게 일정이 확인된 녹색당(녹색당더하기(+))창당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홍성을 방문했다.

아침에 또 문규현신부님의 형님걱정 때문에 소동(?)이 있었다.

식사를 못하고 출발한 문정현신부님을 걱정해 죽을 보내주겠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는 이미 출발해 고속도로를 타기 직전상황이었다.

그냥 돌아가라고 해도 계속 따라오며 “거의 다 왔다”며 기다리란다.

요며칠 문규현신부님은 공주-대천-전주-대전-전주-창원을 직접 운전해 다녔다.

10월20일, 28일 예정된 민회와 11월3일 서울집중대회를 조직하기 위해서 이 살인적인 일정을 다 소화한 것이다.

문정현신부님은 오히려 동생걱정이 태산이다.

문정현신부님은 “니가 천하장사냐?”라며 고함을 질렀다 한다.

“혼자 그러는 거여. 그 장거리를. 그래서 내가 돈을 대더라도 운전할 사람 구하라했지.”

오위원장과 문신부님은 적어도 올연말까지는 문규현신부님을 대신해 운전할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동명휴게소에서 문규현신부님이 건네준 죽을 맛있게 먹었다.

다시 춘천으로. 다들 민회조직을 위해 전화를 열심히 돌린다.

춘천에 들어서자 문신부님은 “저기 저 단풍 봐봐. 새빨간 것이 내 맘이여. 흐흐.”라고 말하며 웃음을 이끌어냈다.

“뭐 빨간거도 없구만. 거무스름하구만.”

오위원장도 한마디 거든다.

문신부님은 또 “나 대선 끝나고 오지에 가서 한달만 있다 올거야. 아-주 오지.”라며 그간의 투쟁에 대해 짧고 굵은 소회를 하신다.


오후2시 춘천에서 대회가 열렸다.

관련단체들과 농민회, 노동자들이 춘천역을 가득 채웠다.

최지사를 잘 안다는 문신부님의 연대사가 있었다.

문신부님은 “기대 많이 했다. 대선전에 골프장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며 강력하게 경고했다.

얼마후 각대표자들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여성대책위원장은 삭발이 진행되는 동안 마이크를 잡고 골프장건설을 강행하는 최문순지사를 향해 이야기한다.


“주민들은 당신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돈을 요구한 거 아니잖아요.

우리가 목을 매야되는 겁니까.

돈을 2배 바라는 게 아닙니다.

일상생활만 하도록 해주세요.

골프장이 당신에게 뭡니까.

당신이 원하는 게 이런겁니까.”


울부짖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장내는 눈물바다가 돼 버렸다.


“정말 주민들은 이자리에서 골프장을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저흴 죽여주시고 골프장을 하시던지 그런 게 아니라면 설득을 해주시던지.

아니면 골프장은 절대 못합니다.

저희를 살펴주세요.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자리에서 답변을 해주세요.”


행사를 촬영하며 트위터에 올리던 문신부님도, 옆에 앉아 있는 오위원장도 운다.

문신부님의 바로뒤 할머니가 일어서서 절규한다.

문신부님은 눈물을 몇 번씩 훔치고 나서 그 할머니를 두번이나 꼭 껴안으며 진정시켰다.


사회자는 “골프장이 말발굽처럼 생긴 곳도 있는데 농사짓다가 골프공이 날아오게 생기게 됐다”며 최문순지사의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골프장으로 한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게 되는 곳도 있다 한다.

골프장해결을 약속하고 당선된 최지사가 이렇게 지역민들에게 절망을 주고 있는 데 충격적이었다.

한편에선 최지사가 대부분의 중간 보수적 공무원들을 뚫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역시 의지의 문제일 것이다.

주민들을 표로 계산해선 안되겠지만 강원도에서 이렇게 민심을 잃는다면 앞으로 대선에서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현장의 느낌이 강했다.


대행진 21일차인 10월25일 춘천 등 강원도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때 문신부님이 최지사와 면담을 요청하기로 했다.

기자는 전날 갓 출소한 전농강원도연맹 전사무처장과 만나 그간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은 사실 강행군이었다.

허리가 편치 않은 문신부님이 거의 10시간 가까이 차를 탑승했다.

마침 휴게소 한켠에 주차돼 있는 캐딜락을 가리키며 문신부님이 한마디 한다.

“내가 4월6일날 저거 탈뻔했어. 흐흐. 내가 같이 못 걷고 그러고 남한테 짐이 되는데 여기 있어야되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어젠 내가 비관을 했지. 쓸모가 있는 인간인가 싶더라고.”


어제 고리원자력발전소 행진을 마치는 지점에서 약속된 장소가 엇갈려 문신부님이 한시간여 기다린 걸 말하는 것이다.

다리가 아픈 문신부님은 행진을 하다 힘들면 차를 타면서, 집회나 문화제는 꼭 참가한다.

어제는 약속장소에 기다리다 못한 신부님이 전화를 여러번 해 겨우 전체 행진단과 만났다.

문신부님은 버스에 들어서자마자 지팡이를 바닥에 던지며 “사람을 외딴곳에 기다리게 해놓고 말여”라며 화를 내고 자리에 앉았다.

문신부님의 자리는 맨앞자리인데 이동할땐 편한 승용차가 아니라 전체 일행과 함께 버스만 탄다.

한때 모두들 긴장했다. 오위원장도 신부님 곁으로 가 풀어드리고 그랬다.


김해에 마련된 숙소에 도착했다.

이날 경남민족예술제에 김진숙지도위원이 참석했지만 만나진 못했다.

우리는 예술제에 가지 않고 바로 경남민예총 뒷풀이에 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민예총이사회를 김해에서 하면서 행진단과 문예인들뿐아니라 이사회임원들도 김해로 내려와 관객수가 더 늘었다 한다.

민예총은 강정에서도 대표자회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뒷풀이에서 민예총이사인 이철수판화가와 그의 부인인 이여경선생도 만났다.

이여경선생은 농사를 짓는다고 소박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예전에 우리도 싸움을 하며 플래카드를 예쁘게 만들었어요. 반대하는 플래카드도 아름답게 만든거죠. 다들 뭐라했지만, 사람들이 ‘거친 말’이 항상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운동하는 분들이 사람들이 다들 갖고 있는 거(진보적인 운동의 동력, 동인이 될 수 있는 힘)를 잘 엮어내지 못하는 거 같구요. 삼성하고 애플 문제가 생겼을 때 보수쪽에서 삼성애용, 애플불매 이런거 하려 했지만 국민들은 꿈쩍도 안했거든요. 보수진보상관없이. 이미 안에 있는 거죠.”

영상을 찍고 있다는 기자에게 “거친 영상이 때론 힘을 낼때가 있지만 좀 더 기획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컨텐츠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큰 승리는 힘들지만 작은 성취감이 힘이 돼서 계속 해나가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요. 또 싸움에서 지게 되면 분파가 생기고… 큰 싸움도 필요하지만 매일매일의 성취감이 필요합니다. 그게 굴러가는 힘을 만들기도 하죠.”


한가지 더 얘기한 것은 싸움의 본질이 정직, 곧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다.

제일 중요한 것중 하나가 우리의 실수를 흔쾌히 인정하는 거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뭔가 공정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아요.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얘기를 많이 하며 우리의 성을 만드려고 하는데… 우리 스스로에 대해 공정해져야 해요. 외부에서 볼때는 결국 나타나는 건 하나의 팩트뿐인거죠.”


문신부님은 이자리에서도 “구럼비야 사랑해- … 강정의 평화-”를 열창했다.

물론 문신부님이 개사한 노래 <전철연가>(원곡 <1노2김가>)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나영필기자 

21세기민족일보∙진보노동뉴스 공동기획
2012생명평화대행진 동행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