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서울노동인권영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한 상영작은 <분노를 엮는이들>이었다. <분노를 엮는이들>에는 프랑스민중의 과거와 현대를 잇는 투쟁이 나온다. 생나제흐노동자들과 자드(ZAD, Zone of Defend) 그리고 노란조끼다. 프랑스민중의 항쟁의 역사를 엮으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노란조끼란 파리 레뉘드부 현장에서 본 파리코뮌의 붉은색과 자드(ZAD)의 녹색의 만남이다. 생나제흐민중의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어릴적 민중문화센터에 다시 온 느낌을 받았다. 민중이 해방된 그 공간 말이다. 증언·회의·집회·충돌이 섞여있는 여정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엮어내고자 했다. 오늘의 투쟁이 우리의 내일을 바꾸기를 바라며.> 10일 이른 저녁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오헬리앙감독이 등장해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오헬리앙감독 |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레뉘드부에서 목격한 운동때문었다. 그운동이 살고있는 집 아래서 일어났다. 매일 볼수밖에 없었고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관심이 생겨 촬영을 하게 됐다. 그동안 투쟁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존의 침체된 운동을 담는데에는 에너지를 쓰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신선했다. 꼭 이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다. 2016년은 프랑스에서 집회탄압이 극심했던 시기다. 집회참가자들중 부상을 입지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당시 집회현장이 노조가 중심인 집회였다면, 이운동은 내세울것이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올수 있는 집회였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대체 왜 거리에 나왔을까, 누굴까, 노조나 정당활동가가 아니면 왜 나왔지? 그러면서 국가폭력이 이렇게 극심하다는것을 알게 됐다. 자연스러운 영화다. 감독이 경험한 의식의 흐름을 담은 영화로서 3가지 투쟁을 굳이 엮은 이유는 시너지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란조끼운동이 막 일어났을때에는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였을때다. 이것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도중 노란조끼를 만났다. 노란조끼운동이 너무 중요했고 관심이 많이 갔다. 노란조끼의 출발은 물론 할말이 너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란조끼영화를 먼저 만들었다. 그래서 <분노를 엮는이들>이 나중에 나오게 된것이다. 노란조끼와 자드의 공통점은 임시거처가 있다는 것이다. 민중들의 힘과 열기가 느껴진다는점에서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 지리적으로도 생나제르라는 공간이 자드와 매우 가깝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가서 도와주고 또 둘 다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보면 차이가 크다. 기초가 전혀 다르다. 자드같은 경우는 환경운동가들이 주를 이뤘다. 노란조끼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중심을 이뤘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차이에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다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은 창조의 과정, 노란조끼는 민중의힘으로 새로운것을 만들었기에 생명력이 있었다

관객은 <분노를 엮는이들>를 통해 프랑스민중의 항쟁에서 끊임없는 토론과 민중적인 구호활동과 같이 프랑스만의 특성을 볼수 있다. 동시에 민중의 새시대를 갈망하는 신선한 투쟁방식도 있다. 감독은 특히 정치적인 활동경험이 없는 사람들, 정치적견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민중으로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데 대해 주목했다.

관객질문 | 영화에서 <일을 하고 입을 다물고 살아라>는 말이 이시대를 규정하는 말이라고 했다. 남코리아청년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각자의 삶을 살아라. 싸워도 바뀌는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거리에 나올수 있었는지?

오헬리앙 | 영화에 나오는 3가지 운동중 첫번째 운동은 노동법개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가 됐다. 노동법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2차대전이후 생긴 사회보장제도를 완전히 바꾸는것이라 사람들의 분노가 엄청났다. 그동안 노조를 중심으로 구성된 집회를 보면 관성화돼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새로운 투쟁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생긴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의 요인은 노란조끼는 아니다. 두명의 인텔리 활동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자와 경제학자다. 그들은 평소에도 사회참여운동을 많이 하긴 했지만 <집회하고 거리에 나와 싸워서는 바뀌는것이 없다. <뉘드부>, 밤샘시위를 하자, 집에 들어가지말자.>고 얘기했다. 그렇게 운동이 시작됐다.

우리에게도 <뉘드부>와 같은 문화가 있다. 5년전 박근혜퇴진투쟁에서 밤샘투쟁한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박근혜정부와 그시절 법원으로부터 통고된 집회제한시각이 있어서 서있으면 집회시간을 어기게 되니까 왔다갔다하는 방식도 있었다. 어쩌다 거리에서 밤을 샜는가 각자의 스토리가 있을것이다. <분노를 엮는이들>은 프랑스의 경우에 투쟁하는 방식이 새롭게 제기된 과정이 어떠했는가를 그려준다.

관객질문 | 투쟁과 예술이 접목 됐을때. 민중에 연결됐을때 어떻게 영향력이 커지는지?

오헬리앙 |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했던것, 처음부터 강조했던것중 하나가 사람들의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방식으로는 오래할수없다는것이었다. 새로운것을 만들어야 생명력이 있다. 창조와 투쟁이 쉽지는 않다. 힘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뒤엎는 과정이 어려운데 그때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는것 또한 과정이다.

투쟁이 어렵고 힘든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럴때 예술이 힘을 줄수있다. 70년대 프랑스 노동운동을 보면 노동자 문화가 급격히 발달했던 시기이다. 연극이나 조각, 미술을 가르치면서 사람들의 교양수준을 높이고 그곳에서 새로운 투쟁의 문화를 만들었다. 정치투쟁과 문화투쟁의 결합이다. 문화라는것은 역사를 가로질러 우리속에 남는다. 어떤 투쟁이 있으면 그경험이 역사속에 남고, 책이나 영화나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준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오늘날 프랑스노동자들의 우경화는 당・노조가 약해졌기 때문

관객질문 | 1970년대 상황에 대해서 프랑스사회학자가 쓴 책을 읽고있다. 70-80년대에 사람들이 정치활동이 노동계급의식적인 의식에 입각해 있었는데, 오늘날엔 노동자라는 자각하에서 보수정당에 투표한다고했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느끼는 고민의식이기도 한것같다. <분노를 엮는이들>에서 <지방에서 소외 당하고 기존의 언론에 세뇌 당해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우리의 투쟁을 알려야한다>고 했음. 실제로 그들과 이어지려는 노력이 계속됐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전개됐는지?

오헬리앙 | 직답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역사적배경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6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원이었다. 장관도 공산당이었다. 진보운동이 강했고 진보적인 운동이 활발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반격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상황이 진행됐다. 60~70년대 진보적이었다가 지금에 와서 사상이 변한 사람들에 대해 저는 의식이 덜 돼있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인텔리였다. 60~70년대에는 무료로 공장에 공연하러 갔던 예술가들이 이제는 돈을 줘야간다. 이제 누구에게 투표하나 이런 고민이 들것이다. 노동운동이 가장 강했던 시기에는 지배계급의 무시, 사람으로 인정하지않는 무시가 컸다. 오늘날 당과 노조가 약해졌다. 프랑스의 노조운동이 약해졌다. 그러니 뽑을 사람이 없다. 극우정당에서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말하는것을 믿는 사람도 있고 중간에 서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제가 <민중의집>에서 겪었던 일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거기에는 극우에 투표하는 사람도 있고 극좌파도, 정치에 관심이 없는 가족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민중의집에 모여 점점 의식이 바뀌게 되는것을 봤다. 그들이 한집에 모일수 있었던 이유, 공통점은 사회적으로 소외됐다는 것이다. 여전히 심한 지배계급의 무시가 있었고 국가권력의 폭력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관객질문 | 모든것이 계급투쟁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투쟁하는 민중들을 보면서 눈물이 나고 경찰의 폭력에 화가 나기도 했다. 모든것이 계급투쟁이라는것, 다수가 노동계급이라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란조끼 프랑스민중은 유류세인상에 분노했다. 마크롱이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짓이었다. 전세계가 다르지않은 상황에 처해있다. 최대스펙을 가져도 경제위기로 일자리를 갖기 어협다. 이사회의 이윤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를 분쇄할때만 억압과 착취를 없앨수 있디. 발전소노동자들이 파업을 한것 뿐아니라 부자집으로 가는 전기는 끊고, 전기가 공급되지않는 노동자들에게 전기를 나눠줬다는것만 보더라도 활력이 의외가 곳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나온다. 지금은 노란조끼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프랑스의 정치상황이 어떠한지?

오헬리앙 | 노란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최근 집회현장 어디에나 찾아가고있다. 최근엔 백신패스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고있다. 백신을 맞은 사람만이 입장할수 있는건 자유침해다고 나온 사람들이다. 백신의무화는 프랑스식이 아니다. 프랑스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하는것을 견디기 힘든것이다. 노란조끼를 입고 백신의무접종에 반대하는 집회가 매주 토요일에 열리고있다. 노란조끼라는게 조직이 있는것도 아니고 정해진 틀이 없는것이다. 언제나 있는 집회에 노란조끼를 입고가기도 하고 활동하는 사람과 하지않는 사람간의 다리역할도 하면서 시위가 이어지고있다.

프랑스 정치상황은 너무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까다롭다. 극우정당이 두개나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두정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30%가 넘어서 걱정된다. 우려된다고 하는 이유는, 마크롱과 극우가 붙었을때 대부분은 마크홍이 이길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제는 극우가 당선될까봐 걱정된다. 이렇게 된 배경은 대안이 없는 현실이다. 좌파가 어떻게 하고있느냐를 봤을때 후보만 7명으로 분열된 모습이다. 사람들에게 혼란만 안겨줄뿐이다.

관객질문 | 우리나라에서는 백신반대운동이 없다싶다. 프랑스에서 백신반대운동이 매주, 각 지역과 도시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저변화되지않고있을지?

오헬리앙 |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감히 이야기하기 어렵다. 프랑스의 경우 민중의 분노가 바탕이 됐단 분석에 설명을 덧붙이고 싶은데 레닌조끼는 파리꼬뮌, 노란조끼는 프랑스혁명과 연관된다. 유사성이다. 이어져오고있다. 프랑스에서 상징이 많이 나온다. 투쟁이 계속해서 이어져오고있고 미래의 투쟁에 계승되고있다.

저는 참신한것을 좋아하고 일반적인것을 별로 안좋아한다. 영화를 보고 끝나는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경험속으로 스며들수 있다면 이곳에 온 가장 큰 의미가 되지않을까. 이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하는것은 한마디로 <투쟁은 이어진다>는것이다. 새로운것을 창조하지만 뿌리는 있다. 계승속에서 투쟁하는것, 이것이 유익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