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목사(김포민통선평화교회)와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의 민주주의수호와공안탄압저지를위한피해자농성 82일차인 3월30일 기독교회관7층, 오후8시30분 5일째 단전과 동시에 4일차 <별밤(농성장, 별이 빛나는 밤에)>이 시작됐다. 


<용감한 엄마>이자 <운동권 김태희>의 재치있는 사회
이날 사회는 <농성팟>에서 <용감한 엄마>로 활약중인 김정희농성단원이 맡았다. 사회자가 소개되자 참가자들은<운동권 김태희>라며 환호했다.
먼저 <별밤> 앞으로 보내온 코리아연대 이상준공동대표의 편지를 사회자가 낭독했다.
12월22일 해외출장 와중에 멀리서 사무실과 동지들의 집압수수색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보장하라고,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잇기 위한 정당한 활동을 한 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부정하고 탄압을 가했으니 그런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건 당연한 일이지요.
내가 사랑하는 동지들의 활동, 우리의 활동이 어찌 부정당하고 도리어 탄압을 받을 만한 일입니까. 
분명 우리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박<정권>은 우리의 탄압을 지렛대 삼아 위기를 극복해가고자 그 <유신독재>의 서슬퍼런 칼날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입니다. 

대학시절 96년 연대사건을 거치며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왼쪽눈을 실명할 때도 이렇게 분노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만큼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동지에 대한 탄압, 그것은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에 대한 탄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농성에 돌입한지 82일째 되는 날입니다.
하루하루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지들의 삶과 생활을 지켜보노라면 정말 가슴 뭉클한 감동의 연속입니다.
공안탄압에 정면으로 맞서나가는 모습, 농성투쟁으로 기세있게 내달리는 모습은 바로 이것이 우리의 투쟁전통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아름다운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더 힘껏 내달립시다. 
투쟁!
이어 이날 참가한 농성단원과 지인, 가족, 대학생들 30여명이 함께 최민농성단원의 기타반주에 맞춰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흥겹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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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등장한 <엄포스>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

사회자가 <별밤>4일차 첫번째 초대손님으로 인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엄경애회원을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엄포스>라고 외치며 엄경애회원을 맞이했다. 엄경애회원은 광화문미대사관앞 1인시위에서 경찰측의 온갖 강압과 훼방에도 굴하지않고 1인시위를 전개하면서 <엄포스>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사회자는 <성신여대 투쟁국장출신인데 학창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엄경애회원은 <87학번이다. 1학년때 등록금투쟁으로 수업을 안했다. 1학기말에 6월항쟁이 있었다. 건대도 붙었는데 86년 건대투쟁으로 부모님이 반대해서 건대를 안갔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때도 6시쯤 학교가서 미리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학생회활동을 생각한건 아닌데 과학생회를 89년도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투쟁본부가 과마다 다 있던 시기였다.>며 <한 선배가 5.18관련 그림책을 줬는데 충격이었다. 교과서와 반대내용이라 더 그랬다. 그러다 조금씩 공부하면서 이길을 가게 되었다.>고 학생운동을 하게 된 사연을 풀어냈다. 그러면서 <가정대 사회부장을 하기로 하고 학생회일을 하면서 장학금도 나왔다. 사회부장들이 단과대 <투본짱>이었다. 과에 인원이 별로 없어서…>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계속해서 <후배들을 챙기고 선배들이 별로 없다보니 공부를 하게 됐다. 87동기들을 지금도 만나는데 서로 책임감을 가지고 도우며 지냈다.>고 학생운동시절을 회상했다.

김정희사회자는 <뭔가를 내세우지 않으며 묵묵히 활동하는 선배다. 많이 배우게 된다.>고 평했다. 최민농성단원도 <민섭이라는 고1아들이 있다. 말산업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특색있다. 멀리 보냈는데 아들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가족에 대해 물었다. 엄경애회원은 <활동을 하면서 아이를 챙기지 못한게 미안했다. 습관을 잡아 줘야하는데 어릴때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했다. 미안한 감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을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다행히 좋은 선생을 만나 위기를 극복했다.>고 못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노동운동을 하신 걸로 아는데 요점만 말씀부탁드린다.>고 주문했고 엄경애회원은 <노동운동까지는 아니고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여성단체다. 노동상담이고 인천에서 노동부위탁을 받아 직장내 성희롱예방교육을 나간다.>고 겸손하게 소개했다. 엄경애회원은 <법적으로 30인미만 사업장은 1년에 1번 의무적으로 받게 돼있다.>며 <여성노조가 12개지부가 있는데 각대학 등 청소노동자가 여성노조다. 학교급식 조리종사원들 조직을 많이 하고 다녔다. 다양한 직종의 여성노조건설이 필요하다. 현재는 학교청소노동자와 조리종사원들로 치중돼있다.>고 노동운동경험에 대해 후배들에게 펼쳐보였다.

엄경애회원의 말이 끝나가자 청중들 여기저기서 노래신청이 들어왔다. 지영철농성단원이 <투쟁국라인들은 도와줘라~ 한준혜동지!>라고 말하자 투쟁국장출신 <이투쟁> 이상훈부단장이 등장해 <엄포스>와 <이투쟁>이 함께 <결전가>를 불렀다. 두사람은 투쟁국장출신답게 힘찬 노래를 불렀고 참가자들도 함께 부르며 분위기가 고조됐다. 지영철농성단원은 <이 노래는 원이, 현이(지영철·김정희부부의 딸·아들)가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부르는 유일한 민중가요!>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곡으로 <민중이 주인되는 통일, 해방세상을 위하여! 신청합니다.>라며 법혜스님이 신청한 <마른잎 다시 살아나>를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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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책사 양책사>부부의 프로포즈와 희로애락 이야기

다음순서를 소개하며 사회자는 <사람은 결혼을 잘해야 한다. 코리아연대에 그런 모범커플이 좀 있다. 나도 그중에 하나다.(좌중폭소)>라며 <그중에 최근 퀜즈망사무총장을 만나기 위해 용감한 결단을 했던 부부를 모시겠다.>며 양고은대표·박근운회원 부부를 무대로 불렀다.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 파트릭 퀜즈망(Patrick Kuentzmann)사무총장은 지난 2월 목정평평통위(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으로 남코리아를 방문했다가 국가정보원의 <블랙리스트>에 의해 입국이 불허돼 다음날 바로 강제출국당했다. 목정평평통위와 코리아연대회원들이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측에 항의하고 있는 동안 양고은·박근운부부는 인천공항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억류돼 있는 퀜즈망사무총장을 만나기 위해 해외출국티켓을 끊어 공항안으로 들어가 퀜즈망사무총장과 만났다. 

부부가 무대로 나오자 참가자들은 연호했다. 양고은대표는 <미녀책사 양책사입니다.>라고 했고 박근운회원은 <양고은남편으로 알려진 박근운입니다.>라고 인사하며 등장했다. <미녀책사 양책사>는 팟캐스트 <인턴스테파니>에서의 양고은대표별칭이다. 

사회자가 먼저 <결혼 몇년차죠?>라고 물었고 박근운회원은 <5년차>라고 답했다. 사회자는 <와 오래사셨네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회자는 <서로 보지 않고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라며 종이를 나눠주고 퀴즈를 냈다. <프로포즈 장소는?>이라는 사회자의 첫번째 퀴즈에 둘다 동시에 <남이섬>이라고 답했다. 청중은 <오~>라고 반응했다. 박근운회원은 <자취방에서의 프로포즈가 맘에 안든다고 남이섬에 가서 했다.>고 말하자 양고은대표는 <제가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데 그게 아니다. 프로포즈를 어떻게 할거냐고 질문했는데 식상한 거였다. 그래서 남이섬을 추천했다. 자취방은 거짓말이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만나 연애했나?>는 질문에 양고은대표는 <첫인상이 생생하다. 건대에서 한 회의때 누가 마중을 나왔다. 작은 키에 낡은 분홍조끼를 입고 팔자걸음으로 마중나왔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박근운회원은 <내가 본 첫 기억은 처음보는 여학생이 대전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인사를 나눴다. 내가 회의에서 학생운동혁신을 주제로 발제를 해야하는데 인사를 하다보니 충대(충남대)법대라고 하길래 충대법대처럼 생겼다고 했고 (양고은대표가) <왜요?>라고 반문하길래 당황해서 <법전 닮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근운회원은 당시 웃기려고 농담했지만 양고은대표는 난감해했다고 덧붙였다.

사회자는 <두번째 퀴즈다. 5년 희로애락이었을 거다. 나는 이래서 이사람과 산다를 짧게 적어달라.>고 주문했다. 박근운회원이 <이뻐서.>라고 하자 청중들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사회자는 바로 <더이상 안물어보겠다.>며 말을 끊어 참가자들이 즐거워했다. 양고은대표는 <뜻이 같고 항상 대화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박근운회원도 되받아 <첫번째 이뻐서, 두번째 씩씩해서.>라면서 <매력적이다.>라고 말해 또한번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회자가 <역시 여성의 답변이 좋다. 이뻐서도 이유지만 장점이 뭔지 얘기해달라.>고 했고 박근운회원은 <늘 씩씩하다.>고 짧게 말했다. 그러자 양고은대표는 <남편이 기억이 좋지 않다. 언제 좋아보이냐고 물어보니 <회의후 떡볶이 먹는 모습이 참해보였다>고 했다. <참한 게 뭔지 아냐>고 물으니 <박근운사전에는 씩씩하고 솔직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더라.>라고 박근운회원의 답변에 보충했다.

사회자가 <마지막 한 말씀.>을 주문하자 박근운회원은 <내가 농성단에 빠지게 되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농담이고, 열심히 싸워달라.>라고 했고 양고은대표는 <사회만 보다가 게스트로 참여해서 좋은 시간이었다. 농성이 쉽지 않은데 정당한 이싸움을 더욱 힘내서 잘싸우자.>고 말했다.

양고은·박근운부부가 <동지를 위하여>·<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함께 불러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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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생일축하행사와 오카리나연주 <아침이슬>

이날은 농성장을 자주 지지방문하는 한 대학생의 생일이라서 깜짝생일축하행사도 마련됐다. 생일축하로 21세기여성회 이지혜회원이 <아침이슬>을 오카리나로 연주해 큰박수를 받았다. 

1부를 마치며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을 합창했다. 

2부에 들어가기 전 <인턴스테파니>에서 <훈쌤>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상훈부단장에게 민중가요배우기시간이 이어졌다. 이상훈부단장이 직접 연주하는 기타반주에 맞춰 민중가요를 부르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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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엄경애회원을 다시 무대로 불러 후배들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엄경애회원과 코리아연대회원들과의 대화를 정리했다.
<연대사건>과 노동운동을 하게 된 계기

엄경애
보육교사를 하려고 배웠는데 잘 안맞더라. 출판사 다녔다가 이일저일 하다가. 보육교사 배우고 인천에서 취업을 하려고 노동하는 친구가 있어서 거기로 갔다. 친구를 처음 보러 갔는데 그때가 <연대항쟁>때였다. 친구가 범민족대회에 갔다 하루 자고 온다고 해서 친구와 연세대에 갔다. 하루 자고 괜찮았는데 다음날 이공대건물 실험실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최루액을 뿌려서 못나오고 들어갔다. 교실은 실험실이라 복도에 있었고. 옥상 사수대는 최루가스 범벅이고. 나올때는 어쨌든 병원쪽으로 해서 나오긴 했다. 그 후에 헬기소리가 트라우마처럼 생기고 그랬다. 시위때 헬기가 나오면 온몸이 오그라드는거 같았다.

한준혜
격하게 반갑다. 당시 연대에 있지 않은 사람은 운동권이 아니라고 할 정도. 그땐 개량이냐 아니냐의 기준처럼 된 분위기였다. 사실 좌경적이긴 했다. 개처럼 끌려서 잡히나 싸우다 잡히나였다. 싸웠어야 한다. 끌려가며 성추행당하고 충격을 받았고. 성폭력적인 것도 말도 못하고. 그리고 실형당하고. 하루 종합관에서 잤어요?

엄경애
벽에 지랄탄 쏘지, 사수대는 헬기 안보일때 나무그늘로 가면 헬기로 최루액 뿌리고. 케잌상자에 화염병 만들어넣고 치마입고 나르고 했다. (웃음)

한준혜
우리 <연대모임> 해요. (웃음) 그때 충청총련 아작났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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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심각한 분파패권의 문제

엄경애
인천지역에서 진보진영내 분파패권문제가 심각했는데 거기에서 겪었던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인천에 모든 단체가 들어있었는데 너무 심하니까 자기들만 남고 다 나갔다. 거의 없어진 거다. 인천간지 얼마 안돼 아이 낳고 몇명 모아서 활동하다가 강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깨졌다. 민주노동당 생겨 당에서 활동하다가. 우리청년단체도 막판에 조직사건 났다. 도청, 미행당했고. 난 탈퇴한 상태였는데 같이 감옥에 들어갔다. 결국 임신중이라 석방됐고 우리 남편이 들어갔다. 6개월 살고 집행유예로 나왔다. 남편은 지금 생계로 운동을 못한다. 노조상근하다가 그만두고 구의원 나오고 안되고 운동원들이 있어서 사람들 조직해 가게 하다가 계속 안됐다. 한번 구의원으로 나와서 민주노총 상근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더라. 

김정희
남편도 노동운동을 하였나요?

엄경애
<이적단체>로 될때 주물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인천이 노조가 있던 데가 남아난 데가 없었다. 큰 공장만 있었지 거의 없어지고 일반 노조조합원도 별로 없고. 이후 OOOO는 돈받는 곳으로 가거나 복지관·문화단체 만들고. OOOO가 통합진보당 장악했다. 인천은 워낙 큰 거 같아도 <쟨 어디다> 다 아니까 새로 발굴하지 않으면 할 게 없었다. 

김정희 
어떤 단체활동 하였나?

엄경애 
인천여성노동자회에서 죽 활동했다. 처음에는 우연치 않게 들어갔는데 여성노조 분리하기 전까지는 열심히 해서 젊은이들도 많았다. 점점 활동해가면서 노동단체인데 사단법인으로 해서 시위탁사업만 하고 회원모집도 많이 했다. 회원조직은 노조에서만 하고 <여성정책> 이런식으로 토론회위주로 했다. 점점 관성적으로 된 거다. 직업적으로. 새로운 사람 조직하지 않고 있는 사업만 하니까 회원도 줄어들었다. 사무국장을 했다.

김정희
코리아연대랑 어떻게 만났는지. 

엄경애
이상준대표를 남편후배라서 알고는 있었다. <코리아반도의 대전환기>논문집이랑 다 우리집에 있었고. <THE FRONT>도 계속 보내줘서 보고. 

후배
인천에서 많이 힘들었을거 같다. 동지들 없이 혼자 힘들었을 거 같다.

엄경애
처음 이사왔을 때 단체 들어오고 거기가 잘못되면서 끝판에 조직사건 터졌다.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는 데도 아니어서 고민이 생겼고 해봐야 프로젝트서류만 만들고 있고 지긋지긋해하는데 사건이 터졌다. 당활동을 하지 말던가, 단체를 나가던가 요구를 하길래, 정나미 떨어져서 나왔다. 나와서 생계활동을 하다가 코리아연대와 연을 맺게 됐다. 남편이 구의원 나오는 거 반대했는데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어진 거다. 힘든데 애한테 들어갈 돈은 많고 생활이 담보가 안되니까 갈등이 생긴다. 

김정희 
노조상근자는 월급받고 직장처럼 생활하는데. 동지들을 보면 자기시간 갖는 것도 없이 바쁘게 활동한다. 그걸 보는데 저렇게 하면 지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엄경애
개인생활과 활동을 경계없이 하니까…

한준혜
점심을 혼자 먹으면 불안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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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가와 <직업인>의 차이

엄경애
후배들 보면서 학생운동 할 때나 청년운동 할 때는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게 살았다. 낮에는 직장다니고 청년회로 퇴근해서 막차타고 집에 가고. 토·일 활동하고.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게 살았지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여기와 비교하면 기존의 단체들이 되게 <직업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훈
그런데서 많이 관료화되는 거 같다. 중앙은 현장순회가 없고, 열정과 패기도 없고, 회의상으로만 총파업 결의하고. 운동진영 어디가나 심하다. 

한준혜
주5일근무이후로 더 심해졌다. 토요일 집회에 안나온다.

엄경애
인천 3.8여성대회, 여성노동자대회 토요일에 하는데 요즘은 금요일에 한다. 시민단체 상근자들도 다 똑같은 거 같다.

김혜영
운동의 후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인천의 분열된 모습이 전체 운동판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 분파·패권에 물들지 않고 원칙적으로 살아온 모습이 존경스럽다. 참 험난한 과정을 거쳐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내공>이 있는 거 같다. 한마디 행동하나가 살아온 무게가 느껴진다. 앞으로도 진중하고 무겁게 한걸음한걸음 가지 않을까. 


언제나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강단있는

한준혜
농성장에서 지금 얘기 나눠보니 진흙속의 진주같다. 진주는 어디에 있어도 진주.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여성역사포럼 주석 단걸 보면서, 가랑비에 옷젖듯이 잔잔한 걸 보면서 <만만치 않구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성이 아니었다면 엄선배를 잘 알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코리아연대에서 경험많고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선배가 있는 게 뿌듯하다. 농성 끝나고 빨리 여성역사포럼 했으면 좋겠다. 선배가 강사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부탁드린다.(웃음)

김혜영
엄선배와의 자리가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후배들이 이야기한다. 선배한테 잔잔히 나오는 진심과 감동을 후배들도 느끼고 있다.

김정희
선배한테 더 많이 듣고 싶은 것도 많고. 오늘은 아주 일부만 들은 거 같아서. 힘든 지역에서 아이 키우고 운동했던 과정을 많이 듣고 싶다. 앞으로 많이 물어볼게요. 

엄경애
나도 그전에 제일 막내인 입장에서 9년, 10년을 해오니까 나보다 어린 후배들과 어울리는 게 어느순간 낯설기도 하다. 이렇게 돼야 서로에게 힘이 되고 활동을 책임감있게 하는 건데. 후배가 없으니까 그렇지 않았던 거 같다. 생활에 쫓기다 보니까 좀더 계획적으로 하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우연에 의해 이렇게 온 건데. 나이가 드니 선생님들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고. 어떤 모습으로 살까. 이런 고민들을 계속 해야할 거 같다.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준비고 능력인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이상훈
1인시위할 때 처음 봤는데. 대단히 원칙적이다. 많이 느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있는 <포스>를 그때 느꼈다. 

후배
이런 시간 생각 못했는데 선물을 받은 거 같다. 생소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격동의 시기에 있지 않아서, 선배님고민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같이 의논하면 시너지효과가 날 거 같다. 미리 경험한 선배가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하다.

양고은
엄선배님 처음 만났을때 기억난다. 젊은 대학생들 많은 자리에서 어색하고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임에도 미동도 없이 앉아계신 것을 보고 매우 조용하지만 강단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분의 저력은 대단하다고 본다. 그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자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김동관
엄선배는 항상 조용히 와있다, 자주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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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보내온 한편의 시 <깊은밤>

<별밤>4일째 2부행사도 새벽까지 이어졌다. 

<별밤>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에 진보노동자회경기지부 서화조대표가 농성단동지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를 한편 보내왔다.

깊은밤

밤은 깊고 거리는 텅비어 온 누리 고요한데
적막한 등불 아래 외로이 시정에 젖네
척박한 땅 애국의 단심 홀로 깨어서
12전사의 마음 물결에 화답하네.

2015년 3월31 신새벽에
농성단과 지지방문자들은 오늘도 기독교회관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지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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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
진보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