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 <어떻게>보다 앞선다. 기본적으로 <왜>가 더 중요하다. 때로 <어떻게>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건 언제나 <왜>의 중요성이 전제된 후다. <왜>가 없이 <어떻게>란 없다. 필요성이 없이 가능성이 나올 수 없다. 필요성은 자주성이고 가능성은 창조성이다. 자주적 요구에서 필요성 나오고 창조적 능력에서 가능성 나온다. 자주적 요구가 목적이고 창조적 능력은 수단·방법이다. 목적이 수단·방법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항쟁의 요인과 항쟁승리의 요인을 구별해봐야 한다. 항쟁요인은 본질에서 <왜>다. <왜>가 더 중요하다. 항쟁승리요인은 본질에서 <어떻게>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항쟁은 민중이 하지않을 수 없어 하는 거다. 떨쳐나서지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 때문에 생기는 거다. 항쟁에서 이길 수 있어야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3.1항쟁·4.3항쟁·여순봉기·부마항쟁·광주항쟁 다 승리가능성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그리고 승리하지않은 항쟁이라서 의의가 없는 게 아니다. 이런 항쟁의 밑거름속에서 이후 승리의 항쟁이 일어났다. 3.1항쟁을 계승혁신하며 항일전민항쟁 일어났다.

항쟁정세냐 아니냐는, 항쟁과 항쟁정세를 구별하고, 항쟁과 혁명을 구별하고, 북의 항쟁론과 남의 항쟁론을 구별하면 무엇이 옳은지 더욱 명백해진다. 여기에 항쟁요인과 항쟁승리요인을 구별하면 더더욱 명백해진다. 항쟁정세를 항쟁으로 착오하고, 항쟁을 혁명으로 착오하고, 남의 항쟁론을 북의 항쟁론으로 착오하고, 여기에 항쟁요인을 항쟁승리요인으로 착오하면서 항쟁정세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틀리지않을 수 있겠는가. 틀린 견해는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왜>를 말해야 할 때 <어떻게>를 말하며 항쟁정세가 아니라고 하는 건, 옳지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현정세가 민중의 항쟁준비를 최대한 다그치고 힘있게 추동해야 하고 항쟁정세 사이에 전쟁정세가 끼어있어 매우 민감하고 역동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중들에게 항쟁에 떨쳐나서야 한다고 호소해야 할 때, 항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항쟁에 떨쳐나설 때가 아니라고 역작용을 놀면 어떤 후과가 있겠는가. 더욱이 항쟁에 이길 수 없는 역량관계도 아니다. 박근혜하야를 시키는데는 충분한 힘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민중은 이보다 훨씬 부족한 역량으로도 여러번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지금은 민중의 힘을 믿고 민중에게 떨쳐나서야 하는 이유를 밝히며 절박하게 호소해야 할 때다. <왜>를 말할 때다.

조덕원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