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으로 숨진 노동자와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노동자가 법원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서울행정법원행정7단독은 고이윤정씨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삼성전자에 일하는 동안 벤젠, 포름알데히드, 납 등의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자기장, 주야간교대근무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기간 지속적이고 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질병이 발생했다>며 <이러한 질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두사람이 재직기간 주야교대근무를 하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이런 점이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쳐 질병발병이나 진행을 촉진한 원인으로 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근로복지공단의 의뢰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진행한 역학조사에 대해 일부 화학물질에 대한 조사만 했을 뿐, 배출가스와 검댕에 어떤 물질이 어떤 농도로 함유됐는지를 규명하려는 노력 없이 조사를 종결한 것에 대해 지적했다.

재판부는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이러한 사정은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함에 있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정황으로 참작함이 마땅하다>면서 <특정 화확물질과 질병 사이의 관련성이 아직 연구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관련성이 없다 또는 낮다는 판단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윤정씨는 고등학교3학녀때인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반도체조립라인의 검사공정에서 일하다가 6년2개월만인 2003년 퇴직했고, 2010년 뇌종양(교모세포종)을 진단받았다.

이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거절당하자 2011년 4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선고결과를 보지 못하고 2012년 5월 투병중 사망했고, 대신 이씨의 남편이 소송에 참여했다.

이씨와 같은 공장에서 3년간 일한 유명화씨는 입사1년만인 지난 2001년 혈액암의 일종인 <재생불량성 빈혈>을 진단받고 2003년 퇴직했다.

삼성일반노조(김성환위원장)는 성명을 통해 <서울행정법원의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환영한다>며 <삼성자본은 삼성직업성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인과관계를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이번 판결을 통해 현재 행정재판이 진행중인 천안 삼성전자LCD근무중 재생불량성빈혈로 발병 이후 13년간 수혈에 의존해 살아오다 사망한 고윤슬기씨와 2004년 발병해 10년이상을 장애로 고통속에 살고 있는 뇌종양피해여성노동자 한혜경씨를 포함한 많은 피해노동자들에 대한 행정재판에서도 당연한 산업재해 인정판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도 성명을 통해 <부실한 조사로 인한 불이익을 재해노동자에게 전가해왔던 문제까지 지적한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입증책임의 문제>와 <노동자 알권리>문제에 대해 법·제도적으로 올바른 해법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이상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과 피해가족들에 맞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국민들이 기대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정부의 역할은, 재해노동자에게 신속한 보상을 하고, 다시는 이런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반도체·LCD공장에서 뇌종양으로 걸렸다고(사망포함) 제보한 사람이 20여명에 이르고, 이중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5명이며,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진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