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 Focus> 닥터스테판6회는 5.18특집으로 역사를 통해서 코리아반도의 정세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21세기코리아연구소 조덕원소장은 “남코리아의 역사에서 광주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며 “초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소장은 광주민중항쟁의 두가지특징으로 “노동자민중의 해방구를 만들었다는 것”과 “노동자민중이 무장으로 봉기했다는 것”을 들며 이를 프랑스의 ‘파리꼬뮌’에 비유했다.
이어 “광주민중항쟁을 통해서 인텔리, 특히 청년학생들이 두가지를 크게 배웠다”며 하나는 “우리나라의 문제의 근원이 미국으로부터 생겼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도청을 끝까지 사수한 사람들이 노동자·빈민 등 기층민중이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특히 충격을 받은 인텔리들이 “인텔리출신으로 야학을 하다가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한 윤상원열사를 본으로 내세우면서 그길을 가겠다”며 “그래서 나온 노래가 <임을위한행진곡>”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시 인텔리들, 청년학생들이 반미자주의 각성, 노동운동지향의 각성을 했다”며 “이는 이후 남코리아진보운동의 바탕을 이루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자는 “5.18이라면 미군문제와 5.16·5.17군사쿠데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조소장은 “한마디로 군사쿠데타라고 하는 정통성이 없는 반민주적인 행위가 용납되는 것은 자주 없이는 민주가 없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미군문제, 외세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참다운 민주정권, 민중이 주인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그런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답했다.
계속해서 “4.19혁명도, 80년5월의봄도 미국이 배후조정하고 지지하는 박정희 5.16군사쿠데타와 전두환 5.17군사쿠데타로 좌절됐다”며 “미군이 어찌보면 ‘대북용’이 아니라 ‘대남용’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미군의 존재가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인가, 남에서의 민중항쟁을 막기 위한 것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조소장은 코리아반도의 당면정세를 분석하면서 1990년대이후의 북미대결전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해부했다.
먼저 “역사에서 시기구분이 정말 중요하다”며 북미대결전의 관점에서 최고리더와 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북의 입장에서 볼 때 “김일성주석의 서거,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서거가 가장 중요한 시기구분의 기준이 된다”고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김일성주석은 1994년 7월8일 세상을 떠났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2011년 12월17일 세상을 떠났는데 이른바 북미대결전에서 이 시기가 중요한 전환적 계기가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함께 활동했던 시절이 있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정은제1비서가 함께 했던 시기가 있다”며 김주석과 김국방위원장이 함께 활동했던 시기의 절정은 1993년과 1994년이고, 김국방위원장과 김제1비서가 함께 활동했던 시기는 2008년8월부터 2009년6월까지 진행된 10개월간의 북미대결전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자는 “두 북미대결전에 이어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북미대결전이 첨예하게 진행중”이라며, 세 북미대결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질문했다.
조소장은 이에 “한마디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다가 외교적 협상으로 급진전되고, 그렇게 합의가 이뤄지면 미국이 지키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고 답변했다. 
93·94년대결전에 대해서는 두번의 군사적 긴장 끝에 카터방북을 통해서 협상이 이뤄지는데 “북이 미래의 핵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구체적으로 흑연감속로를 동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경수로를 10년에 걸쳐지어주고 그에 걸맞는 정치외교관계를 맺었으나 미국이 이를 지키지 않아 98년 군사적 공세가 취해지고 미국이 페리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조소장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과연 94년 제네바합의를 믿었는가?”라고 물음을 던지며 유대자본이 2001년 9.11‘군사자작테러’를 벌이고 2003년 이라크를 점령하고 2006년 이란을 점령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한 북의 전략이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에 걸쳐서 이란을 중무장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지금 전세계에서 미국에 맞서 무장투쟁을 하는 나라는 북과 이란 뿐’이라며 ‘반제군사전선이 국제적인 반제전선의 주축이며 반제대중전선이 보조역량’이라고 해설했다.
이어 두번째 대결전인 2008·2009년대결전은 ‘총포성없는전쟁’이고, 2009년5월이후부터는 ‘보이지않는전쟁’이라고 그 시기를 구분했다.
‘총포성없는전쟁’은 말그대로 총포성이 없을 뿐이지 전쟁중인 상태를 뜻한다며 이라크전쟁직후 플루토늄재처리, 공개적 핵무장, 2006년7월 7발의 미사일, 그해10월 제1차핵시험 등이 ‘총포성없는전쟁’의 구체적인 징후들이라고 설명했다.
또 ‘UFO의 출현, 여러가지 기상이변, 백령도앞바다잠수함격침사건, 연평도포격전에서 벌어진 통신체계마비현상’ 등을 예로 들며 2009년5월이후를 ‘보이지않는전쟁’시기로 구분했다.
이 시기는 “보이지 않는 첨예한 전투들이 하늘위에서 바다속에서 벌어지는 시기”라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2012년, 2013년 계승·혁신되고 있다”고 전했다.
2008·2009년 대결전은 클린턴방북과 그해말 베이징에서 있었던 김양건·키신저의 회담을 통해 대화로 급진전 됐으며, 2013년은 뉴욕 또는 제네바 채널을 통한 조율을 예상하면서도 결정적이고 공개적인 회담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예상했다. 
한편 북미대결전의 두번째 공통점으로는 회담제의는 북이 아니고 미국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 세번째 공통점은 공개경로와 비공개경로가 배합돼서 진행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2009년 김정일국방위원장과 클린턴의 독대, 김양건비서와 키신저의 비밀회담, 2012년 4.7, 8.17비밀회담 등이 비공개경로를 말해주는 것이며, 여러 비공개경로를 통해 “북은 2안을 선택하느냐 3안을 관철하느냐의 기로에서 최종결심을 진행중”이라고 현정세를 분석했다.
끝으로 오늘의 화두였던 5.18의 교훈에 대해 “미국문제해결없이는 평화와 통일이 없다”며 “북미평화협정이든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든 합동군사연습이 없어지고 종국적으로 주남미군이 철수돼야 광주해방구와 같은 민중중심의 참된 정권이 수립된다”고 정리했다.
또 2013년 5.18을 맞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는 “인텔리들이 노동계급의 정신, 노동계급의 조직활동과 실천활동으로 무장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만이 중간층의 기회주의적인 나약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덕원소장은 “과연 코리아반도의 유사시 마치 광주에서처럼 끝까지 도청을 사수할 세력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를 그렇게 준비시키는 결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