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 1월6일 제정돼 내년 1월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한 해 내내 구설수에 오르고 진통을 겪었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중대산업재해법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발생한 재해로 시민이 숨지거나 다칠 경우>에 해당하는 중대시민재해법으로 구성되는데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중대산업재해법이다. 이를테면 지난 10년간 직업성・환경성 질환으로 폐암에 걸려 고통 받거나 숨진 급식실노동자가 확인된 것만 최소20명에서 진단자 189명으로, 이런 경우 지금까지는 산업재해를 인정을 받는데 그쳤다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는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자처벌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강하다. 무엇이 책임자처벌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지를 살펴봤다.
5인미만사업장은 제외 … 법적용대상기업 20%에 불과
무엇보다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에서 5인미만사업장은 아예 제외됐다는 점이 중대재해법의 큰 구멍이다. 앞서 사례를 든 급식실노동자의 근무지인 학교시설도 제외됐다. 또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현실은 산업재해피해자 3명 중 1명이 5인미만사업장 노동자다. 수백~수천kg의 힘을 발휘하는 압축기, 분쇄기 등에 노동자가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고 있지만 해당 사업장들은 모두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 되는 5인미만사업장이다. 근로기준법도 적용이 되지 않아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의 혜택을 받아야 할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허점은 <상시근로자>에도 있다. 상시근로자 50명 미만인 중소업체는 법적용 유예기간이 3년이다. 7월 한국일보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의 1년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로 분류된 사고 780건을 분석한 결과 원청410개, 하청148개 총558개 기업 중 중대재해법을 피하는 경우가 70%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들 558개 기업중 221개는 제조업종, 337개는 건설업종이었는데, 업종에 관계없이 상시근로자 5인미만기업이 137개로 25%에 달했다. 또 3년간 법적용이 유예되는 5인이상 49인이하 기업은 246개로 44%를 차지했다. 그러니 법적용을 받는 기업은 26%에 불과했다.
이 분석은 기업들이 하청, 도급을 늘리고 상시근로자는 4인 이하인 사업장으로 개편할 것이라는 예측을 낳는다. 예를 들어 배달대행업체가 관리직만 4명을 채용하고 플랫폼노동자 수백명에게 배달노동을 맡길 경우 어떤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중대재해법으로 처벌 받는 사람은 없게 된다. 법이 산업재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기업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실제로 2021년 상반기에만 고용・산업구조 재편으로 비정규직비율이 41%에서 43%로, 규모는 850만명에서 904만명으로 증가했다.
처벌 피하려 <바람막이부서> 만드는 기업들
기업이 중대재해법을 피하는 방법이 또 있다. 중대재해법 2조 9항에 따르면 기업최고경영자가 <안전보건업무담당자>에게 전속 권한을 주고 그 업무를 맡기는 형식을 갖추게 되면 책임까지 넘어간다. 처벌대상인 책임자가 바뀌는 것이다. 이에 단독대표이사체제를 취하던 기업들이 정관까지 수정해 여러 명의 <각자대표체제>로 경영구조를 바꾸고 이들 <각자대표> 중 안전에 전권을 가진 이를 별도로 정해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O>, <최고안전관리책임자>등의 직위를 부여하고 있다. 사고를 책임질 바람막이임원을 세우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부처에서도 전담조직을 구성했다. 공무직노동자가 중대재해를 당할 경우 장관이 1년 이상 징역 등의 형사처벌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 주무부처인 고용부가 가장 먼저 바람막이부서를 설치했다. 고용부는 12월 본부운영지원과 소속으로 안전보건계를 설치하고 직원3명을 배치했다. 이어 삼성물산이 안전보건실, 건설안전연구소, 안전보건자문위원회를 신설했고 포스코건설이 안전보건센터를 확대하고 담당임원을 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현대건설은 300명 규모의 안전관리본부를 신설하고 대우건설은 안전혁신본부를 구성해 규모를 확대했다. 호반건설도 부사장을 신설직 CSO로 선임했다.
뒷문이 된 안전경영예산・안정성평가
불완전한 중대재해법에서 안전경영예산, 안정성평가는 기업에게 또 다른 출구다. 중대재해법은 <법이 명시한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처벌하도록 했다.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이 후속 노치에 노력을 들일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법이 명시한 의무>, 기업의 노력에 관한 기준조차 모호하다. 또한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구축의무에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시설・장비를 갖추는 데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도록 했으나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사례도 없다. 이에 기업 임원들은 대형로펌의 문을 두드리고 대형로펌출신을 영입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에 관한 법률다툼에 들어갔을 때 돈과 인맥을 쥐고 힘 있는 기업들이 재해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피해갈 수단이 너무 많다.
사업장을 어떤 형태로든 5인미만으로 쪼개고, 다양한 방법으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는 최고경영자는 중대재해법에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봐도 좋다. 중대재해법 제정 1년, 기업들은 법률에 의한 실질적 재해방지가 아니라 처벌회피에 집중했다. 6월 출범한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중대재해예방과 감독을 위한 정부내 컨트롤타워를 자임했다. 권기섭본부장은 <사업주들이 처벌을 모면하고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체계구축이 아니라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해주면 좋겠다>면서도 지속적으로 지적된 중대재해법의 허점에 대해 <5인미만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스스로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원이나 컨설팅을 하는 게 정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느냐>,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처벌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해 해결여지에 의문을 낳았다.
제정 1년, 달라진 것 없는 노동현장
노동자・실업노동자들에겐 어떨까? 현장의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 노동자들을 만나는 노동조합에서는 <현장노동자들이 아예 체감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안전보건관리>들의 명찰을 단 감시직이 5배 이상 늘어서 노동조건이 안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사고가 나면 이제 책임소재규명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환경확인이 요구된다. 방법은 CCTV밖에 없다. 그동안 사무실이나 노동현장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로 받아들여졌으나 중대재해법 제정 후 기업들은 CCTV를 설치했다. 실업노동자들은 취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력서에 병력증명칸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가족력, 질환이 있는 경우 취업이 안 된다. 속이면 해고사유가 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올 1월부터 11월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790명으로 지난 해 815명에 비해 25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건설업에서는 3분기 59명이 사망해 오히려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총 산업재해자는 10만8379명, 이중 사망자는 2062명으로 이는 매일 300명이 다치고 6명이 죽었다는 의미다. 그러니 현장노동자들이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노동자를 압박하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중대재해법이 정작 노동자는 혜택받지 못하는 <무늬만 법안>이 되는 데 대해 김용균청년비정규직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는 날마다 절규하고 있다. <더 이상 죽지 않게 만들어주세요. 실수한다고 해서 사람 죽으면 안 되잖아요.>
단협斷約이 되는 단체협약 … 하청은 늘어날텐데
중대재해법이 1월6일 제정될 당시에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취지에서 하도급업체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과 경영책임자도 처벌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원청이 하청의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돼 실질적인 책임범위가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원청기업들은 때마다 하도급의 간판을 갈아 치우며 노동법의 법망을 피하고 있으니 중대재해법에 거는 기대가 식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하도급의 간판을 갈아치우는 것은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화하는 방법 중 유명한 하나다. 현장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쟁취한 임금인상, 처우개선 등의 단체협약이 하청업체를 바꾸는 순간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현장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원청이 아니라 하청을 상대로 싸우지만 그 <어쩔 수 없음>에 싸움의 성과가 단절되니 모든 형태의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투쟁으로의 발전은 당연하다.
중대재해법 제정 1년, 처벌회피만을 노리는 기업들의 기만적인 조치들, 오히려 악화된 고용불안과 고위험・고강도노동에 신음하는 노동자들. 불완전한 법안으로는 예방도 치료도 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한 눈에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법의 큰 의의는 책임자처벌을 명문화한 첫 번째 법안이라는 데 있다. 일터에서 사고로 죽은 노동자에 대한 법적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책임자는 최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징역과 벌금이 동시에 부과될 수 있다.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한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재해를 방지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으로 완성될 여지가 있음에 중대재해법이 받는 기대는 하청・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민중중심의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들의 염원과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