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을 질투하는 봄비가 사뿐사분 내린다.
‘추위야 벌써 4월인데 뭐하는거니? 어여 가렴, 내년에 보자구.’
‘뭐? 난 아직 갈 때가 아니라구!’
밀고 당기기라도 하는 듯 슬그머니 꽃샘추위를 밀쳐내는 모습치곤 그리 볼성사납진 않다. 미처 목욕을 못한 자동차들은 곳곳에 얼룩도 지긴 했어도 간만에 약식샤워를 하게 돼 그런지 썩 시원해하는 거 같다.
곡우, 아니 장애인의 날인 4월20일이다.
오전 반전평화실천활동을 마친후 오후1시30분 서대문근로자복지센터 3층 교육장에서 21세기서울경기여성회 출범식이 열렸다.
비를 피하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마냥 저마다 안부를 묻고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를 나누느라 “호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경기지역 대표를 맡은 이희영선생은 다소 긴장한 듯 차분히 식순자료집을 넘겨본다. 나란히 앉은 반명자전민주노총부위원장은 즐겁게 인사도 나누면서도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며 스마트폰을 ‘터치’하느라 바쁘다.
이날 ‘글로 내 삶을 이야기하기’라는 주제로 함께하는 강의를 맡은 르뽀작가 박수정작가도 새로운 얼굴들과의 인사를 마치고는 맨앞자리에 앉아 원고도 넘겨보면서 이내 사색에 잠겨있다.
사회를 맡은 서울희망청년연대회원인 양고은씨는 “오늘 여성회회원이 됐다”면서도 이날 사회를 맡게 된 뿌듯함과 설렘에 얼굴이 약간 상기된 듯했다. 옆에 앉은 김효은회원도 언니를 놀려먹느라 “하하- 호호호-” 정신이 없다.
진보노동자회서울지부 김병동대표는 얼마 없는 ‘남성’참가자라 그런지 반전부위원장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자릴 지킨다.
1부는 강연회.
참가자 인사와 소개를 한뒤 박수정작가의 ‘글로 내 삶을 이야기하기’ 강의가 시작됐다.
두 지체장애인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작가가 하는 글쓰기강의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두 장애인. 1명은 너무 힘들어했고, 다른 1명은 찾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도 꼭 들으러 온다고 했다.
글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란다.
한달에 한번 먼길을 찾아 들으러 온단다.
강의가 진행되면서 작가도 장애인이동권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달 한 장애인수강생이 써온 글은 ‘장애인과 반려견’. 실은 제목이 ‘나는 개 엄마입니다’란다.
어느날 장애인이동권투쟁을 하는 천막농성장에 유기견이 찾아와 같이 지내다가 농성이 끝나자 갈곳없는 녀석을 이친구가 직접 키우겠다 했단다.
사람들은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많았다 한다. 장애인이 자기몸 챙기기도 만만치 않은데.
그는 자기 자식같고, 소외된 자신에게 반려견이 오히려 필요하고, 장애인이 키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글로 썼다고 했다.
작가는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고 한다.
작가는 글을 통해 서로 알아가고 평등해질 거라 믿는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쉽게 나누기는 어렵지만 글로 써서 나눈다면 더 잘 통한다고 믿는단다.
또 한가지 이야기.
글을 쓰는 건 한 세상이 열리는 것. 아직도 사회 어느곳에는 배우지 못한 분들, 글을 모르는 분들이 있고, 가난과 소외란 말보다 훨씬 심각한 현실이 있다고 했다.
브라질땅없는노동자들의운동(MST)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70년대 후반, 80년대 농업노동자들이 땅을 점거해 농사를 지었다. 농장주들은 총을 쏴 죽이기도 했고 헬리곱터로 농약을 치고 그랬다.
현장을 가보면 꼭 학교가 하나씩 있었다. 2군데 북부 더운지역 정착촌에 방문한 일이 있는데, 2군데 모두 학교가 있었다 한다. 비닐천막으로 맨 처음 짓는 것이 학교. 낮엔 아이들이, 밤엔 어른들이 교육을 받는다.
어른들이 옷 깨끗하게 입고 밤에 가서 공부를 하는 거다.
글씨 읽는 연습을 하는 노인, 나무등걸에 걸터앉아 자기이름을 쓰며 연습하는 남자, 집안에서 자기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
자신이 경험한 바로는 그운동에서 제일 중요하게 해석한 게 바로 교육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다.
그운동본부가 상파울로에 있는데, MST본부에서 펴낸 책들이 거기 있었는데 교육하는 책이 아주 많았다. 운동하는 이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교육, 그래서 작가는 ‘아름다운 모습’이라 느꼈다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민중의 역사들을 보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면 좋겠고, 평범한 우리들이 글을 써서 세상을 드러내야 하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그가 남미를 가서 본 건, 어느집 한켠에 소박하게 꾸며져 있는 민중방송국(라디오, TV)에 ‘누구나 외쳐라’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작가는 여성회 모임을 하며 자기 생활도 드러내고 나누는 글쓰기를 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내삶을 내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고, 내삶을 쓰다보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 선생님이 본다는 생각에 일기를 썼고 끝에 ‘참 좋았다’라고 마치곤 했다며 “언제 우리가 한번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았나”고 반문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곰곰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글을 솔직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하고 싶은 말이 글에 있는가, 솔직한가,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해보잔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걸 대개는 원하는 게 사실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고 써놓은 어린아이의 이야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를 칭찬하고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걸 보며 참 훌륭하다고 느꼈단다.
꾸준히 매일매일 고치고 읽어보고 또 고치면 잘 쓰게 되는 거 같다고 말했다.
글 잘쓰는 방법중에 하나는 ‘관찰하기’란다.
뭔가를 보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느순간 더 깊게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생각을 하다보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게 된다는 거다.
이번에 낸 ‘여자노동을 말하다’ 책에 작가의 집에서 문을 열면 보이는 긴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썼단다.
비오는날 일을 ‘공치고’ 다시 들어오는 일용직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단다.
작가는 집회현장에 연대하러 갈때도 그 모습, 공간이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게 있을 거고 그 자그마한 진실을 들여다보라고 말해준다.
무엇을 말해주는가, 내가 한번 곰곰히 찾아가보는 자세를 견지하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강조한다.
이어 작가와 함께 직접 ‘글감’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 내가 좋아하는 것, 즐기는 일
2) 내게 필요한 것
3) 내게 소중한 사람
4) 내게 소중한 사물, 생각
5) 내가 기쁠 때
6) 내가 슬플 때
7) 내가 화날 때, 속상했던 때
8) 내가 했던 일, 지금 하는 일
9)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어떤 일, 생각, 사람
10) 하고싶은 일
11) 관심가는 문제, 더 알아보고 싶은 어떤 것
12) 내가 머물렀던 장소, 거쳤던 장소, 가고싶은 곳
13) 세상에 하고싶은 말,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사람들은 저마다 적은 것들을 수줍게 발표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들 자신을 돌아보고 글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발표한 그 이야기들, 물건들, 사건들이 곧 글감이 되는 거고 그거에 대해 쓰면 글이 되는 거란다.
글이 진짜 힘을 가질 때는 글이 나를 약간은 쓰다듬어주는 시간이 될 때라고 한다. 어떻게 써야하지? 라고 하면 안되고 그냥 낙서하듯 쓰라고 한다.
이렇게 하다보니 가까운 사람이라도 뭘 좋아하지? 뭘 싫어하지? 이런 걸 모르는데 발표하면서 알게 되지 않느냐며 여성회하면서 새로 알게 된 걸 서로 챙겨주자고 제안했다.
발표한 글감들에 대한 글을 언제 꼭 써보는 게 중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극단적으로 발생한 사건들 말고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글로 자세히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노동자 스스로 남기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후배들도 거기서 배우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눌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기차를 타고 멀리서 올라온 충남성평등교육문화센터 김정희대표는 “내게 필요한 건 마음의 여유, 용기와 자신감, 돈, 공부이고 소중한 사람은 비슷하지만 가족과 동지들”이란다.
또 아이들에게 화내고 돌아서면 슬프고 후회되고 그런단다.
자신에게는 “용기를 내고 여러가지 한계와 극복해야 할 것 많은데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는 ‘충남여성1호’를 우편물로 받아보고는 굉장히 따뜻했다고 말했다. 한꼭지한꼭지가 길지도 않은데 그사람에 대해 잘 알게 해주고. 글들이 참 좋다고 직접 김정희대표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고.
나중에 서울경기여성회에서도 꼭 이렇게 여성들의 글모음집을 냈으면 한다고 말한다.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신현준학생의 말에 작가는 “큰 무슨 행사가 아니더라도 회원들끼리 별을 보러 가는 거에요. 숲도 만나고 나무도 만나고 별을 보러 가는 거죠.”
나영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