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15만4000볼트가 흐르는 송전탑에 몸을 맡긴채 145일째 목숨건 투쟁을 벌여오는 두노동자가 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자 최병승, 천의봉.
이들의 요구는 “법대로 해달라”는 것. 법이 이기지 못하고 법위에 군림하는 현대차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로 송전탑에 올랐다.
이들이 말하는 ‘법’은 대법원이 판결한대로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것이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2004년부터 그 불법성이 인정됐다.
2004년 9~12월 노동부는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127개업체 9234개 공정에서 일한 1만여명의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을 판정했다.
이후 2010년 7월 대법원, 2010년 11월 서울고등법원, 2012년 2월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불법파견이 여러차례 확인됐다.
2010년 7월 당시 비정규직지회 최병승조합원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제심에서 대법원은 △현대차와 도급계약이 체결된 사내하청노동자의 생산작업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으로 진행되는 점 △현대차소유의 시설·부품을 사용해 현대자동차가 교부한 각종 작업지시서에 의해 업무를 수행한 점 △현대차가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작업배치와 변경결정권을 갖고 있는 점 △현대차가 노동·휴게시간, 근무교대·작업속도를 결정한다는 점 △현대차가 사내하청노동자의 근태·인원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서울고법파기환송을 결정했다.
2010년 11월 서울고법에서는 아산공장 의장·차체·엔진·엔진서브 등 다양한 공정에서 일한 사내하청노동자 4명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을 판결했다.
2012년 2월 대법원은 “사내협력업체들과 피고(현대차)는 이사건에 대한 업무도급계약상 실질적으로는 사내협력업체들이 그 소속근로자들을 피고(현대차)에게 파견하여 피고(현대차)의 지휘·감독을 받게 하는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며 재차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판시했다.
사내하청은 원청업체와 사내하청업체가 도급계약을 맺고 사내하청노동자가 원청사업장내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원청업체가 사내하청노동자에게 지휘·명령을 할 수 없는 등 하청업체가 독립적이어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파견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한번도 사측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비정규직지회의 교섭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2003년 결성된 현대차비정규지회는 2010년 6월10일 사측에 임금·단체협상을 위한 공동교섭을 요구했으나 현대차는 교섭에 나오지 않았고, 그해 9월29일 현대차에 특별교섭을 요구했으나 역시 응하지 않았다.
이에 울산지회는 11월11~12일 쟁의행위찬반투표를 진행, 90%이상 찬성으로 11월15일 울산공장점거농성에 들어가며 파업에 돌입했고 아산과 전주 공장으로 확산됐다.
사측은 볼트, 너트 등 자재로 무장한 용역들을 동원해 폭력을 일삼아 120여명의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포크레인을 동원, 농성장을 침탈하는 등 비정규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을 폭력으로 대응했다.
뿐만아니라 경찰이 개입한 정황도 포착됐다.
파업당일인 11월15일 노조가 입수한 ‘현대차시트사업부동성기업폐업관련경비대책’문건에 의하면 이문건은 현대차가 13일 시설보호요청서를 접수하자마자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경찰이 비정규조합원들이 1·2·3공장 등 각 사업부별 순환파업 등 투쟁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해 ‘사측 관리직·경비원동원 자체경비를 강화촉구’하는 한편 ‘사소한 불법행위라도 초기에 단호히 법집행, 집단적인 행위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돼 있다.
특히 박재완노동부장관은 12월1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비정규직파업과 금속노조의 지지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면서 사측의 노조탄압에 일조했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자가 분신하는 등 25일동안 완강하게 투쟁해 비정규지회, 정규직지부, 금속노조는 현대차와 첫 대화창구를 열고 주1회 본교섭과 실무교섭을 병행하기로 합의를 이끌어냈고 이에따라 점거농성을 해제했다.
그러나 현대차와 정권은 비정규지회를 파괴하기 위한 행태를 서슴없이 벌인다.
지회장을 비롯 조합원 90여명의 월급통장을 가압류했고 지회간부·조합원 98명 고소고발, 간부 17명 대상 3억000만원 손해배상청구에 이은 3개사내하청업체의 635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경찰은 노조간부 21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 등으로 비정규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행태를 입을 맞춘듯이 벌였다.
현대차가 2010년 11월부터 12차례에 걸쳐 비정규조합원 530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액이 179억원이나 되고 그동안 구속된 지회간부만도 20여명이다.
현대차는 비정규노조가 파업을 단행할 때마다 용역을 동원한 폭력를 행사하고 노조를 감시사찰하며 노조파괴를 일삼았다.
2012년 11월28일 지회가 공개한 문건에 의하면 2008년 9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지회의 집회동향, 조합원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 지회간부들의 병원입퇴원기록 등이 상세히 나와 있었고 비정규지회뿐아니라 정규직노조, 현장활동가 등에 대한 감시기록도 있었다.
2012년 2월 대법원의 불법파견판결이후 현대차불법파견특별교섭이 진행돼 비정규직문제가 풀리는 듯했지만 난항이 거듭된다.
2012년 5월15일부터 8월21일까지 8차례 진행된 특별교섭에서 비정규직3지회(울산·아산·전주)는 △사내하청에 노동하는 모든 노동자 전원 정규직전환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고소·고발·징계·해고·손배가압류 등 즉각 철회 △현대차의 대국민사과 △비정규노동자 추가사용금지 △구조조정중단 △노조활동보장 등 원하청의 6대공동요구안을 제시하지만 사측은 공정블록화를 통한 진성도급을 말하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사측은 8월16일 교섭에서 최종안으로 ‘2015년까지 3000명 단계적 신규채용, 우선 2012년 1000여명을 우선 채용’한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3지회는 ‘쓰레기안’이라며 거부했다.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현대차의 3000명 신규채용안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민주당(민주통합당) 은수미의원은 “대법원판단기준에 현저히 미달한 것”이며 “실질적인 대상은 7000명”이라고 지적했다.
은의원에 의하면 현대차의 사내하청규모는 울산7073명, 전주930명, 아산1007명으로 각 지역노동위원회가 인정한 불법파견인정률(부산지노위44.8%, 전북지노위69.9%, 충남지노위87.6%)을 대입해보면 총 4701명이 되고 평균 67%를 적용하면 6075명까지 된다.
진정당(진보정의당) 심상정의원은 “현대차비정규직문제해결을 위해 순수익의 6%만으로도 가능하다”며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3000여명의 신규채용계획을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심의원에 따르면 현대차의 2011년 순수익은 4조7000억원으로 금속노조가 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의 정규직전환비용을 산출한 결과 비정규노동자8270명의 정규직화를 위해 연간2895억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법파견특별교섭이 난항이 거듭되고 해법이 보이지 않자 최병승, 천의봉 두노동자는 2010년 10월17일 죽음을 각오한 고공농성을 선택한다.
이와중에 현대차는 전체비정규직노동자의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최조합원개인에 대해서만 정규직 안사발령을 내고 ‘2016년까지 3500명 단계적 신규채용’을 발표하고 실행한다.
최병승은 “2005년 당시 비정규직해고자들이 많았지만 소송비용이 부족해 내가 대표소송에 나선 것”이라며 “대법원은 나혼자가 아니라 현대차생산공정을 불법파견이라고 봤다”며 사측의 인사발령에 아랑곳 않고 계속 농성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지회는 사측의 신규채용에 대해 “대법이 판결한 정규직화와 기소가 불가피한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정규직이 퇴직하는 자리를 메꾸는 것에 불과”하다며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현재 교섭은 중단된 상태며 송전탑고공농성이 4개월에 이르고 있지만 희망은 싹트고 있다.
최병승, 천의봉 두노동자가 송전탑에 올라간이후 노동계를 비롯 각계각층에서 기자회견, 2차례희망버스, ‘1~3차현대차포위의날’진행 등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규탄하고 비정규문제해결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작년 11월 진보당(통합진보당)은 △구제명령불이행시 징벌적 이행강제금부과 △이행강제금불이행시 감치명령도입 △확정된 구제명령불이행시 형사처벌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최병승법’ 추진을 밝혔다.
최근 한국지엠(구GM대우)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과 이마트의 불법파견문제도 현대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병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투쟁한다면 언젠가 동료들과 같이 기쁨을 나눌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사전에 ‘포기’란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거다.
김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