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태풍 볼라벤이 우리나라를 덮쳤습니다. 온통 난립니다. 초대형태풍의 위력이 대단하고 언론의 호들갑도 대단합니다. 뉴스로 실시간 상황을 지켜보래서 열심히 들여다보는데 강풍 때문인지 TV도 멈췄습니다. 이렇게 쓸어갈 거면 온갖 나쁜 놈들을 싹 쓸어갔으면 하는 식상한 생각을 합니다. 집권기간 민주노조말살정책으로 일관해온 이명박정권, 현대재벌을 비롯한 탐욕스러운 재벌들, 그 재벌들에게 기생해서 사는 유성기업같은 자본들, 노조파괴전문가 창조컨설팅, 용역깡패 컨택터스까지. 싹 쓸어갔으면 합니다. 식상하고 식상한 생각입니다만 상상만으로도 통쾌합니다.

 

환윤이형. 잘 계시나요?

 

형께 편지 처음 씁니다. 워낙 구속된 동지들에게 편지를 잘 쓰지 않습니다. 써보려고 하다가도 인사말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관두곤 합니다. 영어의 몸으로 잘 계실 리 만무한데 “잘 계시냐?”고 묻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잘 못 계시지요?” 하고 묻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모순덩어립니다. 인사말도 모순덩어리고 이 사회도 모순덩어립니다. 이렇게나마 변명해봅니다. 형, 무심한 저를 욕해주세요.

 

유행가 제목처럼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1년하고 달포가 더 지났지요. 최근엔 면회도 못했습니다. 천안에 계실 땐 거의 매주 뵀고, 충주에 계실 때도 몇 번 찾아뵀는데 안동으로 가시고는 뵙질 못했네요. 형 소식은 계속 접합니다. 6월말에 보내온 편지도 충남본부 홈페이지에서 봤습니다. 편지에서 ‘우리는 충청도에 있지 못하고 먼 곳으로 유배를 간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지만 자꾸만 먼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더군요. 그 구절보고 꼭 편지해야지, 면회 가야지 해놓고선 계속 못했습니다. 죄송해요 형.

 

그 편지보고 울컥했습니다. 형 시계가 작년 6월에 멈춘 것 같다고, 시계가 돌아가려면 유성사장이 죄를 짓지 말고 27명의 부당해고노동자들을 원직복직시켜야 한다고, 유성조합원과 가족에게 사죄를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그러면서 오랜 시간 투쟁하는 동지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사실은 형이 제일 힘들고 괴로울 텐데, 다른 사람 걱정만 하고. 옥선누나는 맨날 형을 두고 영감님이라고 했는데 맞는 것 같아요.

 

개놈들이 직장폐쇄하고 싸움 나고, 상경투쟁 갔던 동지들 급히 내려오고, 충남본부깃발과 금속충남깃발 앞세우고 끝없이 밀려들어오던 연대대오. 맞이하는 동지들, 들어오는 동지들 모두 뜨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상기된 채 사회를 보던 형의 모습과, 함께 동지가를 불렀던 5월18일을 잊지 못합니다.

 

동지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팟케스트방송 ‘나는꼼수다’를 듣다보면 걔들이 의리가 있습니다. BBK사건 때문에 구속된 정봉주석방운동을 아주 대대적으로, 참신한 방법으로 벌이더라구요. 봉주노래자랑, 봉주열차, 봉주마라톤에 이어 이번엔 취중봉담-맥주파티까지 개최했습니다. 개최한 행사마다 소위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그만큼 대중들 호응이 좋았습니다. 정봉주씨가 설사 형기 내에 나오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의리가 대단하고, 본인도 아마 흡족할 겁니다.

 

정봉주씨는 억울하게 갇힌 만큼 꼭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봉주석방운동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안 좋습니다. 정봉주씨야 1년이지만 우리 환윤이형이랑 신기철지부장님은 3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개최하는 행사나 투쟁은 의도적인 방해 속에서 늘 조촐하게 진행되니까요. 자격지심인가 봐요. 사람들이 “정봉주나와라!” 할 때마다, 전 속으로 “정환윤나와라!” 한답니다.

 

구속된 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다하는 문제. 그 동지들이 바라는 것을 열심히 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형이 안에서도 늘 걱정하는 유성동지들 투쟁에 더 연대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연대라는 게 만족스러운 수준이 어딨겠습니까만 한다고 하면서도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형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옥선누나 사업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맘 먹었습니다. 그래서 겨울, 봄까지 건설출투에 꼬박꼬박 나가려고 했죠. 그게 형에 대한 의리라 생각했어요. 못 일어나서 못나가고 딴 일 때문에 못나가기도 했습니다만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칭찬해주실 거죠? 사실 한겨울에 건설선전 나가면 기분 별롭니다. 새벽 다섯시반, 여섯시에 보이는 것도 없고, 귀랑 발가락이랑 손이랑은 떨어져나갈 것 같고,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우릴 썩 반겨주는 것도 아닌데.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상쾌하고 뭐 그렇다는 거 다 거짓말이고, 암튼 검나 춥고, 하루도 검나 길어서 오후 되면 졸리고 그래요ㅎㅎㅎ. 그런데도 옥선누나는 늘 대단합니다. 씩씩하고 끈질기고, 힘들 법도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모범적으로 하시죠. 그럴 때마다 형 생각이 나고 참 멋쟁이부부입니다.

 

2월. 옥선누나 어머님 돌아가시고 형 잠깐 나왔을 때, 다들 막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방효훈동지가 그랬던 거 같은데, 너무 작위적이라 3류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을 사연이 우리에게 벌어졌다고, 동지부모가 돌아가셔서 분명 슬픈데, 그 덕에 동지가 이틀이라도 밖에 나와서 손이라도 만져볼 수 있으니 반갑다고 해야 할지, 동지들조차 그러한데 당사자들인 부부는 오죽하겠느냐고……. 그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 이렇게 부조리한 사회, 반드시 갈아엎자고 결심했더랬죠.

 

처음 편지쓰면서 너무 과거 얘기만 합니다. 날씨 탓인가봐요ㅎㅎㅎ. 밖에 이야기는 잘 알고 계시죠? 면회하는 동지들에게도 들으실 테고. 우리 지역노조동지들은 잘 지냅니다. 무기계약직 조직사업은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산을 조직하고 있는데, 노사협의회 하던 사람이 자체조노란 이름으로 어용노조를 만들어서 우리랑 대립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충남본부가 아산에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꼭 잘 돼야 하는데 현재로는 쉽지만은 않습니다. 프럼파스트랑 정산생명공학 동지들은 지금도 투쟁중입니다. 프럼파스트지부장님은 여전히 해고중이고, 이번주부터 천막농성을 할 예정입니다. 대표이사 집 앞 1인시위, 전면파업 등을 배합하면서 투쟁수위를 높이기로 했습니다. 정산생명공학은 노동부중재로 교섭을 했습니다만 최종 결렬돼서 다시 투쟁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 총파업이 있는데 29일에 온양역에서 충남본부차원 집중집회가 있고, 30일에는 시군지역위원회 주최로 촛불문화제를 하기로 했습니다. 31일에는 대규모 상경집회를 하기로 했구요.

 

한화 한대화감독이 경질됐어요. 거기서도 야구랑 보시는지. 형 야구장 좋아하셨던 거 같은데, 나오시면 제가 대전 홈 3연전 쏘겠습니다. 그나저나 현진이는 얼른 한화를 떠나야 할 거 같구요. ㅋㅋㅋ

 

형님, 몸 관리랑 잘 하시고 조만간 면회 갈게요. 편지도 또 할게요. 늘 고맙고 죄송하고, 형이 자랑스럽습니다. 형님 사랑합니다.

 

 

8월28일. 아산에서 지역노조 영하가 보냅니다.

 

 

* 정환윤동지는 민주노총충남본부 조직부장으로 작년(2011년) 유성기업투쟁 건으로 구속되어 3년형을 받았고, 현재 경북 안동교도소에 있습니다. 정환윤동지를 응원해주십시오.

 

주소: 경북 안동우체국 사서함 171호 안동교도소 545번 정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