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의 이합집산이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화됐던 이 흐름은 다수노동자민중들에게 잠깐의 환호와 장시간의 절망과 분노를 안겨준 채 여전히 진행중이다. 2008년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진보진영은 진보대통합을 열망하는 기층의 목소리를 받아안고 본격적인 통합논의를 진행했다. 장구한 논의끝에 진보당(통합진보당)건설을 합의했으나 이상하게도 다수의 노동자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되지 못했다.
진보대통합에 다양한 시각차가 존재했지만 분명 다수노동자대중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선통합, 또는 사회당까지 포괄하는 진보3당의 선통합을 주장했다. 국민참여당합류문제는 의견이 크게 엇갈렸으나 대체로 진보3당 선통합후 논의해볼 수 있다는 데는 합의했다. 그러나 정작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논의가 더 활발했고,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 진보신당은 사회당과 통합하고 말았다.
2012년 4월총선이 끝나고 진보당의 분화가 시작됐다. 심각한 우여곡절끝에 진보진영에는 진보당, 진보신당, 새진보정당이라는 세개의 진보정당이 만들어졌다. 또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내려는 좌파단체연합이 있고, 노동자민중의 단일대선후보를 추대하자는 연석회의까지 만들어져서, 현재 크게 다섯개의 흐름이 존재한다.
1997년 국민승리21의 성과를 계승하여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와 총의를 모아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전투적노조주의(생디칼리즘)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교훈이기도 했다. 우리 목소리를 내줄 국회의원 한명 만들어보자고 했던 민주노동당은 2004년 10석을 차지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스스로 평가하듯 언제부터인가 민주노동당에 진보정치를 위탁했다. 필자는 정파가 진보정치를 강탈했다고 보는데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위탁을 했든 누군가 강탈을 했든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운동에서 멀어진 것은 자명하다.
2008년 시련을 겪으며 노동자들은 진보정당운동에서 더 멀어졌다. 2011년 통합논의가 뜻대로 되지 않자 일부는 희망이 없다고, 일부는 자기 의견대로 되지 않는다고 떨어져나갔다. 그러다가 올해 진보당의 내홍이 불거지자 대거 이탈자가 발생했다. 부정선거논란으로 멀어지고, 혁신실패로 더 멀어졌다. 노동자들속엔 예언가가 생겼다. 앞서나간 사람은 새로운 사건이 벌어져 혼란이 일어날 때마다 한마디씩 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진보진영에 다섯개의 흐름이 있지만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들, 활동가들이 많이 있다. 그 동지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여전히 진보정당운동노선을 지지한다. 물론 현 상태로는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처음은 어디이며 어떻게 처음으로 돌아가겠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없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기를 바라는 예언가들은 진보당이 최종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떼기 기다리며, 팔짱을 지른 채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진보정치를 위탁했다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현 상황을 두고 방관하는 것은 모순이다. 현재 흐름중 맞는 의견이 없다면 새로운 흐름이라도 내와서 진보정당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노동자대중의 바람은 명확한데 그 바람을 실현해줄 주체들이 실망감, 절망감, 무기력에 방관하고 있을 때, 정파들은 페이퍼당원을 조직해서 자기 몸집을 불렸고, 당권을 장악했고, 자기 입맛대로 당을 좌지우지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런 악순환이 분당을 낳았고, 진보대통합이 아닌 참여당과의 밀애를 낳았고, 당내 부정선거를 낳았고, 또 다른 분당을 낳았다. 정파의 패권과 만행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정작 정파가 진보당을 뒤흔들 때 그에 대항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방관하느라 못했고 탈당해서 투표권이 없어 투표조차 못했다. 그토록 싫어하던 정파가 당을 장악하도록 도와준 꼴 아닌가.
노동자대중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실망하는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소위 주체라는 활동가들이, 혹은 그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방관해서는 진보정당운동에 답이 없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기 원하면 처음이 되도록 차라리 다 망하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정당운동은 내일부터 시작이 아니라 이미 진행중이다. 내일부터 주체로 살 것이 아니라 지금 주체여야 한다. 정파의 패권과 만행, 분파주의를 제어하고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을 위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방관하지 말고 차라리 방해라도 하라.
김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