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목사·코리아연대 농성 93일 단전 16일째인 10일, 15번째 <별밤>(농성장, 별이 빛나는 밤에)은 하연호진보광장대표와 함께 했다.
하연호대표와 함께 하는 <별밤>은 <동학농민가>로 시작했다. 사회자 한준혜농성단원은 <새벽을 개척하는 이 시대 진정한 <동학농민>>이라며 하연호대표를 소개했다.
기독교회관과의 깊은 인연
농성장인 기독교회관과 깊은 인연을 가진 하연호대표는 <대학졸업하고 78년부터 전북기장청년연합회활동을 했고 84년 기청회장을 하면서 이곳에 사무실이 있어 많이 다녔다.>며 <당시 사회운동에서 기독교운동이 강했고 여기가 그 중심에 있었다. 사찰대상 1호였다.>고 말했다. 기독교회관에서 기억나는 일화에 대해 묻자 하대표는 <80년 서강대 김의기열사가 옥상에서 투신한 것을 마음에서 잊지 않고 있다.>며 김의기열사의 상주역할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농민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
계속해서 사회자 한준혜농성단원은 <농민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어려운 시기 현장에서 실천하셨다.>며 그동안의 정치활동에 대해 물었다. 하대표는 <2013년 전농대대에서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를 결정하고 집단입당한 과정이 있었다.>며 농민운동을 하면서 선거에도 출마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어 <김제완주후보로 출마했을 때 농민회원, 당원들이 자기일처럼 나섰다.>며 <그때는 선거의 생리를 잘 몰라 선거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다 찍어준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또 민주노동당농민부문최고위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농민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전체분야를 알아야 하기에 처음엔 당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사표 쓰고 내려가야 하지 않나 한달동안 심각하게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그렇지만 <당원들이 뽑아주었으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새벽같이 나와 공부하고 물어보고 성평등교육, 성소수자 등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제일 먼저 앞에 가서 들었다.>고 밝혔다.
진실과 신뢰가 가장 중요
이어 결혼이야기, 아내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하대표는 <강희남목사가 결혼식주례를 했는데 주례내용에 신부측하객이 놀라서 다 갔다.>며 결혼당시 기동대차 2대가 동원돼 있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하대표는 <가끔 어떤 직책을 제안받을 때 감옥갈 확률이 있는 직책들이 있다. 그것에 대해 혼잣말을 하자 옆에서 듣던 마누라가 <운동하는 사람이 그런 거 걱정하느냐>고 말했다.>며 <운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부간의 관계에 대해 <진실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며 <부부간이든 동지간이든 무슨 짓을 해도 믿겠다는 신뢰가 형성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전주<세월>호농성장의 기둥
계속해서 광화문과 함께 <세월>호농성장이 유지되고 있는 전주농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연호샘팬클럽회장>이라는 한 대학생은 <하연호선생님은 전주<세월>호농성장의 기둥>이라며 <무너지려고 하고, 흩어지려고 하면 절대 안무너지게 초심을 가지고 모범이 돼 준다.>고 말했다. 옆에서 자신을 <팬클럽부회장>이라고 밝힌 또다른 학생은 <천막에 오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대해준다. 언쟁이 높아져도 다 끌어안고 간다. 운동을 하면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막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어렵게 세월호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고 지역에서 지칠만도 한다. 또 30년 넘게 현장에서 활동하면 쉬고 싶은 생각도 있을텐데 쉼없이 달려가는 동력과 힘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하연호대표는 <전북에 70~80대 어른 10여분이 계신데 그분들이 매일 또는 격일로 농성장을 들러준다. 그것이 큰 힘이 된다.>고 밝혔다. 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게 사람>이라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형성된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되라는 게 국민의 명령
다음으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내용이 이어졌다. 전국정치단체 새로하나대표이기도 한 하대표는 <지금 정세에서 차이를 넘어서 하나가 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마음속으로 겸손하면서도 당당하라.>는 말을 강조하며 <운동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오만해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현장으로 더 내려오라고 요구한다.>며 <하나가 되어 국민을 섬기고 민중을 섬기고 겸손하게 활동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운동, 종파중심의 운동에 대해 비판하며 <처음 운동을 왜 시작했는가 생각하면 답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1부 끝으로 농성단에게 <암울한 시기가 지나면 곧 새벽이 오리라 생각한다.>며 <희망이 없이는 운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희망이 없는 사람은 떨어져나갔고, 희망 있는 사람이 남았다.>며 <서로 의지하며 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자.>고 말했다.
특별게스트 민주노동당시절 활동가들과 함께 한 <별밤>
이어 사회자는 이날 <별밤>에 함께한 민주노동당시절 활동가 3인을 특별게스트로 불렀다. 사회자는 <민주노동당 당가를 부르면서 세사람을 모시자.>며 3인을 소개했다. 새로하나 정성희집행위원장, 새로하나 최형숙집행위원, 진보정책연구원 김장민전연구위원이 나왔다.
김장민전연구위원은 농성단에게 <어떤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자고 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인 것 같다.>며 <여러분 많이 어렵지만, 어려울 때가 빛나는 시절이고 투쟁이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성희집행위원장은 <다시 꿈과 열정을 불태울 때가 온 것 같다.>며 <2017년 정권교체하고 1단계 진보정당 다시 만들고 좀더 완성된 노동진보통합당을 만드는 선명한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 꿈을 불태우자는 이야기를 이 촛불앞에서 다짐하자.>고 밝혔다.
최형숙집행위원은 <삶, 그 자체가 운동이어야 하고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해야한다.>며 <정당은 무너졌으나 삶에서 뻗어나간 진보정치는 안무너졌다. 끝까지 뜻을 세우며 자연스럽게 삶에서 풀어나가는 사람이 지역과 노동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즉석에서 <민주노동당기관지위원회가 맺어준 인연> 김장민전연구위원과 이미숙농성단원의 연애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고, 두사람은 노래 <바위처럼>을 함께 불렀다.
72학번,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한 대학시절
<팟캐스트> 인턴스테파니와 함께 하는 <별밤>2부는 1부에 이어 하연호대표와 진보정책연구원 김장민전연구위원이 함께 했다.
양고은사회자는 먼저 민주노동당이야기를 시작했다. 2004년 당시 민주노동당에 대해 하연호대표는 <흔히 말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며 <색깔도 다르고 견해차이가 있지만 민중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는 당이었다.>고 말했다. 김장민전연구위원도 <진보운동이 민주노동당으로 결집했다.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한총련, 한청 모든 진보적인 단체들이 모였다. 총선개표하는 날 중앙당에서는 폭죽을 터뜨렸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하대표는 <현장의 의견들이 당의 중심이 돼야 하는데 어느새 국회의원배지가 완장이 됐고 최고위원제도가 무력화됐다.>고 2004년이후 민주노동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전연구위원은 <민주노동당지도부가 당직공직겸직금지제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의 전략이 없었다. 또 지도역량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은 상층중심, 의회중심 활동으로 대중을 주체로 세우지 못했다.>며 <활동가급들이 대중이라는 말을 앞세웠지만 자기세력의 이해관계를 앞세웠다.>고 평가했다.
이어 두사람의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대표는 <김제에서 성장했다. 72년도 전북대에 입학해 전주에 처음 왔다. 새마을운동, 유신헌법이 만들어진 시기이고 1학년2학기때는 계엄령이 있었다. 학교앞에 총든 군인들이 있고 수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한상렬목사가 총학생회에 나온다고해서 관계했던 기억, 졸업후 야학활동, 5.18에 참여했던 일화 등을 들려주었다. 하대표는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치열하게 광주에 대해 알리기 위해 활동했다.>며 <함께 야학을 했던 사람을 간첩으로 몰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노동자어머니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김연구위원은 <12시통금이 있던 시절 초등학교 1학년때 밤12시에 집에 들어가고 초등학교 3학년때 가출했던 학생>이라며 <초등학교 5~6학년때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 노동자였던 홀어머니와 형님을 보면서 사회주의지식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고대법대에 들어갔다. 명문대에 갔지만 절대 취직은 안하고 운동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조직적인 학생운동을 하진 않았고 사회과학 학습세미나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화제는 다시 최근 투쟁이슈로 넘어갔다. 사회자가 <전북지역은 꾸준히 세월호농성장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자 하대표는 <세월호천막을 작년 8월에 쳤는데 대중들과 만나는 장으로서의 역할,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말했다. 또 오늘 함께 한 팬클럽을 자처한 대학생들이 <농성장의 청량제역할을 한다.>며 <일도 찾아서 열심히 하고 활달해서 이쁨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지난해 에콰도르·볼리비아 방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방문소감에 대해 하대표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의 대안은 우리 스스로 현장에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자본이 빠져나가고 중국자본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 생태계를 훼손하면서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 모순, 1주일에 한번씩 국민들과 대화하는 코레아대통령을 본 경험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업을 포기한 국가 ... TPP가입하면 쌀까지 몰락
농민운동이 어려움을 겪는데 대해서는 <의식주중에 식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국가가 이를 포기했다. 농민들의 삶의 모습이 더 힘들어지면서 안타까웠다.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젊은 동력이 별로 없다. 박근혜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려 한다. 거기 가입하면 쌀까지 몰락한다. 농민들의 삶이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농민운동가로서 죄스럽다.>고 말했다.
지영철농성단원이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묻자 김장민전연구위원은 <어머니가 가장 존경스럽다.>며 <노동자임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밀어주셨다.>고 말했다. <여성이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분>이라며 <어머니가 힘들게 사는 것을 봤는데 노동자의 어려운 삶을 벗어나고 싶고 사회의 부조리를 끝장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희남목사, 늘 강직하고 한결같은 분
강희남목사와의 인연에 대해 하대표는 <강목사님은 흐트러지지 않고 늘 강직하고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추워도 마룻바닥에 앉아서 기도를 하셨다. 강목사님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가까운 거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큰 교회 목사들은 좋은 차들도 끌고 다녔는데 그 당시에 토큰을 가지고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셨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하대표는 <운동을 하다보면 낙담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힘들지만 인내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계속한다면 어느 시기에 폭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핵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사람 한명의 중요성과 희망이 더 절실히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전연구위원은 <공부하고 조직하고 투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왜 그렇게 됐는지 공부를 해야 한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며 <패권도 잘못된 것이지만 분열도 잘못됐다.>고 말했다. 또 최근 <조영건이사와 당해산이후 지식인의 노동계급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노동계급의 이해와 관점을 자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대표와 김전연구위원과 함께 하는 별밤은 깊은밤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어졌다.
*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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