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민주노동당 모델에 대한 평가


1.1. 거대한 소수전략


민주노동당은 계급정당의 역할을 내재하고 있는 계급연합적이며, 사회변혁적인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노동당은 창당시기부터 사회주의, 민중민주주의, 사민주의 등 다양한 진보적 노선을 포괄하고 노동자, 농민, 빈민, 영세상인, 진보적인 학생과 여성, 사회적 소수자들을 당원에 포함시켰다. 2006년 민주노동당대의원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2005년말 기준으로 당우를 제외한 전체당원 7만2424명 중 민주노총당원은 3만592명으로 42.67%, 한국노총당원은 1133명으로 1.56%, 농민당원은 2448명으로 3.38%, 학생당원은 6424명으로 9.01%이다. 반면 서비스∙자영업에 종사하는 당원은 8283명으로 11.4%이다.

 

민주노동당 강령의 내용과 민주노동당활동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민주노동당은 기존 사회주의자체가 아닌, 막연하나마 새로운 포괄적인 사회주의적 지향을 추구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대중투쟁과 그를 기반으로 한 선거승리를 집권방법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집권의 주체에 있어서도 계급연합적 정권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강령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발전시켜, 새로운 해방공동체를 구현하며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

 

중앙위원 337명중 103명이 답변한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의 2007년 5월 이메일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집권의 목표와 관련해 사회주의지향(74.76%), 사회주의 목표실현(12.62%)이 자본주의체제유지나 개선개혁(11.65%)보다 압도적(87.38%) 의견을 차지하였다. 중앙대의원 893명중 151명이 답변한 같은 이메일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집권의 목표’와 관련하여 자본주의극복 사회주의지향(66.89%), 자본주의 전복 사회주의적 목표실현(17.22%)이 자본주의체제 개선∙개혁(13.24%)보다 압도적(84.11%) 의견을 보였다. 또한 같은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앙위원과 대의원들은 민주노동당의 집권과 변혁노선에 대하여 압도적으로 선거와 대중투쟁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84%, 79%) 반면 전민항쟁을 집권의 방법으로 제시한 중앙위원과 대의원은 11%와 14%에 불과하다. 또한 진보적 집권의 주체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민주노동당 독자적인 집권이라고 답변한 중앙위원과 대의원은 4%와 5%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세력을 포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계급연합정당 혹은 통일전선정당으로써 민주노동당의 활동전략이 보통 ‘거대한 소수전략’으로 불리어진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적인 원내정당으로서 우측에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문대중조직을 놓고, 좌측에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민중투쟁조직을 놓고 적극적인 제도정치 개입을 통해 대중투쟁을 지원하고 그 파급력을 최대화하면서 투쟁으로부터 얻은 제도적 성과를 다시 부문대중들과 공유하는 것을 자기활동의 방향으로 삼았다. 이러한 대중적 진보정당론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사회운동정당론, 혹은 통일전선적 정당론으로 제기되어왔는데, 양자는 2004년 원내진입을 앞두고 ‘거대한 소수전략’으로 사실상 수렴하게 된다. 거대한 소수전략은 진보정당, 민중투쟁조직, 부문대중조직의 3각편대가 서로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하는 전략이었다.

 

거대한 소수전략을 평가하면 일단 민주노동당과 부문대중조직 그리고 민중투쟁조직의 양적 배치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이들 3각편대가 서로 변증법적으로 결합하는데는 일정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원내 의원단과 원외 대중투쟁지도부 사이의 리더쉽이 확립되지 못하여 주도권의 문제가 정리되지 못하였다. 양측은 서로 자신의 활동방향으로 전체 원내외활동을 이끌려는 긴장상태를 조성하였다. 원내외 지도부가 합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통일적인 전략방안을 수립하고 집행하고 통제하는 사령탑이 민주노동당최고위원회라고 할 수 있었으나, 이들의 리더쉽이 원내요구와 원외요구사이에서 효율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1.2. 배타적 지지


남한의 경우 내각제, 비례대표제와 같은 협의제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대신, 다수독점에 근거한 소선구제와 제왕적 대통령제가 보수정당카르텔을 지탱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현실에서는 복수의 진보정당이 보수정치 담합구도를 깨고 원내에 진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진보정치입장에서는 원내에서 하나의 대중적 진보정당 즉, 범좌파정당을 지향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적 노동운동을 대표하여온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를 통하여 범좌파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창당을 주도한 것은 적절한 전략이었다. 배타적 지지는 민주노총으로부터 시작하여 전농, 전여농, 전빈련, 한총련,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 부문대중조직으로 확산되었고, 민중연대 등의 민중투쟁조직까지 확산되었다. 진보정당이 분열될 경우 부문대중조직이 서로 다른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문제로 정치적으로 분열되기 때문에 범좌파정당의 건설은 부문대중조직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배타적 지지를 평가하면 배타적 지지가 상층의 정치활동방침에 머물고 부문대중 깊숙이 밑으로부터 단단하게 스며들지 못하였다. 부문대중은 상층에서 정해진 배타적 지지방침의 세부적인 내용을 수동적으로 전달받고 이에 대한 피상적인 실천을 요구받는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개별적인 노동자 농민이 비록 당원은 아니지만 배타적 지지의 각구성원으로서 정치활동의 주체로서 적극화되지 못하였다. 간혹 결정되는 정치방침을 요구받거나, 선거때마다 물적∙인적∙재정적 지원을 하거나, 다소 적극적인 주체는 선거때 후보로 출마하는 정도였다. 민주노동당과 배타적 지지단체가 공동의 집권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부문대중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문대중의 정치의식을 고양하는 정치사업을 꾸준히 전개하였어야 했으나 실상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각종의 사회현안에 있어 공동의제를 발굴하고 실천하는 것에 있어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일부 성과가 있었으나, 그 후속타가 꾸준하게 나오지 못하였다.


 

1.3. 부문할당


배타적 지지방침이 진보적 대중정당과 부문대중조직간의 정치활동방침이었다면, 이를 내부적으로 구조화시키는 조직방침은 부문할당이었다. 부문할당은 최고위원회,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의 전체구성원수중 일정비율을 부문대중조직에게 할당하는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당규에 따르면 부문할당은 지역할당의 절반으로 한다. 노동부문은 부문할당의 절반으로 하고 농민부문은 노동부문의 절반으로 한다. 나머지 부문할당은 다양한 부문과 세대에 나눠준다. 부문할당의 구체적인 절차를 보면 민주노총, 전농 등 해당조직의 지도부가 파견자를 추천하되 그 내부의 선출절차는 해당 부문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이 경우 부문대중조직의 각단위대표자가 할당된 당직을 겸임하거나, 집행부의 지명에 의해 선출되었다. 최고위원회에서 노동부문최고위원이나 농민부문최고위원은 처음에는 각부문대중조직의 정치위원장이 지명에 의해 겸임했으며, 이후에는 지명된 후보를 최고위원회 선출에 붙여 당원전체의 찬반투표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부문할당을 평가하면 부문할당된 당직자들이 당의 정치일꾼으로서 부문대중속에 당의 정치사업을 뿌리내리지 못하였다. 일단 다양한 부문대중들을 당원으로 확보하는 조직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지 못하였다. 대다수의 부문대중들은 배타적 지지에 머문 채 입당에 이르지 못하였다. 10만당원확대사업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부문할당된 대의원들은 당의 각종회의에 상당수가 불참하는 등 당사업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않았다. 회의불참율은 지역대의원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한 할당된 부문대중조직의 당직자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노동부문최고위원의 역할이 민주노총의 요구를 당사업에 반영하는 것인지, 혹은 노동부문의 대표자로서 당의 요구를 민주노총에게 전달하고 이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가 모호하였다. 현실적으로 당의 요구를 민주노총에 관철하기보다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당에 관철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결과 전체운동의 선진적인 부문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이 민주노총의 이해관계 내로 왜소화되었다.


 

1.4. 기타제도


중앙당에 회의제기관으로서 노동위원회와 농민위원회 등 부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산하에 지역별위원회를 두었다. 이 기구에 위원장과 약간명의 위원들을 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의제기관으로서 성격이 흐려지면서 위원회체계가 무너지고 집행기관의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노동자·농민 등 기층부문대중을 포괄하여야 할 위원회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당과 부문대중과의 괴리가 점차 심화되었다.

 

일부 사업장에 직장분회가 설치되었다. 직장분회는 지역위원회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지역위원회와의 관계가 문제되었다. 지역위원회는 주거지별로 편재되어 지역사업과 선거대응에 치중하였지만, 직장분회의 경우 주거지가 달라 특정지역위원회로의 편재가 큰 실효성을 얻지 못하고 사업간의 연계성도 높지 못하였다. 그 결과 직장분회에 속한 부문당원의 경우 지역활동과 선거대응이 당이 요구하는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2.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현실과 가능한 대안


2.1.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현황


기존의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모델은 크게 거대한 소수전략, 배타적 지지, 부문할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민주노동당 시절까지는 이러한 모델이 다소 약화된 상태에서 존속하였지만, 통합진보당의 탄생과 그 분열로 인해 사실상 빈사상태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민주노동당 분열사태와 통합진보당 분당사태를 겪으면서 다수의 진보정당이 난립함으로써 하나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소수전략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둘째, 복수의 진보정당이라는 현실 때문에 부문대중조직이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배타적 지지방침이 사라졌다. 일단 경쟁하는 복수의 진보정당 중 대표성을 획득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특정 정당만을 지지하는 것이 부문대중조직의 균열에 의해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각각의 정당이 부문대중조직의 일정한 지분을 분점하는 상황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결국  민주노총의 경우 배타적 지지가 소멸되었으며, 다른 부문대중조직의 경우 일부 소멸하거나 일부 잔존하고 있다.

셋째,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문할당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일단 당헌과 당규에서 부문할당의 독립적 지위가 상실되고 당지도부의 추천으로 변질되었다. 과거 노동자, 농민 등 부문할당의 비율과 방식이 엄격하였으나, 이제는 최고위원회가 추천하는 방식으로 포괄적으로 규정되었다. 해당 부문대중조직에서 자율적으로 선출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해 할당이라고 볼 수 없다. 당측에 의해 추천되었기 때문에 추천된 최고위원이나 대의원이 해당 부문조직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없게 되었다.


 

2.2. 기존 방안의 개선


장기적으로 기존의 원내외통합전략으로서 거대한 소수전략, 배타적 지지, 부문할당 제도를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수 있다. 거대한 소수전략과 배타적 지지가 원상회복되려면 복수의 진보정당들이 하나로 통합되거나, 대표성이 있는 하나의 진보정당이 나와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전혀 없으며, 빠르면 2014년 지방선거 그렇지 않으면 2016년 총선을 전후로 진보대통합을 모색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부문할당은 배타적 지지가 소멸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다. 향후에 부문할당이 회복된다면 할당된 파견자의 정치주체성을 고양시키는 개선책이 필요하다. 일단은 부문대중조직의 지도부가 겸임하거나 지명하는 할당방식을 내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즉 민주적 선출과정에서 적극적인 주체가 할당대의원 등으로 파견되어야만 이들이 진보정당과 부문대중조직을 연결하는 정치부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또한 부문대중조직의 당에 대한 파견자로서의 역할보다는 상대적으로 당과 부문대중조직이 합의한 정치방침을 부문대중조직의 기층에서 실현하는 정치일꾼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할당대의원에 대한 정치학습과 골간조직으로의 끊임없는 편입과정이 중요하다.

 

다만 현재처럼 배타적 지지가 없다면 부문대중조직이 자발적으로 진보정당에 자신의 대표자를 파견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통합진보당처럼 거꾸로 진보정당이 부문대중조직의 성원일부를 당직추천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2.3. 새로운 방안으로서 집단입당제도


대부분의 정치선진국에서는 단체의 정당가입은 국가가 관여하지 않고 각정당이 자율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영국, 미국 등은 단체의 입당을 허용하고 있다. 영국노동당의 경우 전국집행위원회에 일정규모이상의 집단가입조직의 대표자를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도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방안으로서 집단입당제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개별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집단입당할 수도 있고, 지역별 혹은 산업별노동조합구성원 전부 혹은 일부가 집단입당할 수 있다. 가령 50명에서 100명 사이의 집단입당은 지역위원회 산하에, 100명이상 500명은 광역조직산하에, 500명이상 집단입당은 중앙당산하에 둘 수 있다. 또한 일정규모마다 대의원과 중앙위원을 자체선출해 당에 파견하도록 하고, 대표자를 별도로 선출해 지역, 광역, 중앙의 집행부에 파견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입당제도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 복수의 진보정당상황에서 배타적 지지나 부문할당은 불가능하지만 집단입당을 통하여 각정당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할 수 있다. 진보정당이 통합되지 않더라도 각각의 진보정당들이 집단입당을 통하여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진보정당들이 통합되면 그 성과가 새로운 진보정당에 그대로 계승될 수 있다.

 

둘째, 장기적으로 배타적 지지나 부문할당과도 병존할 수 있는 제도이다. 즉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조직중에서 정치의식과 활동이 발전한 경우는 집단입당으로 정치활동을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기존의 배타적 지지나 부문할당을 통하여 소극적인 부문대중들을 견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입당제도는 과거에 논의되던 직장분회제도가 더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셋째, 집단입당제도는 배타적 지지나 부문할당제도를 대체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하였다시피 배타적 지지나 부문할당제도는 부문대중의 적극적인 의식과 활동을 이끌어내는데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에 반하여 집단입당제도는 적극적인 주체에게 당원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여 그 적극성을 유도하는 제도이다. 전국단위노조이든, 산업별노조이든, 개별노조이든, 구성원중에서 진보정당활동에 적극적인 노동자들이 당원이 돼 정당과 부문대중조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하나의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복수의 진보정당이 난립하면 각각의 노조들이 다른 진보정당에 가입하게되어 노조전체의 정치사업은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가 우경화되어 중도보수정당이나 보수정당을 지지하거나 집단입당하는 사태도 이론상 가능하다. 따라서 이를 차단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하나의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결국 진보대통합이 성사되지 않으면 우리정치현실에서 어떠한 노동자정치세력화도 성공할 수 없다.

 

김장민(진보정책연구원 상임연구원)


*기사제휴 : THE FRONT 16호(2013년 5월호)

* 본 글은 진보정책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무관한 개인적인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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