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메이데이’에서는 ‘철도민영화(사영화)’라는 주제로 김영훈민주노총전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최근 근황을 묻는 것을 시작으로, 철도민영화(사영화) 문제의 본질, 철도노조의 대응, 철도노조 역사, 총연맹위원장 경험, 총연맹 직선제문제, 통합진보정당 건설문제, 신승철지도부 및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순으로 진행됐다. |
철도민영화 관련해 김영훈민주노총전위원장과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김영훈입니다.
위원장사퇴하시고 부산으로 돌아가서 기관사로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위원장님 인터뷰 하려고 제가 좀 언론을 찾아봤더니 흥미로운 기사가 떴습니다. 시사저널 10월기사였는데 노동분야 차세대리더 2년연속1위를 차지하셨더라고요. 최근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 말씀해주십시오.
우선, 차세대리더부분에 대해서는 저에게는 과도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아마 제가 사퇴하고 난 이후에 민주노총지도부 구성이 좀 늦어지다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않나 생각하고, 전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까 제가 민주노총위원장을 사임하고 난 지가 딱 1년 되었습니다. 직선제를 완수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그만두고 난 뒤에 제 원래 소속이었던 ‘한국철도공사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 우리노조로 치면 ‘철도노조’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도에 노조민주화과정에서 부당하게 전출돼 서울로 올라왔다가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했고, 도중에 해고도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13년만에 현장으로 다시 복귀해서 조합원들과 같이 승무하고 평조합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철도민영화문제가 불거져서 틈틈이 철도노조에서 저에게 시키는 일 있으면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정부의 계획이 철도공사를 한 6~7개로 갈가리 찢어가지고 민영화를 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은데 정부의 이 본질적인 의도와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박근혜대통령이 후보시절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철도민영화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이명박정부에서 철도민영화를 추진하다가 중단됐고, 박근혜후보도 철도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철도, 발전, 가스 등 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는 우리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안 될 것이라 많은 조합원들은 생각했었죠.
그런대 그건 우리의 순진한 희망사항이었고, 정부출범한 이후에 여러가지 공약후퇴라고 해야 할까요? 공약위반이라고 해야 할까요? 약속을 뒤집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일이 바로 철도문제라 볼 수 있는데 박근혜정부는 올 6월에 2015년개통예정인 수서발 KTX분할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철도를 분할하는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번에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안이 새로울 게 있는 건 아니고,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 바람이 세게 불어닥쳤던 것이 바로 김대중정부 IMF외환위기와 관련된 이행각서라고 해야 할까요? IMF가 돈을 빌려주면서 여러가지 한국정부에 약속, 그중에 대표적인 게 금융자유화하고 공공부문민영화였는데 그때 시도되었던 것이 바로 지금 박근혜정부가 얘기하는 분할입니다.
철도와 같은 기간산업을 잘게 쪼개어가지고 수익 높은 노선에 대해서는 민영화를 시키고 비수익노선에 대해서는 안락사를 시키는 그런 계획이었는데, 그때부터 철도노동자들의 민영화반대를 위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차례 총파업투쟁이 있었습니다. 노무현정부때는 명시적으로 철도민영화를 중단했던 것인데, 이후에 이명박정부 들어서면서 다시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박근혜정부도 다시한번 더 철도분할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게 됐습니다.
박근혜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이런 걸 공약했잖아요. 사실 증세없는 복지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고 누구 표현대로라면 형용모순입니다. 증세 없이 복지를 하려고 하다 보니 각종 세출에 대한 긴축재정 압박, 그 일환으로 공공부문에 대한 부채를 감소시킨다는 명분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데 이 결과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죠. 다시말해서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공공부문의 부채를 줄여 그 재원으로 복지를 확보하겠다는 주장인 것 같은데, 긴축재정의 결과는 기존 공공부문의 대규모적인 감축이나 민영화가 동반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볼 때 본질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철도노조가 최근 쟁의행위 찬반투표하고, 12월총력투쟁을 결의하면서, 100만인서명운동 목표달성을 하고 기자회견한 것에 대해 인상 깊게 봤는데 최근 투쟁흐름과 향후계획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1998년부터 철도민영화, 또는 전력민영화, 가스민영화, 수도민영화 등의 얘기들이 처음 우리사회에 등장했을 때 우리들이 제일 어려웠던 것은 소위 민영화는 ‘선’이고 공공부문은 ‘악이’이며, 부패의 온상이고 비효율적이고 방만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대한 조속한 민영화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 것처럼 일종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들이 많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이제 10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의 여론을 보면, 정말로 많은 시민들이 줄을 서서 (민영화반대) 서명하고 있습니다. 역에는 열차시간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절대다수는 철도를 비롯한 기간산업의 민영화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박대통령도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 이렇게 약속한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 사회가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하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만 국민들은 이제 그 누구도, 또는 국민의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정치인들 그 누구도 대놓고 민영화가 옳다고 주장하지 못하는 조건이 됐어요.
근데 문제는 교묘하게 어떤 우회로를 찾는다던지, 변종된 민영화방식을 들고 나와서 대국민사기를 치는 것이죠. 전교조에 대해서 ‘노조아님’ 통보하듯이, 자기들이 분명히 민영화를 추진하면서도 ‘민영화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명박정부때 4대강치수사업이라며 ‘대운하’가 아니라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며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나 수사과정에서의 외압에서도 ‘전화는 했지만 외압은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번 철도도 ‘분할시키고 쪼개는 건 맞지만 민영화할 생각은 없다. 민영화는 아니다’, ‘지방선에 대해서 민간에게 운영권을 넘기겠다고 하면서도 민영화는 아니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일종의 변칙이라 할까요, 변종이라 할까요, 아님 꼼수라 할까요? 이런 것들로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박근혜정부가 정확하게 민영화면 민영화다, 아니면 왜 아니지 이야기해야 되는 거죠. 민간에게 운영권을 넘기는데도 이건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해서 왜 아니냐 했더니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있기 때문에, 철도시설물에 대한 소유권은 국가이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민영이라는 것은 민간이 운영한다는 거거든요. 이런 게 정부의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위원장님 만나러 올라오면서 기차를 타고 왔는데 수원역 민간역사 짓고 있더라구요, 그런 것도 민영화의 일환인지요?
신자유주의 이념과 정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그 다음에 WTO같은 다자간협상, 아니면 FTA같은 1대1 양국간의 자유무역협정 등이 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동력입니다. 민영화라는 것은 결국 과잉된 자본이 생산적인 곳에 투자가 되지 못하고 시장화 할 수 없는 곳까지 시장화에 대한 투자를 열게 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계은행에서 규정하는 민영화의 양식은 9가지 정도로 구분하고 있어요. 완전소유권까지 매각하는 민영화가 있는 반면에 소유권은 그대로 두고, 이른바 프랜차이즈라고 하는 운영방식만 주는 것도 민영화입니다. 다양한 민영화방식이 있는 거예요. 박근혜정부가 좋아하는 글로벌스탠더드 국제기준에 맞춰보면, 박근혜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민영화입니다.
철도노조의 투쟁계획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지요.
철도노조는 이미 지난 찬반투표에서도 사상최대의 압도적인 가결로 수서발KTX주식회사를 코레일로부터 분리하려는 결정이 내려지면 총파업에 돌입하는 것으로 결의했습니다. 박근혜정부의 통치스타일로 볼 때 만만한 싸움은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투쟁에 대한 결의가 높은 상황입니다.
철도노조가 노태우정부때부터, 당시는 어용노조 산하였지만 기관차노조가 88년에 대규모파업이 있었고, 94년 김영삼정부때 지하철과 연대하는 대규모파업이, 김대중정부때는 발전, 가스와 함께 하는 연대파업이, 노무현정부때도 두차례 파업이, 이명박정부 들어서서는 노조무력화책동이라고 할 수 있는 단협해지를 남발하는 데 맞서서 대규모파업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이나 보수적인 정권, 어느 정권에서도 투쟁을 피해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많은 희생도 있었고 노조가 궤멸적 탄압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면면이 이어오고 있는 민주노조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철도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가 외국자본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될 수 있다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싸움을 피해가지 않을 것입니다.
철도노조 하면 많은 분들이 ‘어용노조민주화’를 인상깊게 생각할 것 같은데 어떤까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철도노동운동은 소위 근대의 자본주의 태동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 태동과 함께 노동계급이 탄생했고 노동계급의 탄생과 함께 노동운동이 시작됐는데, 철도는 항상 초기 노동계급의 대표적인 그러한 분야였죠.
그리고 철도라는 게 전국적으로 망을 갖추고 있고, 남성중심, 또 집단적인 기풍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도, 미국도, 유럽도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에서 차지하는 철도노조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프랑스의 공공부문파업을 이끈 것도 철도노조인데, 철도노조에 대해 프랑스시민들은 대단히 우호적입니다. 우호적인 이유는 이전에 히틀러가 침공해올 때 레지스탕스운동을 철도가 함께 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일제 침략도구로써 철도가 부설됐을 때 그 철도노선을 둘러싸고 항일투쟁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철도노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역사나 전통이 대단히 오래됐고, 그것은 역으로 또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방직후에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가장 주력부대가 철도노조였고 미군정에 맞서 대구총파업이나 용산총파업 같은 엄청난 투쟁들을 그때 했던 겁니다. 미군정은 철도노조를 그대로 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철도노조를 궤멸시키고 전평을 와해시켰습니다. 그리고 대한독립촉성노조라고 하는 대한노총을 만들고, 54년동안 아주 긴 어용노조시절이 있었죠. 그것을 깨고 2000년도에 새롭게 다시금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는 민주노조가 들어서서 이제 13년째 역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성으로 볼 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한편 우리 내부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시민들이나 양심 있는 세력들이 철도민영화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지만은 않은, 또 외롭지만은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민주노총위원장시절 경험 좀 말씀해주지요.
고생 많이 한 건 사실인데, 중요한 건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거겠죠. 민주노총위원장자리는 자임을 했고, 또 출마해서 잘하겠다고 하고 당선이 됐기 때문에 그 정도 고생할 각오를 안했으면 너무 무지했던 거고 그걸 원망하면 자격이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잘한 것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고 이루지 못한 것만 회한이 많이 남습니다.
출마를 결심했을 때 민주노총의 새로운 바람이라고 해야 될까요, 소위 청년민주노총의 기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도 만약 당선된다면 그 자체로 민주노총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민주노총은 언제라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변화하고자 했던 것의 핵심은 통합적지도력이었습니다.
그동안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었던 오랜 정파간 갈등의 문제랄지, 아니면 소위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숙의민주주의라고 해야 될까요? 민주노총이 투쟁을 잘하고 또 잘해야 되는 것도 있지만, 우리 내부의 의사를 모아나가는데 있어서 총연맹이라고 하는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로부터 권위가 생기고 그 권위의 힘으로 분열된 진보진영을 하나로 통합시켜내는데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어떻게 운동의 갈들을 조정하고 모아낼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위원장이 됐을 때 성폭력사건진상조사보고서도 제대로 쓰지 못했고, 민주노총이 총파업문제는 고사하고 또 정치방침을 둘러싸고 상당한 내부의 갈등이 많았습니다. 일관되게 이야기 했던 것은, ‘정치방침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리고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진보정치의 꿈이 있지만, 정치방침으로 인해서 민주노총이 분열되지 않는 게 나의 유일한 정치방침이다. 지금 이 시기에!’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임자들이나 간부들이 제입장에 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기조를 가지고 논의를 모아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12년 6.28경고파업결의대회 당시 김영훈위원장
위원장님께서 직선제를 유예하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를 하신 것인데 직선제가 꼭 되어야 하는 건가요?
저는 직선제를 공약한 사람은 아닙니다. 직선제는 이미 이석행위원장님때 대의원대회 통과해서 시행만 남겨두고 있었던 거죠. 시행만 남아있던 것이 임성규위원장님 시절에 한차례 유예됐고 저에게 넘어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공약하고 결정한 사항은 아니더라도, 제가 마땅히 집행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직선제를 여하에 성사시켜보려고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두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번째는 실무적으로 준비가 되냐 안되냐는 문제가 나섰습니다. 두번째 더 본질적인 문제는 과연 총연맹이라는 내셔널센터, 여기에서 직선제가 합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좀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87년 대투쟁의 직선쟁취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직선제든 간선제든 다 직접민주주의하고는 인연이 없는 거예요. 다 간접민주주의예요. 간접민주주의인데 방식이고, 일종의 수단이죠. 직선제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죠. 직선제로 민주노총지도부를 뽑자는 것은 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노동조합을 운영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민주적인 노동조합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노동조합을 통해서 대자본과 대정부에 더 효과적이고 더 강력한 투쟁의 구심을 만들자는 거거든요. 그게 최종의 목표죠. 위원장만 뽑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
조합원의 손으로 직접 뽑는다는 직선제의 장점이 있는 반면에, 승자독식의 문제를 언제나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일종의 부르주아민주주의도 마찬가지죠. 한표만 많아도 전부를 가져가는 문제. 물론 승자가 패자에게 아량을 베풀고 전부를 끌고 나가면 좋겠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중국의 지도체제를 반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죠, 중국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자기들의 제도죠. 미국식방식이 그렇다면 다 좋은 거냐? 그것도 사실은 우리가 이해 못하는 거죠. 그렇다고 간선제가 다 좋은 거냐? 어떤 제도 하나로 혁신이 절대시화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또 예를 들면, 직선제를 하면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가 누구인가를 규명해야 하는 거죠. 조합원이면 누구나 다 투표를 해야 하는 거고, 조합원이면 또 누구나 다 출마를 할 수 있는 것이 직선제의 전제입니다. 우리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조합비납부여부로만 확인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이후에 선거가 관리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둘째 문제입니다. 선거관리도 대단히 어렵지만 사전에 선거인명부를 확정하는 일도 정말 어렵습니다. 금속노조를 비롯해서 조직이 잘돼 있는 곳에는 체크오프가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리가 되지요. 하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 간헐적으로 노동하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조합비 납부도 간헐적일뿐더러 불규칙적이에요. 그리고 장기투쟁사업장들은 조합비조차도 못내요. 이 조합비란 말은 민주노총에 내는 조합비입니다. 아래서는 내지만 민주노총까진 못 올라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총연맹까지는 60% 정도밖에 걷히지 않습니다. 의무금이 다 못 올라오죠. 그랬을 때 과연 어떻게 그들을 확인할 수 있는가. 일부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안올라오는 사람들 선거권을 안주면 될 것 아니냐? 저는 그런 선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약한 사람들에게는 투표권이 가지 못하는데. 그러면 조합비도 안냈는데 주자? 그럼 어떻게 주자는 거냐? 풀리지 않는 의문이죠.
그래서 저는 숙의민주주의를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도로써의 어떤 다수결, 물론 다수결 필요하죠. 부르주아민주주의에서 얘기하는 거죠. 직선제 얘기를 하면서 ‘그러면 대의원회에서, 체육관에서 다시 위원장을 뽑자는 거냐?’ 하는 비판도 많이 합니다만 노동조합은 집행부, 대의원회, 조합원 이게 무슨 국회와 행정부와의 관계가 아니에요. 이른바 전일적인 사업체계죠. 결정하는 단위가 집행을 해야 되는 거예요. 대의원회에서 집행부를 견제하는 것은 노동조합민주주의하고는 약간 인연이 없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정사항이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직선제를 실시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동의하기 때문에 그걸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제가 질 수 있는 제일 무거운 책임을 진거죠.
저는 직선제와 관련된, 즉 노동조합민주주의와 관련된 제 나름대로의 연구라면 연구라고 할까요, 고민들을 많이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민주노총의 정파문제를 고민하면서 과연 직선제는 정파구도를 심화시킬까 완화시킬까? 저는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은 연맹위원장 선거만 해도 잘 몰라요. 지역본부가 직선제를 많이 하고 있지만 대단히 파행적으로 이루어지는 데가 많습니다. 또 한번 대상화되는 겁니다. 지부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 2012년 8월31일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노동악법 재개정! 장시간노동 단축! 민영화 저지! 8월 총파업승리 결의대회’에서 김영훈위원장
투표함탈취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렇죠. 우리 산하조직인 지역본부에서 그런 시행착오들을 많이 겪었죠. 다시 말해서 간선제의 확장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겁니다. 지부장의 성향에 따라서 투표함에 몰표가 나옵니다. 제가 목격한 바로는 어떤 투표함에서는 거의 한 표도 안 나오는 데가 있더군요, 상대후보가. 민주주의에서 그럴 수는 없는 거거든요. 백 몇 십 명을 깠는데 한 표도 안 나올 수는 없는 거거든요. 상대방은 승복 못하죠. 저는 그러한 차원에서 직선제가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 정파문제를 더욱더 안 좋은 방향으로 고착시킬 수가 있다는 겁니다.
실은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낙선자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총연맹지도부는. 예를 들면, 1:1로 위원장 선거를 붙어버리면 한쪽은 어차피 지는 거잖아요. 근데 임원진들을 집단으로 뽑고 그중에 최다득표자를 위원장으로 하고, 차점자를 사무총장으로 하고, 그 다음을 수석으로 하고, 그럼 다양한 세력들이 기회를 얻게 되겠죠. 어쨌든 나와서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 방향도 고민 해봐야 합니다. 직선제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내가 직선제를 수행 못한 사람으로 변명이 너무 길어진 것 같아요.
이번에는 화제를 좀 전환해서 민주노총의 진보정당운동에 대해서 말씀을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은데, 임기내내 진보대통합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만, 위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노동자정치세력화, 그다음 어떻게든 다시금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의견을 말씀해주신다면?
일단 통합에 실패했고. 민주노총이 주도가 된 진보연석회의에서 만든 5.31합의문이 당시 진보신당의 대회에서 부결됐고, 연이어 민주노동당은 그 반작용으로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이 이뤄졌고, 또 진보신당의 부결에 반대했던 분들과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제 역할을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불완전한 통합, 노동중심성이 사라진 정치공학적인 통합이 오늘날의 참사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저 역시도 어떤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그것을 완수하지 못한 무거운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실패했냐는 것을 돌이켜볼 때, 저는 통합에 있어서 두가지를 계속 주장해 왔는데 일단 진정성이 있어야 되는 거고, 두번째로는 서로에게 실력이 있어야 되는 거지요, 통합을 이끌어나가는 민주노총이. 민주노총이 통합을 바라는 어떤 진정성은 끊임없이 호소했고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믿어 의심치를 않는데, 그래서 5.31합의까지는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 어려운 북의 3대권력승계에 대한 입장이랄지 뭐, 조직내 운영의 패권에 대한 문제랄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5.31합의는 다 담고 있어요.
그럼 이게 왜 현실정치에서 작동이 안됐던가. 그건 결국 민주노총이 실력을 못 보여줘서 그런 게 아닌가. 우리 주체적으로 판단해볼 때, 다시말해서 진보정당에 있는 사람들은 민주노총이 별로 믿음이 안갔던 거죠. 저는 그렇게 봐요. 우리가 만약에 조합원 수가 200만명이상 되고, 당원들도 수십만명씩 있었다면 과연 오늘날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일차적으로 통합의 실패를 주체적으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노총의 실력이 부족했고, 소위 각자가 갈 길을 가겠다는 걸 잡지 못했던 거잖아요. 그거는 눈물로 호소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는 거죠.
결국은 이제 실력을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실력은 뭘까? 그것은 바로 제대로 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해야 됩니다. 그동안을 돌이켜보면 선거 때만 돈대고 몸대고 하는 그런 형식적 정치세력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실질적 정치세력화를 하려면 모든 사업과 노조활동에 있어서 정치사업을 우선시하고 또 중요시하고, 또 노동자들의 정치적의식을 각성시키는 그런 사업들을 배치해야 되는 거죠. 소위말해서 실리주의노조의 득세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을 못한 결과잖아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조합원들이 정치적으로 보다 더 높게 각성되어야 하고, 그런 각성된 힘을 바탕으로 추진될 때만이 이게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무너지지 않는 정당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두번째로 제도적 측면을 좀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진보정당에 있는 사람들이 유별나서 분열과 반목을 반복하는 걸까? 진보정당의 분열이 계속되는 것도 선거제도에서 기인한다고 봐요. 예컨대 결선투표제 없는 대통령직선제가 얼마나 허망합니까? 제3정당은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 다음에 단순다수득표 소선거구제가 야권연대 아니고는 안되고. 야권연대를 안하면 대중들로부터는 오히려 보수정당을 당선시켜주는 분열주의자로 낙인찍히고, 야권연대를 하게 되면 또 원칙 없는 진보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되고. 그 속에서 야권연대를 합의하면 소위 당권파가 형성되죠. 야권연대에 유리한 사람들을 합의하는 거예요.
그럼 거꾸로 생각해서 만약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대다수의 직선제를 하는 나라에서 다 갖고 있듯이 그러면, 제3정당이든 제4정당이든 무리하게 통합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누구라도 거기서 결선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되는 거지요. 근데 딜레마는 이 선거제도는 결국 기존 정치권에서 만들기 때문에.
이걸 87년체제의 한계라고 보는 거예요. 87년체제가 직선쟁취를 해내었지만 저들은 장기집권계획을 갖고 있었던 거죠. 직선제를 내주면서 첫번째 한 것이 김대중 사면하고, 백기완선생님 사면하고 야권을 분열시킨 거였잖아요. 결선투표제 없이. 그러면서 더 고착시켰잖아요. 제도로써의 현재문제도 상당히 크게 작동되고 있어요. 그건 진보정당 내에서도 그렇게 작동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문제를 같이 연구를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87년 7, 8, 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민주노조운동이 양적으로 급성장했지만 산별노조의 전환이라든지 질적 노동운동의 전환을 이뤄내지 못함으로 해서, 그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지금 대단히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이 2004년 거의 14%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원내에 들어갔지만 제도의 돌파구를 못 만들어 냄으로써 불안정한 구조를 계속 가지고 갔다는 점. 그런 부분들도 같이 고민돼야 합니다.
87년항쟁이 헌법을 바꿨으니까, 87년헌법체제에 대한 개헌논의는 집권세력으로부터 나올 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얘기하지 않더라도. 개헌논의가 터져 나오게 돼 있습니다. 이 체제가 담지 못하잖아요. 그러할 때 우리 진보진영의 진보적 개헌안은 어떤 것인가. 이런 것들도 같이 고민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재편논의도, 재구성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끝으로 신승철지도부와,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하시고 싶은 얘기 있으시면.
일단 신승철위원장님에게는 대단히 무거운 짐들을 전임자로써 넘겨준 거 같아서 항상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저력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능히 잘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민주노총이 안팎으로 많은 비난도 받고 있고, 이빨 빠진 호랑이다, 이런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만 조금만 돌려서 보면,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광풍 속에서 노동운동전체가 퇴조기에 들어선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87년대투쟁, 그리고 96, 97년 대투쟁의 역사를 올곧게 다시 계승발전시키지 못하고 질곡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죠.
긴 안목으로 볼 때,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세력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민주노총만한 조직은 없다는 자부심을 충분히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이 박근혜정부하에서 노동운동하기가 그 자체로 대단히 어렵지만 서로 용기를 잃지 말고 새날을 준비하는, 그런 투쟁들을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보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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