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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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야 하는가, 고쳐야 하는가. <진(Jin)>은 터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고있는 쿠르드민족의 현실을 쿠르드여성게릴라 진(Denis Hasguler)의 모습을 통해 형상하고 있다. 강인한 여성게릴라면서도 투쟁보다 가족을 생각하며 동요하는 약한 여성의 모습이 곧 쿠르드민족의 현실이다. 레하 에르뎀(Reha Erdem)감독은 진을 감싸는 대자연과 진과 만나는 동물들이 폭격과 총소리에 신음하는 모습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사람과 자연의 일체화, 자연적인 것을 통한 치유(healing)를 꿈꾼다. 자연이자 여성을 뜻하는 쿠르드언어인 진(Jin)은 여주인공의 이름이자 영화제목이다.

대오를 이탈해 산을 내려간다. 걷고 또 걷는다. 민가로, 엄마에게로. 허나 쫒기고 잡히고 도망친다. 결국 다시 산으로 돌아온다. 옷은 게릴라복장에서 민간인복장으로 다시 게릴라복장으로 바뀐다. 민가에서 훔친 책과 란제리에 마음이 끌리고 민간인복으로 갈아입지만 결국 숨겨둔 게릴라복을 다시 입을 수밖에 없는 진. 진은 곧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바라나 결국 전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쿠르드족에 대한 은유고 상징이다. 저항하다 좌절하고 그러다 다시 저항하는 쿠르드족의 모습이 진의 이탈과 고난, 복귀를 통해 가슴저리게 와닿는다.

진은 터키군의 유치장에서 부상당한 게릴라군지휘관을 만나고 그의 요청대로 킬링하고, 산속에서 부상당한 터키군병사를 만나고 그의 요청대로 힐링해준다. 자결을 도와주든 부상을 치료하든 진은 그들 모두 다 인간이라며, 모든 인간을 품어주는 대자연처럼, 품어준다. 이 순간 인간들 사이의 싸움은 먼지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자연의 섭리대로 치유될 수 있어 보인다. 허나 그 진이 터키군의 총의 맞아 부상으로 피를 흘리며 떨게 될 때, 과연 힐링의 희망이 가능할 지 묻게 된다. 진은 분명 죽지 않았고 주위에 그 만났던 동물들이 모여들어 힐링의 기적을 시사하지만, 미래는 확실하지 않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을 거리에서 픽업한 17세 쿠르드인 여주인공에서 찾는다 해도 감독이 전혀 실망하진 않으리라. 어떤 배우가 이 역을 맡아 이처럼 연기를 할 수 있겠는가. 관객은 영화관을 떠나도 진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고 진을 둘러싼 자연을 지울 수 없다. 진은 곧 쿠르드의 민족이고 강토(자연)며 조국이다. 쿠르드문제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관객은 진을 만나서 간명하고 정감있게 모든 걸 깨달으며 힐링된다. 진이라는 여성과 자연을 만나면서 얻은 힐링의 영감에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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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특별취재반 나영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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