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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다 인민의 의지

우리는 도전한다 법과 질서 억압의 굴레

우리는 간다 빼앗긴 사람들

우리의 것 되찾기 위해 나간다


우리는 평화 모두의 땅

씨앗을 뿌려 황무지를 갈고 일할뿐이다

나눠진 땅 이것은 원래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창고


우린 일어섰다 가난한 우리

일하고 함께 먹는 우리 바로 자연인이다

어떤 무기도 필요치 않아

우리는 당신들에게 절하지 않아


이제 일어서라 군대가 온다

우리를 짓밟고 무너뜨리고 파괴하려고

이제 일1어서라 우리는 간다

뒤엎어진 세상을 바로 세우러


우리는 평화 우리는 하나

만물은 공유한다 필요한 건 용기뿐이다

우리는 간다 저들의 세상

뒤엎어진 세상을 바로 세운다


- 11월3일 대행진단이 부를 노래 <우리는 간다>, 15~16세기, 영국민중들이 부른 노래

10월10일, 대행진 여섯째날이다.

공주에서 출발한 행진단은 10시10분경 계룡대, 해군본부와 가장 가까운 문에 도착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강행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강동균회장은 그 어느때보다 열정적인 연설을 해 목이 쉴듯말듯했다.

“64년전 4.3항쟁, 1980년 5.18광주, 그리고 강정. 모두 뒤에 더 큰 미국이 있다는 것을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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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청앞으로 간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밥차팀이 미리 해놓은 밥이다.

어제 남아 챙겨둔 묵은지 닭도리탕도 인기였지만 용산의 김영덕어머니가 갖고 온 갈치속젓이 ‘밥도둑’역할을 톡톡히 했다.

가는 곳마다 후한 대접을 해주어서 밥차를 가용할 기회를 잘 못 찾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끔 밥차팀이 해 준 밥맛은 사실 맘편히 먹을 수 있어 좋다.

많을땐 100여명의 식사와 일상적인 50여명의 잠자리와 씻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역민심까지 챙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미 제주평화대행진이나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의 8박9일간의 평택-부산 대장정 등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아 버스를 비롯해 4~5대의 차량과 물동량이 움직이는 이번 행진에 기술적인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 자체의 목적도 있지만 전국순회투쟁방식의 자산이 된다는 점에서도 소중할 것이다.

밥팀을 맡고 있는 말엄마와 여러 단원들이 참 수고를 많이 하고 있다.

말엄마가 아마 로니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이만큼 힘을 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점심후 가진 기자회견이 끝나자 대전시청~대전역간 행진을 했다.

대전에서의 행진은 상당구간 도로가 아닌 인도에서 진행됐다.

제주에서의 행진도 사실 일정구간동안은 경찰의 에스코트도 없이 진행했다.

행진대열옆으로 차들이 쌩쌩 다니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대전역 바로옆에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관리공단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앞에서 철도노조소속 해고자들이 농성투쟁을 하고 있었다.

농성총무를 맡고 있는 김도완씨는 “사실 2003년 노무현정부때 48명이 해고됐고 2009년 이명박때는 47명이 해고됐다”며 “오늘 문재인이 대전역에 방문했는데 그에 맞춰서 우리가 선전전을 하려고 가다 약간 늦었는데 끝나고 이동할 때 마주쳤다. 그런데 쌩까더라”고 말한다.

옷이나 피켓의 구호를 보면 당연히 해고노동자인 것을 알텐데 말이다.

대선후보의 일정이 분초단위로 짜여져 있고 후보자신은 짜여진 동선대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건 맞다.

앞으로 개혁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저절로 풀릴 거라고 믿는 노동자는 적어도 만나본 사람들중에선 없었다.

김도완총무는 부산을 떠나 노조일만 한지는 7년이나 됐다고 한다.

행진단은 ‘특정직7급’ 복직투쟁 농성장에서 힘있는 연대를 약속했다.

직무숙련도와 성과가 아닌 시험을 통한 승진평가가 버젓이 진행된다고 한다.

정규직은 시험을 봐서 입사했으니 승진시험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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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난 후 잠시 홍보활동을 했다.

마침 자매지인 21세기대학뉴스(www.21unews.com) 이민경기자가 취재를 나와 인터뷰할 몇명을 소개해 주었다.

이어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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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청년 사회적 여행기업인 공감만세의 이형동씨도 문화제에 참가해 기자와 만났다.

그도 참여연대회원으로 뜻있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쌍용차 23번째 희생자 관련 시국회의를 마치고 온 문정현신부님과 김덕진사무국장도 보인다.

공동주최단체리스트를 요구하는 기자에게 김덕진사무국장은 “아 줄게줄게. 내일까지 해줄게.”란다.

아직 단체들이 계속 신청하고 분담금 입금하고 있어서 정리가 덜됐다며.

단체와 개인의 후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가는 곳마다 후원물품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는 것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

(물론 다음날도 그는 기자에게 자료를 넘기지 않고 다시 서울로 바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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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촛불문화제에선 매일매일 촬영한 영상을 그날밤부터 새벽까지 편집해 올리고 있는 둥글이씨의 영상상영이 돋보였다.

신차꽃밴의 세리씨는 둥글이씨의 유튜브 아이디(1234yz100)로 들어가보면 강정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어떠한 자료나 기사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비결은 속도. 둥글이씨의 영상은 매일매일 올리기 때문이다. 마치 뉴스처럼.

그는 저녁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면 영상편집을 마치기 전엔 자리도 뜨지 않고 일을 끝내고 씻고 자러 간다.

기자가 글을 쓰는 지금 둥글이씨가 오늘 영상편집을 마치고 업로드한후 가방을 메고 내려간다.

이날 처음으로 11월3일 대행진단이 제창할 <우리는 간다> 배우기 연습을 했다.

여느 문화제에서처럼 강정마을 4종 마약댄스로 문화제는 끝났다. 이 4종댄스에 대해선 다음기회에 소개하겠다.

오랜만에 엄마손을 잡고 따라나온 아이들도 즐겁게 따라한다.

 

이날 숙소는 대화동성당이었다.

다음날 얘기지만, 평화바람의 오두희씨(별명은 오두둑이다)는 창원에서의 잠자리인 민주노총경남본부사무실에 들어서자 “성당은 사실 불편한데 이런데 오면 참 편해 응-”이라고 하자 문정현신부님은 “왜-”라며 ‘성당도 좋지 뭘’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발언을 할땐 항상 정부, 정치권, 언론, 종교 모두를 비판하지만 성당은 그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생각든다.

기자에게는 성당도 참 편했다.

이번 대행진의 숙소중 적지 않은 곳이 성당인 점은 시사적이기도 하다.

 

이날 밤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와 길벗, 지역의 두 한의사단체에서 의료봉사를 나왔다.

사제실에서 기자를 포함한 몇명이 침을 맞았다.

좀 늦게 올라온 문정현신부님은 구럼비를 지키다 떨어져 생긴 어혈을 한번도 빼지 않았다가 이번에 두꺼운 침으로 많이 뽑아냈다.

정말 아플텐데 이를 꽉 깨물면서도 아프다는 얘기를 않는다.

한의사는 “아픔을 참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시커먼 피가 줄줄줄 흘러내린다.

바닥에 깐 신문지와 휴지가 울긋불긋하다. 방금 수술한 사람을 닦아 낸 흔적같이.

다음날 아침 문신부님은 오두둑씨에게 “난 그저 좀 주물러 줄지 알았지.”라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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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해고자들과 여럿은 피곤했지만 성당에 마련된 어린이도서관에서 <추적60분>을 봤다.

쌍용차 관련 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여러 사실들을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초점은 과연 그만큼 대규모 정리해고를 할만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었냐였다.

서울에서, 쌍용차 김정우지부장은 곡기를 끊고 전원 복직될때까지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나영필기자

21세기민족일보∙진보노동뉴스 공동기획
2012생명평화대행진 동행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