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곳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있다.

 

송전탑에 몸을 맡긴 울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자와 평택 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 아산 굴다리난간에서 농성중인 유성지회장, 서울 혜화동성당종탑에 오른 재능교육해고노동자, 전주 철탑에서 농성중인 천일교통택시노동자가 바로 그들이다.

 

이중 쌍용차와 현대차 노동자들은 15만볼트이상의 송전탑에 자기몸을 맡긴채 한겨울의 칼바람도 이겨내며 지금까지 목숨을 내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상균·복기성·문기주.

 

이 세노동자는 ‘쌍용차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110여일째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4년간의 외침은 절규였고 투쟁의 몸부림이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장기화되는 사업장을 들여다보면 사측의 노골적인 노조탄압과 공장폐쇄, 대량의 정리해고와 함께 정부공권력에 의한 폭력진압 등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데,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 바로 2009년 쌍용차사태다.

 

2004년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되면서 이 잘못된 선택이 쌍용차사태를 부르고야 말았다. 

 

IMF외환위기이후 쌍용차는 1999년 12월 채권단과 워크아웃약정이 체결되지만 공적자금 투입과 전직원의 노력으로 2002년 3000억원, 2003년 6000여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다시 정상화된다.

 

그러나 2004년 10월 정부는 노동계,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다.

 

매각당시 상하이차는 △고용승계 △생산설비와 생산능력 유지확장 △2008년까지 1조2000억원투자 등을 약속하지만 인수후 기술개발, 생산능력확대, 판매망확충 등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쌍용차와 기술라이센스(중국내 개조 카이런제조·조립·판매)계약을 체결, 카이론, 체어맨W, 신차인 C-200의 기술을 헐값에 이전함과 함께에 전산망을 통합해 기술진을 중국으로 파견하는 등 기술유출만 가속화됐다.

 

기술라이센스계약체결후 사측은 2006년 8월 희망퇴직자 432명, 554명 정리해고 등 986명 인원감축을 시도하는데 이는 2009년 대량해고를 암시하는 조치였다.

 

상하이차는 핵심기술들을 다 빼돌린후 인수 4년만인 2009년 1월 법정관리신청으로 경영권을 포기하고 쌍용차측은 2009년 4월 2646명의 정리계획을 발표한다.

 

노조는 2009년 4월13일 쟁의행의찬반투표를 진행해 86.13%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결의, 2009년 5월13일 쌍용차지부부지부장, 정비지회부지부장, 비정규직지회부지회장 등 노조간부 3명이 70m 굴뚝농성에 돌입하고 5월22일 1000여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전면총파업돌입으로 사측의 2646명 감축안에 대해 맞섰다.

 

이에 사측은 5월31일 직장폐쇄단행, 6월2일 우편과 문자로 1056명의 정리해고자 통보, 6월8일 비해고자, 용역깡패를 동원해 관제데모를 열기 시작하고 인터넷·전기·물·가스·음식물의 차단은 물론 쇠파이프·방패로 무장한 용역깡패를 동원한 수차례의 공장진입시도 등을 자행했으며 급기야 수면가스를 살포한 진압계획도 세웠다.

 

사측이 2009년 6월29일 노조퇴거명령강제집행을 신청하면서 평택공장은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고 이명박정권은 7월21일부터 8월5일까지 헬기·최루액·테이저건·컨테이너박스 등을 이용한 살인적인 폭력진압을 명령·집행했다.

 

결국 그해 8월6일 노사는 ‘정리해고자 48% 무급휴직, 52%는 희망퇴직 및 분사, 무급휴직자에 대해 1년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77일간의 옥쇄파업이 종결됐다. 

 

2009년 쌍용사태는 희망퇴직자 2026명, 무급휴직자 461명, 정리해고자 159명 등 정규직노동자 2646명과 비정규직노동자 350명,  총 3100여명이 정리해고됐다.

 

옥쇄파업이후 사측과 정부는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수백억원의 손배가압류를 신청하고, 경찰은 노조간부 16명을 기소하면서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다.

 

특히 쌍용차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측의 회계조작에 의한 고의파산과 이로 인한 대량의 정리해고수순의 강행에 대한 의혹이다.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2008년 12월 회계보고서에 의하면 유형자산의 손상차손누계액이 5124억원으로 2007년 4240억원의 건물가치가 2008년에는 2124억원으로 계산돼 있었다.

 

유형자산의 손상차손이란 건물·구축물·기계장치·공구·기구 등의 시장가치급락이 예상될때 기록하는 장부상의 예비손실로 손상차손이 커질수록 가치도 떨어진다.

 

5개월후인 2009년 5월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실사조사보고서에서는 쌍용차자산가치를 1조1억원으로 평가한다.

 

즉 토지와 건물, 구축물을 합친 5252억원의 가치가 4749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삼정KPMG는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회계보고서를 바탕으로 「쌍용차경영정상화방안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보고서에는 ‘현상황에서 과감한 인적구조의 혁신없이는 쌍용차의 미래생존이 불가능해 전체 노동자의 46.8%인 2646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현재의 기형적인 다이아몬드 인력구조형태를 피라미드 인력구조형태로 개선시켜야 한다’고 했다.

 

노조는 회계조작정황을 포착해 2010년 9월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차의 잠재적 부실규모를 크게 부풀리는 회계상의 부실을 조장해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됐다”며 “회계조작에 의한 정리해고문제를 국정감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9월13일에는 민주노총, 쌍용차노조 등 7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회계법인 삼정KPMG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 등에 관한 법률위반과 업무상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주채권자인 산업은행은 쌍용차해고자에 대한 해결없이 2010년 8월23일 인도 마힌드라와 M&A양해각서를 체결, 같은해 11월23일 본계약을 체결해 쌍용차를 일방적으로 매각했다.

 

쌍용차지부·가족대책위·범국민대책위·야당 등은 2010년 9월부터 정치권에 정리해고·회계조작 등 쌍용차사태에 대한 국회청문회와 국정조사를 계속 요구하지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철저히 외면한다.

 

이과정에서 쌍용차노동자와 그 가족이 스트레스성질환으로 숨지거나 자살하는 등 2009년 정리해고이후부터 2012년 3월까지 22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일이 이어졌다.

 

더이상 23번째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쌍용차지부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정치권·종교계·학술·법조계, 청년·여성·학생 등 각계·단체들이 쌍용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들은 ‘살인적인 정리해고철회’, ‘국정조사실시’, ‘무능하고 부도덕한 경영진처벌’ 등을 요구하며 대한문앞 22명희생자추모분향소설치, 희망텐트, 1~4차 ‘쌍차포위의날’, 범국민추모대회, 5대종단합동위령제, 쌍용차문제사회화를 위한 대토론회, 희망행진 ‘함께걷자’, 생명평화대행진 등을 진행하며 대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민주당(민주통합당)과 진보당(통합진보당) 등 야당의원들도 2012년 6월25일 의원모임(쌍용차문제해결을의원모임)을 발족시키고 국회청문회 및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며 여당을 압박했다.

 

결국 2012년 9월20일 쌍용차국회청문회가 열렸고 야당의원들은 중국 상하이차의 ‘먹튀’의혹, 정리해고를 위한 회계조작 의혹, 공권력의 폭력진압 등을 집중추궁하면서 국정조사 및 특위구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2012년 10월8일 끝내 23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쌍용차 김정우지부장이 10월10일 쌍용차사태해결을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 곡기를 끊었으며 11월3일 3000인이상의 동조단식이 있었다.

 

급기야 11월20일 3명의 노동자가 15만4000볼트의 송전탑에 자기몸을 맡기며 목숨건 고공농성에 돌입한다.

 

18대대선당시 야당대선주자들과 심지어 새누리당 박근혜후보도 국정조사실시를 공약했으며 국회환경노동위소속 새누리당의원들도 기자회견에 나서며 국정조사실시를 거듭 약속한다.

 

대선이 끝나자 새누리당 이한구원내대표는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의 문제를 푸는데 국정조사가 적절한 방법인지 모르겠다”며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박근혜당선자도 국정조사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상황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2월임시국회에서 ‘쌍용차문제해결을 위한 여야협의체’를 구성만 했지 2월내내 단한차례도 열리지 않다가 3월6일 처음 열리지만 의제선정부터 난항이 예상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쌍용차지부는 “문제해결은커녕 파국을 몰고올 것”이며 “협의체구성은 결국 국정조사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협의체합의를 즉각 취소하고 국정조사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쌍용차사태해결에 험난함이 예상되나 또 한켠에서 희망은 자라고 있다.

 

지난 3월5일 489명의 무급휴직자들이 3년7개월여만에 평택공장으로 다시 출근해 김정우지부장을 비롯 노동자들은 이날 이른 아침의 감격을 함께 나눴다.

 

이제 비정규직을 포함한 190여명의 정리해고노동자들이 복귀하는 날만 남겨두고 있다.

 

지난 2월28일 평택쌍용차공장앞에서 100전100승결의대회(‘쌍용차투쟁승리를위한100(송)전(탑)100승(리)문화제’)자리에서 송전탑 하늘위 3명의 노동자 한상균·복기성·문기주는 “공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자”, “노동자들의 열망이 무엇인지 자본과 정권에 보여주자”며 오히려 땅을 밟고 투쟁하는 모든 ‘동지’들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이들은 오늘도, 오늘도 전진할뿐이다.

 

김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