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뉴스는 18년째 자본의 탄압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금속노조 윤민례시그네틱스분회장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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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투쟁을 장기적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는데 투사로서의 삶이 어떠한지


윤분회장

저를 투사로 칭해주니 감사하다. 다른 사람들은 빨치산여전사라고 말해준다. 시그네틱스투쟁이나 제가 살아온 것을 보면 투쟁의 연속이어서 투사의 삶을 거부하진 않겠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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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네틱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말해달라


윤분회장

시그네틱스를 88년도 20살에 입사를 했고, 생산현장에 11년 근무하다가 해고가 됐고 지금까지 18년동안 투쟁을 해오고 있다. 

해고전에는 기계소리를 들으면 굉장히 좋았다. 기계소리가 그렇게 좋았고 육아휴직 끝나고 첫출근했던 날에는 <너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때였다.

이후 해고가 되고나서 삭발하고 구치소까지 갔다오자 노조원들이 집단적으로 해고가 됐다. 일방적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했고, 거기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제도적인 문제도 있었다. 생존권을 박탈당한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조직적인 활동을 많이 생각했다.

육아휴직은 단체협약에 있었고 10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도 언니들은 아기를 친정이나 시댁에 맡겨서 한달에 한번씩 보러가면서 힘들게 살았다. 저는 회사 최초로 육아휴직을 쓰고 나서 불이익을 당했던 거다. 출근한 날부터 사측이 눈치를 주고 대우가 달라졌다. 3교대근무인데 근무조 편성할 때 불이익을 받았다. 새벽6시 출근조는 당연히 다음에 오후2시조로 보내야하는데 야근으로 넣어버렸다. 특별히 돈이 필요한 사람을 빼고는 야근을 좋아하지 않는다. 2주동안 사측과 싸웠다. <내가 육아휴직을 써서 불이익을 주는 것 아니냐, 늦게 집에 가 아기가 아파 문제가 생기면 당신에게 따지겠다>며 투쟁하자 결국 정상적으로 근무하게 됐다.

시그네틱스는 개인적으로도 꼭 돌아가야 할 곳이다. 우리가 시그네틱스라는 생산현장으로 돌아가야지만 지금까지 잘못된 것들이 바로잡힐 수 있다. 1‧2차해고자들이 현장에 돌아가는 것 그리고 공장이전을 반대했다고 해고당한 문제들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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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네틱스복직투쟁 하면서 아쉬운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윤분회장

해고 전이 많이 아쉽고 그립다. 상급단체에 가면 일상활동을 보고하는 노조들이 있는게 그런 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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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네틱스노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윤분회장

영풍그룹과의 싸움을 전개하고 있지만 이 땅의 자본가, 그리고 세계의 자본가와 싸우는 중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문제는 비단 해고문제라고만 보지 않는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전쟁이다. 여기가 오랫동안 어렵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시그네틱스노동자들의 투쟁은 끝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영풍그룹과 투쟁을 전개했을 때 노조원이 600~700명이었는데 지금은 20명이다. 이렇게 길게 해올 수 있었던 것도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그네틱스노조원 중에는 정년퇴직기한이 15년 남아있다.  영풍자본이 이것을 묻는 이유는 그때까지 우리를 탄압하겠다는 의미도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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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해고와 3번의 복직판결이 있었다. 이번에 부분회장과 사무부장이 복직됐는데 현장에서의 활동과 생활은 어떤지 궁금하다.


윤분회장

시그네틱스투쟁이 정상화되려면 아직 멀었다. 대법원이 3번째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작년 9월14일 내렸지만 사측이 우리를 출근시키지 않았고 휴업을 걸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은 휴업이 아니라 강제휴직이라고 소송을 걸었다. 9월20일 <휴업은 무효다>는 판결이 내려졌고 15개월치 30%임금을 회사에서 주어야 했다. 출근한 날 의자만 하나 있었다. 게시판에는 <출근9시, 퇴근12시, 17시까지는 휴업>이라고 공지돼있었다. 출근첫날은 1시간만에 집에 가라고 해서 퇴근했고 지금은 우주복 입고 책상에 3시간 앉아있다. 아예 물량이 없고 밥도 주지 않는다.

시그네틱스노조는 오후 5시간휴업 중단하고 복직한 노조원들을 화주공장으로 보내라고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교섭을 요구했다. 이것 때문에 10월31일 만났다. 사측은 회사가 어렵고 물량이 없다고 말했다. 해고되기 전 124차까지 교섭을 진행했다. 단체협약이 해지된 이후 118개조항을 내걸고 다시 협약을 맺자고 했다. 하지만 영풍자본은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도 않고 정규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사측은 교섭때마다 폐업관련해서 변호사와 상담한다고 말하지만 단체협약체결을 위해 교섭중이다. 이것이 해고수당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을 했다. 우리는 생산현장에 출근했지만 온전하게 일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복직한 9명 전원이 마찬가지다.

사측은 노조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에 교섭에 나오는 것이다. 노조는 사측에게 <우리는 금속노조소속이니 당신들은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계속 알렸고 대법판결에서도 이겼다. 그래서 저들은 교섭에 다시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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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취업규칙이 근기법에 어긋나는지


윤분회장

사측은 계속 법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퇴직금과 폐업수당에 대해 부당이득금반환소송을 우리에게 걸었다. 첫재판은 12월20일 잡혀있다. 우리는 3심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고 아마 그때까지 계속 일을 시키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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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미래전략실>이 있는데 영풍그룹도 그런 부서가 있는지


윤분회장

공개적으로는 없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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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윤분회장

회사는 1966년에 창립했고 1967년에 노조가 생겼다. 치열하게 해고투쟁까지 했다. 2000년대에 영풍자본이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한국노총사업장이지만 민주노총처럼 일상투쟁을 전개했다. 행사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각종 소모임이 정말 많았다. 풍물패에 있었는데 언제나 일상투쟁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영풍자본을 만나서도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계속 싸울 수 있었다. 

노조상근자 5명이 영풍자본과 싸워보자고 결의하고 수련회를 통해 투쟁대오를 정비했다. 2001년 1월부터 싸움을 준비했다. 그해 4월부터 사측이 기계를 빼려고 했고 노조가 그걸 저지하면서 노조탄압이 시작됐다. 우리는 사측이 기계를 가져갈 수 없게 하기 위해 24시간 공장을 지켰고 이 투쟁을 두 달 동안 전개했다. 이때 사측이 <노조파괴시나리오>문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5월14일 노사교섭을 결렬시키고 날짜별로 노조를 파괴하기로 돼있었는데  실제로 5월14일 교섭을 결렬시켰다. 우리는 이것을 확인했고 언론에 폭로했다. 영풍이 정말 무서운 자본임을 알게 됐고 그 노조파괴기획문건을 들고 금속연맹에 찾아갔으나 연맹은 합의를 제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시그네틱스노조는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꾸고 파업을 전개하게 된다. 사측 때문에 284명이 사표를 내면서 노조원이 600명에서 280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당시는 구사대가 계속 공격해오는 시기여서 일부는 공장에서 투쟁을 전개하고 나머지 노조원들은 공장사수를 위해 연대를 요청했다. 그때 많은 동지들이 연대해줬고 든든했다. 노조집행부는 노조원 280명에게 <민주노총을 싫어하는 것은 아는데 남아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필요하다. 우리가 여기서 투쟁을 접으면 시그네틱스라는 회사는 없어진다.>, <결국 우리회사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니 찬성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설득해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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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민주노총이 노조원들에게 안좋은 이미지였는지


윤분회장

1995년도에 <필립스>가 철수하면서 <거평>한테 회사를 팔았고, 거평이 망하기 직전에 반장들의 수당을 지급하다 들키게 된다. 그걸 항의하다 7명이 해고됐는데 민주노총세력이 사업장에 들어와서 그렇게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거평이 망하기 직전 2주간 직장폐쇄를 하면서 노동자들이 패배하고 문제가 심해지면서 노조위원장까지 사퇴하고 말았다. 1997년에 제가 위원장선거에서 떨어지는데 이 선거에서 상대후보는 현장에 들어가게 허용했지만 저는 들어갈 수가 없게 사측이 막아나섰다. 이때 민주노총세력이 악의적으로 행동했다. 일부러 불화를 만들었기에 민주노총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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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18년 동안 투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또 연대하고 함께 싸웠던 동지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윤분회장

제일 중요한 건 노조원이다. 상처를 받기도했지만 함께 남아서 투쟁을 하는 사람도, 앞으로도 할 사람도 우리사업장노동자들이기에 제일 큰 원동력은 노조원이다. 영풍자본의 과도한 탄압도 있지만 아무리 부조리한 것이 있더라도 의지 없는 사람은 투쟁을 하지 못한다. 1차투쟁이 너무 힘들어서 2차투쟁을 못할 것 같았지만 이틀동안 진행한 총회에서 단결을 이뤄냈다. 그래서 100명씩 몰려다니면서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 사실 2번째 해고투쟁은 저도 힘들었다.

그때 복직이 안되었기에 분회장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하면서 한명이라도 남아있고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노조원들과는 정리해고싸움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며 솔직히 밝히고 토론을 진행했다. 32명중 4명을 제외하고는 다 싸우기로 결의했다. 그 한명씩 결의하는 영상을 찍었고, 중간에 위로금 없어도 무조건 현장복귀가 목표라는 것을 내세웠다. 규율도 세우고 전술회의도 했다. 그 회의 때 1인당 110만원씩 거출해서 대법소송비 다 내고 시작했다. 모든 노조원들이 1종면허를 취득하고 12인승승합차 2대를 구입해 투쟁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3번째 투쟁도 비슷했다.

지금 남아서 투쟁하는 노조원들도 있고 떠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노조원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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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투쟁사업장노동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이 투쟁의 공통점,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한말씀 해달라


윤분회장

투쟁사업장이 많이 늘어나고 있고 그 투쟁이 장기투쟁사업장으로 되는 것의 핵심은 정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정권에 대한 문제다. 문재인정부 들어서고 장기투쟁사업장 몇군데가 해결되기도 했다. 현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했으나, 시그네틱스처럼 법에서 노조가 이겼지만 출근을 할 수 없어 다시 소송을 걸어야하는 현실과 그것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 때문이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도 투쟁의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투쟁의 전선을 그어야 한다. 상급단체들이 현실의 주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입장대로 투쟁을 끌고나가서는 안된다. 민주노총도 자본이 노조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정부와 투쟁해야 한다. 자본이 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도록 허용해주는 현정부와 강하게 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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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분회장이 통일선봉대로 활동한 적이 있다. 노동자들이 통일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윤분회장

시그네틱스투쟁은 가진 자본가와 가지지 못한 노동자의 싸움이기에 민중문제다. 한편 통일문제는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민족문제다. 민족의 이익의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세력과는 거세게 투쟁해야 한다.

시그네틱스투쟁에서 문재인정부의 문제를 지적한 것처럼 작년에 평창올림픽이후에 통일분위기가 고조되었다가 가라앉은 것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는 통일할 의지가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4.27판문점선언과 9월평양선언에서 합의하고 공개한 것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위안부, 강제징용문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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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에게 바라는 점은


윤분회장

정당, 그리고 노동자단체와 진보단체들이 정말 잘해야 한다. 기조를 잘못잡고 가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진보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보다는 다수를 위한 투쟁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광화문의 촛불에서 잘 배웠으면 한다. 집값은 더 올라가고 민중의 삶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를 규탄하는 것이 진보정당과 진보단체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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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진보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한말씀 부탁한다.


윤분회장

모든 언론들은 사실을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 자기입맛대로 각색하고 포장해서 공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투쟁사업장이 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담아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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