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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기관차11(돌파!) – 기획2] 전세계노동자를 위한 세계노총

반파쇼투쟁의 빛나는 성과를 계승
전세계민중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시대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투쟁한다.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계급·계층을 해방해야 하는 가장 혁명적인 계급인 노동계급은 자신의 당과 함께 자신의 조직, 노동조합을 만든다. 세기에서 세기로 넘어가는 장기적이고 간고한 투쟁을 통해 얻은 성과를 노동조합에 아로새기며 이를 자본에 맞설 위력한 무기로, 단결과 교섭과 쟁의의 특별한 권리를 가진 조직체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19세기중엽에 이미 전세계노동계급은 하나라는 사상을 밝히고 전세계노동계급의 단결을 호소한 맑스의 구호를 심장에 새긴 전세계노동계급은 세계노총(WFTU)을 결성한다.
1930년대 상대적과잉생산세계공황의 충격속에 생겨난 파시즘의 괴물이 미증유의 전쟁과 학살의 비극을 일으킬 때, 전세계노동계급은 파시즘을 격멸하기 위해 앞장에서 무장을 들고 투쟁했고 전세계민중과 함께 결정적 투쟁을 벌여 마침내 역사적 승리를 이룩했다. 바로 이 반파쇼인민전선의 역사, 레지스탕스의 역사에 세계노총의 뿌리가 있다.
세계진보세력은 전세계적 범위에서 파시즘에 대한 종국적 승리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을 낳은 제국주의가 핵무기를 쥐고있고 대사회주의권을 봉쇄하며 냉전을 부추기는 현실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UN헌장에는 <인권, 인격의 존엄성과 가치,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 크고 작은 국가의 평등한 권리>가 명시됐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결집>하는 대신 무력사용이 금지됐으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이내 깨달았다. 그리고 전쟁을 막지 못하고 비민주적인 UN의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있다.


봉쇄와 탄압을 뚫고나아가다
세계적으로 자본가들이 공통의 이해로 야합하듯이 노동계급도 이에 맞서 하나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은 점점 더 커졌다. 이는 한나라범위에서의 부익부빈익빈현상이 세계적 범위로 확산되는 조건에서 더욱 그러했다.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정치와 경제의 주인이 된 노동계급과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무권리한 노동계급은 제국주의의 대사회주의봉쇄망을 뚫고 하나가 돼야 했다. 이 투쟁은 노동계급이 스스로가 주인이된 사회를 지키는 동시에 노동계급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를 이겨내는 의의가 있었다.
1945.10.3 파리에서 마침내 첫세계노총총회가 개최됐다. 총회에는 55개국 6700만노동자들과 56개국가·20개국제기구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같은 해 2.6~17 런던에서 열린 관련 컨퍼런스에서의 토론과 결론이 총회의 기초가 됐는데, 당시에도 53개국 6000만노동자들과 53개국가·국제기구를 대표해 204명이 참석했다. 총회에서는 일치가결로 세계노총의 창립이 선언됐고 프랑스의 노동계급레지스탕스출신 루이싸이엉(Louis Saillant)이 사무총장(general secretary)으로 추대됐다.
세계노총에는 미국노총(AFL)을 제외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노동조합이 결집했다. 미국노총은 반자본주의·반세계화의 기치조차 들지 않는 개량주의적 국제노동조직인 국제노총(ITUC)의 주도세력이다. 미국노총은 다른 노조를 사주해 세계노총을 분열시키려 했고 국제노총은 일관되게 세계노동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고 투쟁을 약화시켜왔다.
코리아에서도 해방직후 최초의 민주노조총연맹인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 세계노총에 가입해 활동했다. 1948년 미군정의 야수적 탄압에 의해 전평이 해산된 이래 69년만인 2017년 삼성일반노조, 2018년 실업노조·영세노조가 세계노총에 가입하면서 남코리아에서 변혁적노동운동의 맥이 이어졌다. 민중민주의 새시대를 맞아 남의 개량주의적인 노동운동의 한계를 딛고 전진하는 변혁적인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은 남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갈수록 그 의의가 특별할 것이다. 현재 남코리아의 양대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모두 국제노총에 가입돼있다.


레지스탕스와 투사 출신 사무총장들
세계노총 1대사무총장인 루이싸이엉은 프랑스의 목조노동자였다. 1920년대 총파업을 경험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1943년 프랑스노총비합조직을 건설했고 1944.9.11 프랑스노총대표에서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대표로 추대됐다. 1945.10 첫세계노총사무총장이 된 후 1968년까지 역임했다. 싸이엉은 레지스탕스활동당시 합법활동과 비합활동의 배합에 능숙했다. 이 기간 싸이엉은 북부해방작전에 집중하며 레지스탕스네트워크와 손잡고 노조조직을 기독교세력까지 넓혔다. 싸이엉은 레지스탕스활동을 초기부터 참여하며 노동운동을 레지스탕스에 결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1942년 졍물랑세력과 손잡고 단일조직건설에 합의해 1943년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를 결성했다. 싸이엉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는 노동자·민중의 진정한 대변인이 돼 개량주의세력과의 사상전을 벌이면서, 나치점령당시는 굴종을 거부했고 전후냉전시기에는 마샬플랜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반대했다. 싸이엉은 세계노총사무총장이면서도 프랑스평화단체활동을 벌여 1958년에 레닌국제평화상을 받았다.
같은 프랑스출신인 세계노총 2대사무총장인 피에흐졍수스(Pierre Gensous)는 2차세계대전시기 비합법노동조직활동을 하며 반파쇼사보타주를 벌이다가 유격대(Maquis)에 가입해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해방후 프랑스남서부 타르브로 돌아온 졍수스는 프랑스노총의 대표와 프랑스노총신문인 <노동자의삶(La Vie Ouvrière)>의 출판인이 됐다. 졍수스는 1953년 강력한 파업투쟁이후 다른 프랑스노총간부들과 함께 해고당했다. 이후 1960년대부터 프랑스노총활동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1969년 세계노총사무부총장으로 선출되고 이후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프랑스노총이 세계노총을 탈퇴한 이후에도 1989년까지 내부적 활동을 줄기차게 벌이다가 2017년 세상을 떠난다.
그리스출신의 현세계노총사무총장인 조지마브리코스(George Mavrikos)는 일찍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리스의 악명높은 독재자 파파도풀로스정권기간 노조활동과 정치활동으로 섬유공장에서 2번 해고됐고 1973.11 반독재투쟁인 폴리테크닉봉기에 참가해 구속됐다. 이후 농업기계공장에서 14년간 일하며 노조대표로 선출됐다. 1982년 아테네노동센터의 조직비서로 일하다가 1985년에서 1986년까지 모스크바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93년에서 1998년까지 그리스노총사무총장으로, 1999년에서 2007년까지 그리스노총대표로 활동했다. 마브리코스는 1976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농산물부문회의에 참가했을 때부터 세계노총을 강화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2000년 14차총회에서 세계노총부사무총장·유럽지역사무국장으로 선출됐다. 2011년 16차총회에서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고 2016년 17차총회에서 재선됐다. 역대사무총장들의 공통된 지향은 전세계노동자들이 노동자·민중의 해방을 위해 단결하고 투쟁해야 하며 제국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반제국주의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노총은 세대가 바뀌어도 반파쇼레지스탕스에 뿌리를 둔 변혁전통을 계승하며 오늘도 변함없이 세계노동계급의 변혁투쟁과 반제평화운동에 앞장서고있다.


제국주의의 집요한 세계노총와해공작
세계노총 마브리코스사무총장은 2013년 18차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전세계노동자들은 세계노총과 국제노총이 2개의 다른 역사적 뿌리, 다른 전략, 다른 목표, 다른 이념과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본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촉진하는 것과 자본과 제국주의의 목적에 종속되는 것, 이 2개의 구분선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세계노총의 변혁성에 대비되는 국제노총의 기회주의성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다. 세계노총은 결성과 동시에 미·영제국주의의 집중적인 와해공작에 시달렸다. 제국주의세력은 여러차례 외부적 타격을 가했으나 별 소용이 없자 내부와해전략으로 전환한다. 1947.11 세계노총사무국회의에서 미국노총대표는 세계노총이 마샬플랜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변했고 당연히 세계노총은 이를 거부했다. 1948년 영국노총은 세계노총에 마샬플랜수용과 활동일시정지를 강요했다. 미·영노총대표들 의 사주를 받아 일부노총들이 세계노총을 탈퇴, 1948.12.7 국제자유노총(ICFTU)을 설립하며 세계노동운동을 분열시켰다. 1949.4 나토가 결성되고 이즈음 미국내에서 매카시즘광풍이 휘몰아쳤다. 나토는 유럽내 노동운동·진보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나토는 소련·동구를 군사적으로 봉쇄했고 유럽내 노동자들에게 반공의식을 주입하며 분열시키는 군사적 토대가 됐다. 유럽노동운동의 분열과 침체에는 경제에서 마샬플랜과 군사에서 나토가 양대 물리적 바탕이 됐다. 국제자유노총은 공식적으로는 독립돼있다고 주장했으나 나토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는 이 조직의 본질적 성격을 보여준다. 국제자유노총은 영국노동조합회의(TUC)에 미국산별노조(CIO)·미국노총 등이 합쳐져 런던에서 결성된다. 미국노총은 2차대전후 조직이 급속히 성장했다. 미국노총관료들은 금융자본의 반소련공세의 선봉을 담당했고 반세계노총공세를 집요하게 전개했다. 미국노총은 미CIA·외무부와 연계돼 세계노총와해공작에 앞장섰고 그 연장선에서 국제자유노총이 만들어졌다. 국제자유노총은 2006.11.1 세계노련 (WCL)과 합쳐 국제노총이 됐다.
1991년 소련·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세계노총에 커다란 타격이 됐다. 세계노총은 조직을 해체하고 국제자유노총으로 통합하라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의 노총과 기회주의자들의 분열·기회주의책동에 직면했다.
세계노총이 약화되자 국제노총은 전세계노동계급의 개량화·무력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현재 국제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과 긴밀히 협력하 고있다. 노조·노동자권리와 아동노동력착취감시, 여성노동자권리보장을 주장하지만 그 근본원인인 신자유주의·세계화를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국제노총의 온갖 왜곡과 조작으로도 가리울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전세계노동자를 위한 세계노총>
오늘 세계노총의 기치는 마브리코스사무총장의 132주년메이데이 연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브리코스는 메이데이의 기원인 1886년 시카고에서의 노동자투쟁정신을 되새기는 한편 신자유주의·세계화시대에 착취와 빈곤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노동자들에게 굳건한 연대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초국적자본을 비롯한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부가 노동자·민중의 권리·복리를 끊임없이 파괴하고있음을 폭로하며 미제국주의를 총수로 하는 제국주의세력의 전쟁과 약탈을 규탄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코리아에서 자행하는 미제국주의의 폭력과 전쟁책동을 예리하게 해부했다. 또한 제국주의세력과 자본가계급에 맞서 완강히 투쟁하고있는 전세계노동계급의 변혁적 투지에 경의를 표하며 국제주의적 단결과 연대를 호소했다.
세계노총은 초대사무총장 싸이엉의 비전 <전세계노동자를 위한 세계노총>을 실현하기 위해 굴함없는 투쟁을 줄기차게 이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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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휴: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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