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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보도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다>

3일 북 조선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이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다>를 보도했다. 

 

보도는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며 전선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라며 1950년 코리아전쟁중 전난에도 불구하고 다수확을 이룬 농민들의 생산투쟁을 소개했다. 

 

이어서 1953년 전국농민열성자대회를 상기하며 <쌀이 많아야 국가의 자존과 자립을 견지하며 어떤 격난속에서도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전 전선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다

전화의 불비속에서 다수확을 낸 애국농민들의 자욱을 더듬으며

 

사회주의전야에 애국의 숨결이 맥박친다.

쌀로써 당을 받들고 우리 혁명을 보위하자.

중중첩첩 겹쌓이는 난관을 과감히 뚫고 풍요한 가을을 향해 줄기차게 내달리는 온 나라 농업근로자들의 미더운 모습은 가열한 전화의 불비속에서도 다수확을 안아올리며 전쟁승리에 크게 이바지한 전세대 애국농민들의 불굴의 군상을 감회깊이 되새겨보게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근로자들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제1제대 제1선참호에 서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분발하여 농업생산에서 전변을 일으켜야 합니다.》

참으로 참혹한 전야였다.

우리의 혁명시인이 피타는 가슴을 헤치고 절규한것처럼 과수원도 뿌리채 간데 없고 박우물바위도 부서졌으며 태양도 검은 연기속에서 피같이 타고있던 이 나라의 전야,

포성이 울부짖고 논밭과 관개시설은 무참히 파괴되였으며 사람도 축력도 모든것이 부족했던 농촌들에서 울려나온것은 무엇이였던가.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며 전선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하시면서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안으신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알곡증산을 위한 여러가지 국가적조치도 취해주시고 몸소 여러 농촌을 찾으시며 전시식량증산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에 전화의 애국농민들은 과연 어떻게 화답해나섰던가.

열두삼천리벌의 신원섭농민을 비롯한 다수확농민들의 투쟁자료가 있다.

…신원섭농민은 …화학비료를 사용치 않고도 다수확을 쟁취할 방법이 있다는것을 실지로 마을농민들에게 뵈여줄것을 결심하였다.…특히 그는 마을 전체 농민들도 다같이 다수확을 쟁취하게끔 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그들은 떼밀이, 개바닥흙, 논두렁흙 등으로 객토작업을 실시하고 두엄을 남보다 많이 내였다.

…그들은 모두 다섯벌이상의 김매기를 실시하였는데 특히 신원섭, 김대성, 리근배, 신영원농민들은 손으로 다섯벌 매주고 제초기로 두벌김을 매여주었다.미제공중비적들이 우리의 발전소를 폭격하여 양수기가 멎고 논판은 말라들기 시작하였다.…수령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한시도 잊지 않고 마을농민들의 앞장에 나서서 용드레를 들고 논으로 나갔다.낮에는 김을 매고 밤에는 물을 펐다.…

한몸 서슴없이 내대고 피땀을 바쳐 알알이 가꾼 낟알을 싸우는 전선에 보내주며 그들이 추켜들었던 전선원호미헌납운동의 불길이 열두삼천리벌에서만 타올랐던가.

언제 터질지 모를 논밭의 390개의 지뢰를 희생적으로 제거하고 씨뿌리기를 제때에 완수한 경성군의 어느 한 리의 농민들, 자기 밭에 떨어진 5개의 시한폭탄을 목숨걸고 지게로 지여내고 한줌의 봄보리씨앗이라도 더 뿌린 신흥군의 농민,

바위가 부서져 가루가 되고 다람쥐마저 몸둘 곳을 몰라 전사의 품으로 뛰여들었다는 1211고지와 잇닿아있는 속사리!

하루에도 수만발의 포탄과 폭탄이 날아드는 불바다속에서도 폭탄파편으로 낫과 호미를 벼리고 보습을 만들어 밭을 갈며 씨앗을 뿌려나간 속사리사람들,

도로가 파괴되면 김매던 호미자루를 곡괭이, 삽과 바꾸어잡고 달려가 어둠속에서 손더듬으로 돌을 모아다 폭탄구뎅이를 메우면서도, 전투가 치렬해지면 탄약과 식량을 지고 고지로 달려올라가는 속에서도 논 한뙈기, 밭 한평 묵이지 않은 그들의 희생적인 투쟁을 세월이 흐른들 어찌 잊을수 있으랴.

1951년도에만도 평안북도에서 3 650여명, 평안남도에서 2 690여명의 여성보잡이 속출.

참으로 얼마나 격렬한 투쟁의 시대였던가.얼마나 위대한 헌신의 년대였던가.

혼자서 5천평의 땅을 억척스럽게 가꾸어 정보당 9t이 넘는 다수확을 낸 어러리벌의 첫 녀성보잡이 유만옥농민, 100여마리의 부림소가 40여일 걸려야 운반할수 있다던 6 500여t의 거름을 순수 등짐으로 날라다 펴고 논 100정보를 괭이로 갈아엎으며 봄철씨붙임을 제때에 보장한 철산군과 신천군 로월면(당시)의 여성농민들…

진정 이 땅에 불타는 대지는 있을지언정 속절없이 묵은 논과 밭이 있었던가.

그 시대 농민들의 영웅적투쟁을 돌이켜볼수록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것은 충성심, 바로 이 세 글자이다.

땅, 살아도 살 곳 없고 죽어서도 묻힐 제땅 한뙈기 없어 꿈에서도 땅을 부르며 몸부림치던 이 나라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

갖은 천대와 멸시, 무권리속에 헤매이던 자기들을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당당히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을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정녕 잊을수 없어 수령의 부름, 혁명의 요구에 한몸 서슴없이 내대며 불비속에서 다수확을 안아올린 전화의 애국농민들,

그들에게 있어서 한알한알의 낟알은 원쑤격멸의 총탄이였고 전승의 날 긍지높이 터쳐올릴 축포탄이였다.살아도 죽어도 끝까지 지켜야 할 조국이였다.

우리 다시금 긍지높이 되새겨보자.주체42(1953)년 1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전국농민열성자대회를.

대회보고에서는 적들이 논과 밭에 각종 포탄을 퍼붓고 수많은 관개시설을 폭격파괴하였지만 우리 농민들이 농사에서 무한한 애국적헌신성과 영웅성을 발휘한데 대하여 지적하였다.원쑤격멸을 위하여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생산해내겠다는 기세로 굳게 단결된 전체 농민들이 선진영농기술을 군중적으로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각 지방에서 과거 생산수준을 돌파하는 새로운 다수확기록들이 생겨난데 대해 긍지높이 총화한 보고를 새겨볼수록 전선과 후방의 식량을 더욱 원활히 공급할수 있도록 하는데 전시애국농민들이 얼마나 큰 공헌을 하였는가를 가슴뜨겁게 느낄수 있다.

전시 최악의 조건에서도 당과 수령의 부름앞에 대비약으로 대답해나선 애국농민들의 불타는 충성심에 떠받들려 전승의 날이 앞당겨졌다.전승의 축포가 오른 때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흘렀어도 전시다수확농민들의 영웅적투쟁정신은 오늘도 사회주의수호전의 제1제대 제1선참호에 세차게 나래치고있다.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 사회주의수호전의 승리를 위한 투쟁이다.전대미문의 시련과 난관을 과감히 헤치며 당 제8차대회가 펼친 사회주의건설의 새 승리를 향해 힘차게 내달리고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쌀은 더없이 귀중한 밑천이고 재부이다.쌀이 많아야 국가의 자존과 자립을 견지하며 어떤 격난속에서도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전 전선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수 있다.

농업근로자들이여!

수령의 은덕에 목숨바쳐 보답한 전화의 애국농민들처럼, 당과 조국의 요구라면 불가능을 몰랐던 1950년대의 다수확농민들처럼 애국의 더운 땀을 사회주의전야마다에 아낌없이 바쳐나가자.

오늘 우리 세대가 한치의 땅도 피로써 지키고 가꾼 전세대 애국농민들의 투쟁을 값높이 추억하듯이 먼 후날 후대들도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에서 위훈을 떨친 그대들의 삶을 긍지높이 돌이켜볼수 있게 순간순간 당과 혁명앞에 지닌 의무를 다하자.

쌀로써 사회주의를 지키고 우리 혁명을 보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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