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거대하고 모험적인 실험에 대한 은유와 전쟁과 전쟁사이에 급속히 변화되는 계급의 운명에 대한 상징이 앤더스감독특유의 유머와 솜씨로 크게 빛난다. 1차세계대전 100주년의 해에 개최된 첫 국제영화제인 베를린날레에 이만큼 맞아떨어지는 개막작을 달리 어떻게 찾겠는가. 제64회베를린국제영화제는 정년 이 영화제를 노리고 기획한 작품과 손을 잡고 이 화려한 배우군단을 레드카펫에서도 하이라이트에 배치하는 주도면밀함을 잊지않았고 초반에 집중적으로 상영하며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관객들과의 싸움에서 기선을 잡아버렸다.
작가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건 제목과 메인이미지속에 들어있다. 제목에 나온 ‘큰 부다페스트호텔’이라는 물질적 재부와 영화속에 나온 ‘사과를 든 소년’그림이라는 정신적 재부는 메인이미지속의 귀부인부르주아(Madame D., Tilda Swinton)에서 호텔지배인쁘띠부르주아(M Gustave, Ralph Fiennes)를 거쳐 로비보이프롤레타리아(Zero Moustafa, Tony Revoori)로 넘어간다. 이 역사속 필연적인 변화의 흐름은 전쟁과 전쟁사이에 메인이미지에 나온 엘리베이터처럼 계단식이 아닌 비약을 이룬다. 실제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사이의 1930년대에 부다페스트로 환유되는 동구사회가 그러했다.
원작이 있기에 이렇게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를 중첩하며 시대변화의 은유와 계급변동의 상징을 치밀하게 엮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이를 포스트모더니즘후기의 탈역사적이고 초현실적인 가상의 분위기속에 안착시키는 재능을 앤더스말고 다른 누구에게서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앤더슨 이전에 자신이 만든 영화들은 이 영화를 위한 습작들이라고 말하는 듯, 이야기와 이미지를 유기적으로 맺고 쾌속으로 달리게 함으로써 100분을 10분처럼 느끼게 만드는 흥미로움과 호흡으로 이 영화를 그 필모그래프의 최고봉에 올려놓으며 올라가는 엔드크레뎃과 큰박수가 어울리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 의리있고 총명하며 용감하며 진실된 사랑을 할 줄 아는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형상화된 무산계급 무(Zero)가 세상의 모든 유산을 물려받아 공유화한다는 사상관점이 철저히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작가감독의 머리를 지배하고 통일독일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의 2014년을 장식하게 됐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가슴에 묻어두자. 당장은 영화를 보고난후 바로 또보고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의 뛰어난 이야기와 선명한 이미지, 그리고 명배우들이 연기하는 극중인물들과의 만남에 집중해도 좋으리라. 여전히 중요한 거대담론을 시대추이에 맞는 기법으로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대담하게 입증한 앤더스에게 금곰상이 안겨지길 바라며 아낌없는 박수를!
조덕원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