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과정이다. 삶의 끝이 있는가? 개인으로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집단으로서의 삶은 그렇지 않다. 궁극의 목표를 향해 중단 없이 나아가는 과정, 이것이다. 익숙한 골드러쉬 로드무비에 캐나다와 독일출신이주민들, 그리고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걸로 이렇듯 참신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토마스 아르슬란감독(Thomas Arslan)의 <금>(Gold)은 이런 영화다.
영화에서 금이란 부르주아지의 탐욕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희망이다. 19세기말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하녀로 살아가던 마이어(Nina Hoss)에게나,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나 노부부에게나 금광지 도슨(Dawson)은 삶의 좌표고 생존의 표대다. 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살기 위해 끝까지 가야 하는 유일한 출로다.
과연 누가 성공하는가. 목표를 찾지못하는 리더답지 못한 ‘리더’, 뼈를 다친 노인과 아내, 잘난 척 하다 덫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고 죽어가는 기자, 정신적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목수, 수완은 뛰어나나 사람을 죽인 과거사로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은 중도반단한다. 오직 한사람, 선하고 강의한 프롤레타리아트인 마이어만 남아 여정을 꿋꿋이 이어간다.
온갖 간난신고를 이겨내며 나아가는 전진도상에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근육도 경험도 무기도 마찬가지다. 어떤 시련과 난관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정답이다. 이 정신력은 노동과 투쟁을 통해 단련되고 신념과 의지를 통해 강화된다. 신념과 의지의 강자, 노동과 투쟁의 기수만이 계속전진, 계속변혁의 삶을 빛낼 수 있다.
담백한 사실주의작품이 가지는 힘과 여운이 인상적이다. 다만 집단의 지혜와 힘으로 뚫고나가는 과정으로 그리지 않았기에, 좌표는 사회적 의의가 선명하지 못하고 동료들은 자꾸 떨어져나가며 영화의 기본양상은 밝지 못하다. 홀로 남아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귀중한 삶이지만 집단주체적으로 풀지 못하는 한 근본적이고 힘있는 변화는 불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희망은 이 힘으로만 이뤄진다.
조덕원
기사제휴: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