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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노동자들, 우리네 농민들 벌떡 일어나 세상을 바꾸자” 대행진 셋째날

 

청와대 쥐박이 용산참사 오리발

강부자 고소영 명박시발법 지랄통

아아아 아아아

9공이 10공, 10공이 3공

조중동 앞에서 짝짜궁

양키놈 앞에서 짝짜궁

고놈의 금뺏지들 싸그리 쓸어서

새만금 방조제에 쳐박아버리고

우리네 농민들(전철연, …) 벌떡 일어나

세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빠르게 다시 한번)

– <전철연가>, 문정현 개사

 

10월7일.

예정시각보다 22분 늦게 출발했다.

광주평화통일마라톤대회장으로 이동해 참가자들에게 대행진단의 요구를 알렸다.

문규현신부님은 마라톤 참가자처럼 손피켓을 들고 달리면서 구호를 외쳤다.

목소리가 참 우렁차다.

문정현신부님도 구호를 외친다. 외치는 와중에도 실시간 트윗에 정신이 없으시다.

마라톤대열이 쑥 빠져나가자 외친다.

“밥줘- 밥도 안주고 이런거 시켜-”

모두들 웃는다.

9시가 좀 넘어서 광양으로 이동했다.

차안에서 대회주최측에서 제공한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앞으로 매일 한끼는 김밥이라고 생각하자구.”

사무국장의 위트있는 한마디.

다양한 맛이 섞여있는 김밥이라 맛있었다. 물론 그중에 ‘땡초김밥’도 있어 후후 불어가며 먹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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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33분 광양읍 불고기축제장에 도착했다.

축제를 구경나온 읍민들에게 대행진단의 유인물을 나눠주며 홍보를 했다.

아직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호남지역인만큼 호응이 좋다.

우릴 마중나온 광양지역의 시민사회단체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금속노조산하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노동자들이 우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렵지만 지회에서 대행진단에 성금도 전달했다.

함께 시민들에게 홍보를 한후 광양시민사회단체측에서 제공해준 맛있는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갔다.

 

 

기자는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양동운지회장에게서 광양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었다.

일감으로는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자문제만큼이나, 아니 그이상 심각했다.

포스코하청사는 56개이고 조합원이 60여명이라고 했다.

야간 80시간, 휴일과 연장근로 32시간에 15년정도 다니면 연봉이 3500만원정도란다.

갓 입사한 노동자의 초봉이 연2500만원정도.

정규직의 절반수준이다.

휴일을 활용하지 못하고 급여가 적다보니 대부분 맞벌이부부라고 한다.

그러니 자녀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상황. 보통 영어, 수학 학원에 보내는 거 말고는 부모가 자녀들의 공부에도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다고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KPI평가제도.

일의 완성과 관련된 점수는 20%밖에 안되고 사원의 댓글달기 등 비본질적인 부분에 점수를 부여한다.

가령 민주노총산하 노동조합이 포스코 앞에서 집회라도 하면 그 사람은 꼴찌가 된다.

포스코 임원출신이 협력하청사 사상이 되는데, 하청사는 원청의 지시하에 인력만 공급하는 형태로 노무비가 곧 회사매출이 된다.

연중 똑같은 풀생산체제라 고정인원이 투입돼야 한다.

보통 자동차기업과 달리 철강기업은 단순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 더 복잡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500여명의 노동자들만 강력하게 힘을 뭉쳐 파업한다면, 생산라인이 멈추게 되고 회사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대체생산이 가능한 자동차기업과 달리 여기는 완전히 멈추게 되는 것이다.

양지회장은 “처음으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포스코 사내하청 등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하반기 흐름을 만들기 위해 다시 투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바로 ‘포스코 현안대응을 위한 광양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다.

그는 지금 52세로 1989년 3월22일 설립한 노조에서 “근로기준법도 모르고 노조위원장에 출마했다”며 “당시 복수노조가 금지된 조건에도 어용노조를 승계해 민주노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때는 사업장 한곳에서만 조합원이 3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전략을 폈는데 우리는 민주노조 활동조건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라며 “정책단위가 사용자의 구상을 따라갔지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성장했지만 현장은, 노동자의 현실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냐는 거다.

과연 성공한 노동운동인지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낙관적입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꼭 다시 취재오겠습니다. 승리할 겁니다.”

식사를 마치고 순천역으로 이동했다.

순천역에서의 기자회견, 그리고 행진이 있었다.

이날도 200여명이나 참여하며 우리대행진단은 ‘순항’중이다.

호남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민주통합당) 지지가 많지만 이러한 민중의제에 대해 공감하고 박수를 쳐주었다.

진보진영이 진정 단결해 이들의 아픈 곳을 알아주고 같이 해준다면 지지정당이 바뀌는 것은 일순간이라는 것이다.

양지회장은 지금 노동자들의 민주당, 진보당 지지는 크게 의미없단다.

 

순천에서도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일명 뷔페식 야외식사였다.

다들 식판을 들고 맛있게 고맙게 밥을 먹고 17시로 예정됐다 1시간 늦춘 순천생명평화문화제에 참가했다.

문정현신부님이 부른 <1노2김가>를 개사한 문신부님만의 노래(용산참사때 ‘전철연가’로 불림)공연이 압권이다.

이어지는 행진단의 호응.

“내이름은 문정현”

“거꾸로 하면 현정문”

평택 대추리때부터 부른 노래로 문신부님이 직접 개사해 부르고 있다.

격정적인 발언을 마친 신부님은 행사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린다.

신짜꽃밴의 노래와 행진단의 춤이 어울어진 대동한마당으로 문화제가 끝났다.

마지막은 역시 <바위처럼>과 <강정스타일>.

<바위처럼>이 이렇게 마을주민 모두가 따라 부르고 율동을 한 적이 또 있을까 싶다.

땀을 뻘뻘 흘리는 강동균회장은 다 잘 될 거 같다며 “화이팅!”을 외친다.

순천YMCA에 마련된 숙소로 가기전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체로 사우나에 갔다.

전날 씻지 못했다는 얘길 듣고 순천에서 또 신경을 써준 것이다.

이날 행진은 다들 좀 힘들어 했지만 마지막 YMCA에서의 뒷풀이까지 거치며 모두들 행복해 하고 서로에게 힘을 얻었다.

 

 

나영필기자 

21세기민족일보∙진보노동뉴스 공동기획
2012생명평화대행진 동행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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